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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임 Jul 13. 2024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 밴쿠버

밴쿠버를 즐기는 000가지 방법

한국을 떠나 밴쿠버에 온 지 어느새 7년이 되어간다. 7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조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눈물을 보이며 떠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는 두 번의 졸업식과 입학식을 하고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올 초 조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아무것도 못해준 게 미안해서 밴쿠버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었다. 내가 부모님을 버리고 무정하고 홀로 캐나다로 떠난 뒤 나의 부모님에게 조카는 내 빈자리를 대신해 주고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철없는 고모때문에 이래저래 고생했을 조카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가득하다. 5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조카는 코가 빨개져서 장례식장에 왔었다. 그리고 다른 조카도 코가 빨개진 얼굴로 자신이 아르바이트한 돈이라며 부조금 봉투를 들고 왔었다. 그 둘이 같이 8월 초에 나를 보러 드디어 밴쿠버에 놀러 온다고 한다!


이 귀엽고 고마운 소녀들한테 밴쿠버를 어떻게 보여주고 설명할까??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밴쿠버를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을까???


한국과 가까운 동남아는 자주 갔었어도 둘 다 먼 캐나다는 처음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내가 처음으로 혼자 프랑스에 어학연수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난 아무 계획도 없이 갔었지만 프랑스라는 나라가 너무 좋았다. 맑은 하늘과 푸르른 자연도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파리에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시켜놓고 앉아서 분주히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미술관을 다니면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다양한 작품들을 실컷 보았던 것이었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해 주었고 결국 전공을 바꿔 미술사를 공부하고 큐레이터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멀리서 나를 보기 위해 낯선 밴쿠버까지 와준 조카들에게 내가 프랑스를 여행하고 달라진 것처럼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문화를 알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 동안 살아본 밴쿠버는 한국에 비해 정말 시간이 물처럼 천천히 흐르는 도시인듯하다. 이곳에 약 30년 전 초등학교 때 처음 왔던 신랑이 다니던 식료품점과 식당들도 다 그대로 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은 불같은 도시 었다. 이리저리 옮겨가는 불처럼 시기에 따라 가로수길, 경리단길, 연리단길 등 힙한 동네가 유명해지면 사람이 많고 붐비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곤 했다. 사람들은 유행하는 것을 따라다니는 불나방 같았다. 요즘 핫한 동네에 가지 않으면 인기 있는 맛집에 가지 않으면 아싸(아웃사이더)가 되는 거 같았다.


반면에 밴쿠버는 천천히 흐르는 물과 같은 도시이다. 강 줄기를 따라 바다로 천천히 흘러들어 가는 물처럼 밴쿠버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들이 천천히 섞여가며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래서 난 밴쿠버가 좋다. 한국처럼 유행하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식당이나 동네를 언제든 즐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 빠르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새로운 것을 찾는다면 밴쿠버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편안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밴쿠버만큼 편안한 도시도 없을 것이다. 7년 만에 난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나의 조카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좋았던 밴쿠버를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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