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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17. 2023

비 그리고 빛

언니에게 보내는 열여덟 번째 편지

한국도, 보스턴도 그리고 여기 뉴저지도 비가 내려.

뉴저지 이사 오고도 종종 핸드폰 앱에 등록된 보스턴 날씨를 괜히 확인해보곤 해. 뉴저지와 보스턴은 그다지 멀지 않아서 인지, 날씨가 비슷한 날들이 많더라. 이곳에서의 여름은 올해가 처음이라 잘 모르긴 하지만, 분명 작년 보스턴은 행복에 벅찰 만큼 맑은 날이 많았는데. 요즘은 정말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기후가 이상해져 가는 느낌이야. 괜히 기분이 처 지는 건 괜히 날씨 탓을 해보려 해.



내 오늘의 계획은 사실 집돌이 남편을 데리고 뉴저지 Hoboken 이란 곳을 가보는 거였어.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알게 됐지, 오늘은 집에 있어야 하는 날이라고. 아마 이번 주말 비를 피해 집에 머물기로 한 사람들이 많을 걸 알아. 대수로운 게 아니지, 새로운 주를 앞두고 차분히 한 주를 마무리하고 시작할 준비 하는 거 정말 당연한 거니까. 분명 필요하기도 하고.


근데 언니의 솔직한 편지에 부끄러운 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조금은 힘들어. 내가 굉장히 외향적이거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크게 외부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내 온전한 감정을 마주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일 것 같아. 사람, 장소, 경험 혹은 자극들로 내 주의를 돌려놔야 최대한 복잡한 내 속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거든. 언제부턴가 그런 방식으로 내 안의 불안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듯해.


근데 이렇게 편지에 말하고 나니,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괜히 반성을 하게 되네. 지금 나한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 이게 편지의 매력이겠지? 객관적으로 차분히 날 조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거 같아, 고마워!


오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이 좋아서 사진을 찍고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바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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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시간도 힘듬의 시간도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게 맞겠지. 언니 말처럼 모든 찰나 같은 순간을 보석임을 알아채는 사람이 진정한 '위너'일 거야.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닐까 이 책도.


언니가 오늘 편지를 적는 동안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단 게 신기하면서도 혼자가 아니란 감정에 괜히 위로가 돼. 우리의 편지가 오늘 비 와 함께 생각에 잠겼던 그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번 주도 다시 빛날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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