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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Dec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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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방마다 자리를 하고 있어 부족함은 없을지라도, 제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는지라 지하도 아니고 반지하도 아닌 방은 좀처럼 해가 들지 않았다. 해가 높이 뜰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어두운 방 안. 침대 위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누워 있는 것에도 흥미를 잃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전히 몸과 마음은 권태로웠다. 밤새 메마른 수분을 채워주고, 켜켜이 쌓인 노폐물도 비워준 다음 할 일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 작은 집 안에서는 침대에 눕거나, 책상 앞에 앉거나. 이 둘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니,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몰랐지만 어두운 집만큼 어두운 머릿속에 자리한 뇌는 더 이상의 고차원적인 생각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알림 하나 없이 조용한 핸드폰을 옆에 두고, 노트북을 열어 의미 없이 유튜브 채널을 이리저리 클릭하며 돌다가 그것마저 지쳐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이것저것에 관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삶은 권태롭고, 권태롭기 때문에 너무나도 위태롭다. 지난밤 꿈이 떠올랐다.

나는 카페인지, 숙소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갈 셈이었다. 직원인 것 같은 사람이 나를 배웅했는데, 나는 내가 신고 온 굽이 높은 하이힐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분명히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신발이 놓인 현관 앞  공간은 웬만한 원룸 크기만큼 커져 있었고, 신발장이며 신발이 놓인 현관 앞 바닥이며 모든 곳에는 신발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실내에 있는 사람의 수보다 신발이 훨씬 많이 놓여 있었지만, 그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계산을 꿈속에서 할리가. 몇 번을 돌아보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신발의 이미지를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신발을 찾을 수 없었고 나는 그곳에 계속 붙잡혀 있었다. 나와 함께 이곳을 온 엄마는 다음 목적지에 먼저 가 있겠다며 나갔지만, 나는 엄마를 바로 따라 나갈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꽤 오랜 시간 신발만을 찾고 있는 나를, 직원들이 어떻게 볼지 몰라 그 초조함까지 배가 되었다. 한참이 흐른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나는 신발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 신고 왔다고 생각한 하이힐이 실은 내가 신고 온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내가 이곳에 신고 왔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신발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모두 둘러보았을 때, 나는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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