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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든 Nov 30. 2019

용인

백구 잡문집

용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최대한 일찍 죽어주는 것이다.     


당신의 음성이 떨렸다. 나는 재수생이었고, 내일은 두 번째 수능 날이었다. 이마에는 '불효자가 되지 말자' 라고 쓰인 흰색 띠가 매여 있었다. 검은 매직으로 쓴 글씨는 땀 때문에 잔뜩 번져 있었다. 수화기 너머 당신의 발음도 알코올로 인해 번져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절박했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 욕심이 너를 망친 것 같아.” 나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에요.” 음성은 닿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돌아왔다. 아버지의 사죄는 계속되었고 나의 울음도 그칠 줄 몰랐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는 척 오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상처받은 것에 대해 상처 주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며, 나는 아버지가 상처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상처받지 않았다.


각자의 욕망은 서로 용인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평행선을 탔다. 아버지는 상승을, 아들은 하강을 꿈꿨다. 아버지는 자식이 좋은 대학을 발판삼아 위로, 더 위로 올라가길 바랐다. 오를수록 겸손하라 당부했다. 당신이 지어준 내 이름, 오를 승(昇)에 온화할 민(旼)을 쓴 승민(昇旼)은 그런 의미였다.


나는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다. 더럽고 추하다 여겨지는 곳까지 내려가 추락하는 마음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 대단치 않은 것들이 내게는 ‘진짜’ 같아 보였다.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뚝 서는 자의 아우라 같은 건 아무래도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1년의 재수 생활을 용인의 한 기숙학원에서 보냈다. 공부하며 아버지에게 대여섯 통의 손편지를 받았다. 나는 그때마다 읽어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 편지가 어쩐지 빛바랜 먼 옛날로부터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뻔한 편지를 읽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잘해도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장하다, 장하다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는 아버지가 촌스러웠다. 당신이 전하는 응원의 말들이 아무리 진심일지어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 다른 내용의 편지를 받고 싶었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본 책의 인상 깊은 구절, 직장상사에 대한 당신의 소견, 쾌변 여부, 아내에 대한 사랑, 나에게 바라는 그 무엇이 아닌 당신 자신만의 꿈……. 그런 구체적인 사연들로 채워진 편지라면, 굳이 ‘사랑’과 ‘건강’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활자 곳곳에 충분히 배일 것이다. 나는 갈망하고 있다. 염려보다는 이해를. 그러니까 이제 침묵보다는 대화를. 인간은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기를 더 바란다.

 

수능 당일 저녁, 아버지가 용인으로 올라왔다. 나는 당신을 보자마자 울었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버지가 피같이 벌어 투자한 삼천 만 원은 모두 헛된 것이 되었다. 아버지는 더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너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술과 말로 위로해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에너지를 얻기는커녕 감사한 척하는데 또다시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위로는 뜨거운 인간애와 따듯한 표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인식 없이는 정확한 위로도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온 편지들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뻔한 그 글씨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마음을 나도 알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받기만 했다. 편지 말이다. 제대로 된 답장을 한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뻔한 말들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화도 먼저 걸지 않았다. 오는 전화도 대부분 마지못해 받았다. “아들,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취한 음성에서 반가운 기색이 전해지면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안부를 물었다. 대화는 늘 3분을 넘기지 못했다. 할 말이 많았으나 할 말이 없었다.



     

때때로 당신은 나를 상처 입은 인간으로 규정하고 의사처럼 고쳐보려 했다. 내 상처는 치유되어야 할 것이라기보다 흉터로 남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잘 듣는 약이 아니라 잘 듣는 귀가 필요했다. 고치려고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낫는 상처였다. 아니, 오히려 그 상처 덕분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상처 없이는 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걸 몰랐다.


아버지가 확신하고 내가 회의하는 지점을 열거해보려고 한다. 이 중 몇 개는 이제 나에게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점점 당연한 것들이 많아지는 게 어른이라면, 어른 같은 건 되고 싶지 않다.


문신은 무조건 나쁘다. 술은 되고 담배는 안 된다. 사회생활에 술은 필수다. 내성적인 성격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생활에 유리하다. 보수보다 진보다. 제3의 선택은 어중이 떠중이다.(“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컴퓨터 게임은 많이 하면 할수록 안 좋다. 책은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 철학은 돈이 안 된다. 대학에서 배우는 수업과 취업은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 신은 없다. 도시는 자유나 여유가 없다. 제사는 남자가 주관해야 한다. 장남은 친지를 챙길 의무가 있다. 영어는 필수다. 연륜이 쌓인 어른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한다. 결혼은 필수다. 서른 중반이 넘기 전에는 결혼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 최고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입양은 안 된다. 이혼도 안 된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이 모든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것은 반역 혹은 미성숙이다……


우리는 일시적인 화해가 아닌 새로운 불화지점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너무 많이 한 말은 줄이고, 거의 하지 않은 말을 해보고 싶다. 물론 나도 안다. 아버지가 신념을 고수하는 이유는 내가 그 위를 지나 더 먼 곳으로 가길 염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굳이 돌아가지 말고 당신이 다져놓은 그 땅을 딛고 가라는 그 뜻을, 모르는 건 아니다. 머릿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버리면 가정이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러운 꼴을 보고도 참은 날이 많았겠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고 조연과 악역을 자처하며, 자식에게 비칠 스포트라이트를 간절히 염원했겠지.


그러나 아버지, 나는 깨진 바닷속을 헤엄칠 수도 있다. 인간의 숨은 생각보다 질기다.     




친애하는 아버지, 이제야 쓴다. 답장 말이다.


당신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진실이 숨겨진 추악한 지점까지 내려가 보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즐거운 사람입니다. 오르며 차오르는 숨을 거칠게 내쉬기보다 조용히 숨을 참고 잠수하는 편을 택하는 사람입니다. 승승장구하며 정상에 오른 사람보다 지하에 처박힌 사람의 인생이 더 궁금한 사람입니다. 치열한 경쟁이나 절박함보다 농담과 여유 같은 것들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당신과 쓸모없는 주제로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스스로 뱉은 말에 걸려 넘어져 보고 싶고, 안될 걸 알면서도 달려 가보고 싶습니다.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똑똑한 분들이 만든 법칙에 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확 돌변해 그 법칙의 불가피함에 대해 토로하며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고도 싶습니다.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확신같은 건 없겠지만, 그런 확신으로 인한 오만 역시 없을 것입니다.


그 돈도 안 되는 대화의 시간이, 발칙함과 편견으로 가득 찬 사고실험이, 몹시도 고픕니다. 적어도 당신과의 대화에서만큼은 정답 같은 시시한 걸 찾고 싶지 않아요. 우리 죽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서 아름답고 쓸모없는 말을 끈질기게 나눠요…….


시간이 없어 말이 길어졌다. 보내지는 못하고 쓰기만 한다.   <끝>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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