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혜임 Jun 16. 2020

취나물 비빔밥과 새조개

그리운 추억의 음식

    한국을 떠나 이곳(밴쿠버)에 온지도 벌써 삼 년이 넘었다.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길고 우울한 회색의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햇빛과 함께 봄이 찾아오면 그립지만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음식과 추억이 떠오른다. 봄이 시작되면 부모님은 주말마다 온 산을 돌아다니며 취나물과 고사리, 두릅 등 각종 산나물을 뜯어오셨다. 그런 날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연하고 부드러운 새순의 취나물의 잎만 골라 쌀짝 데친 뒤 엄마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만든 국간장과 포천의 어느 기름집에서 직접 짜 온 참기름에 버무려서 갓 볶은 고소한 깨를 잔뜩 올린 향긋한 취나물 무침과 고추장이 나왔다. 아무 다른 반찬이 없이 엄마표 고추장과 바로 무친 취나물 반찬 하나면 온 가족이 맛있게 밥을 먹곤 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와 막걸리 한잔을 마시면서 취나물 한 접시를 둘이 다 비우고 했다. 새순의 취나물을 한입 씹으면 부드럽고 알싸한 맛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안을 감싸고 국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날 때 달달하며 톡 쏘는 막걸리 한 모금 마시면 아빠가 늘 맛있는 음식을 드실 때 하던 표현대로 ‘환상의 조합의 맛’의 맛이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아빠의 군 복무 시절 사진, 언제나 젊을 것 같던 아빠는 살이 붙이 아저씨과 되고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 가셨다. 

    아빠는 종종 고추장에 이것저것 비벼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언제나 같이 비빔밥을 먹어도 아빠는 항상 자기가 만든 비빔밥이 환상의 조합이라 더 맛있다며 아빠의 밥을 한 수저 내게 먹어보라며 주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아빠가 주는 한입은 내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어서 나는 감탄을 했고 그런 내 모습을 아빠는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했다. 특히 고소하고 연한 취나물을 잔뜩 넣고 매콤한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을 살짝 넣고 비빈 아빠의 취나물 비빔밥은 단순한 재료에 비해 정말 맛있는 환상의 조합의 맛이었다. 아빠가 더 맛있게 비빔밥을 만든다는 아빠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자주 비벼 드셨기 때문에 정말 달인처럼 맛있게 만드시는 비결이 있으셨는지 이젠 알 수 없고 물을 수도 없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게 내 옆에 있어 주실 것 같았던 아빠는 작년에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은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교포이다. 김치와 된장찌개가 그리워서 한국에 들어왔다가 나에게 잡혀 결혼까지 한 그는 한식을 좋아하고 부산 사투리까지도 능숙히 하는 한국사람이지만 취나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나처럼 제철에 나는 음식들을 가족과 즐겁게 먹어본 기억이 없는 그에게 취나물은 맛없는 쓴 비빔밥에 가끔 들어가는 야채일 뿐이다. 봄이 되면 각종 나물을 먹고 가을이 되면 전어를 먹어야 하는 각종 제철 음식을 즐기며 좋아하는 나에게는 처음에는 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쓴 야채무침이 무슨 맛이 있다고 어릴 때부터 좋아하며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오 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면 나랑 남편은 굉장히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른 가족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서로 알아내고 인정하는 기간이었다. 가족의 다 같이 모여 식사하는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던 남편과 달리 가족과 소박하지만 맛있는 제철 밥상을 나누던 기억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던 나는 다른 입맛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새조개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는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식당에 새조개 샤부샤부를 먹으러 갔었다. 새조개를 제일 좋아하는 전라도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봄철에 잠깐 나오는 새조개를 제일 귀하고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잔뜩 시켜 남편에게 권하였다. 가족들과 마지막 한 점을 두고 누가 먹냐 씨름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반도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처음 새조개를 먹었던 어린 시절의 날은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 시골 할머니 댁에 부모님과 놀러 갔다가 근처 오일장에 갔었었다. 부모님은 장에서 징그럽고 이상하게 생기고 이름도 새조개라는 알 수 없는 식재료를 구하기 힘든 건데 팔고 있다며 사 오셨다. 어린 나에게는 조개라고 하는데 껍질도 없고 뾰족한 오징어 머리 같은 새조개는 별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조개를 가장 좋아하시던 아빠는 조개를 씻어서 어린 나에게 제일 먼저 먹어보라며 한입 주셨다. 징그럽게 생긴 형태 때문에 싫다고 하는 나에게 아빠는 이게 귀하고 진짜 맛있는 거라서 어른들만 먹는 건데 나한테 살짝 주는 거라며 눈을 감고 아빠를 믿고 먹어보라고 했다. 어른들만 먹는 귀한 음식을 나한테만 준다는 아빠의 말에 감동받은 나는 결국 한입 받아먹었고 그날부터 새조개는 달달하고 맛과 오징어보다 연하고 쫄깃한 식감은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보다 더 새조개를 좋아하는 오빠도 아빠가 새조개를 맛을 몰래 알려주었을 것이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 한 달 동안 매일 오빠는 울면서 수원에서 안암까지 아빠를 보러 갔었다고 한다. 아빠와 헤어지던 장례식장에서 계속 울고 있는 오빠한테 아직 어린 조카는 아빠는 왜 한 달 동안 계속 울고만 있냐고 물었다. 아빠는 항상 그랬다.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나와 오빠에게 먼저 주며 맛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은 오빠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알려주고 먼저 챙겨주시던 아빠는 이제 없지만 오빠는 제철 음식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아저씨가 되어 조카에게 아빠에게 받은 사랑과 추억의 맛을 알려주고 있다. 타국 생활의 외로움이 턱까지 가득 찾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빠의 사랑을 느끼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제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리운 맛이 되었지만 그 따뜻한 기억과 생생한 맛의 추억은 언제나 내가 힘들때 마다 나를 붙들어 일으켜 주고 있다. 그리고 아빠에게 받은 따뜻하고 달콤한 사랑의 추억들을 사랑하는 남편과 새롭게 즐거운 기억과 추억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주며 나의 안에 생생히 살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