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586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간신히 386세대에 해당하는 62년 생이다. ‘간신히’라고 표현한 것은 이 말이 나온 시기에 30대 후반이었고, 60년대 생의 초입이고, 80년대 학번의 제일 앞인 81학번 이어서다. 간단히 말하자면 50대 대졸 여성이다. 그리고 90년대 생의 어머니이다.
62년생 대졸 여성은 한편으론 차별받은 여성들이고 한편으로는 혜택 받은 여성들이다.
대기업에서 대졸 여성을 잘 뽑지 않았다. 화학과 출신인 내 친구가 삼성의 여성 대졸 공채 2기 직원이었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여성 대졸 직원들을 아주 조금씩 뽑기 시작했다. 50대까지 일을 하던 여자 동창 중에 교사가 제일 많은 것은 이런 이유이다.
62년생 여성은 일할 기회가 적었던 대신 전업주부가 당연해서 편했다면 편한 세대였다. 착실한 여학생들은 전업주부가 되었고, 열심히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것이 더 좋았다기보다는 지금 워킹맘들보다 편안하게 살았다는 거다. 반면 남자들은 취업이 쉬웠다. 잔디밭에서 카드를 치거나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하던 남학생들도 다들 대기업에 들어갔고, 유학을 떠났던 경우에는 쉽게(당시 대학을 늘려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 교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곤 남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 그 소득으로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평균 이상의 삶이 보장되던 사회에 살았다. 우리 아이들도 당연히 그런 세상에 살 줄 알았기에 자식을 키우면서 공부를 가장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부의 능력은 아이의 성적으로 가늠됐다. 아이가 성적이 좋으면 엄마의 성실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386 여성은 전업주부가 많고 그들이 사회에서 펼치지 못한 능력을 자식 키우기에 썼다. 내 주변의 너무나 똑똑했던 여성들은 자식 교육에 몰입했다. 모임에 나가면 아이들 공부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화제이고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학부모 모임도 많았다. 그곳에서는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위치였다. 워킹맘은 자신이 아이를 위해 전력을 다 할 수 없어 괴로워했고, 전업주부들이 시키는 사교육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막 사회에 나오고 있는 90년대 생의 입시는 7차 교육과정부터 엄청나게 바뀌면서 처음 접하는 다양한 전형이 많았다. 이전까지는 그냥 착실히 공부만 하면 됐다면, 이젠 어떻게 선택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유리하기도, 불리하기도 해서 철저한 준비와 전략이 필요해졌다. 그것을 열심히 따라잡은 것은 대치동 학원가였고 그곳을 섭렵하며 자기 자식에게 맞는 스펙 쌓기의 기획과 마무리는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입시가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입시지도를 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식에게 맞는 공부, 진학 방향과 준비는 학원을 통해 엄마가 하는 것이고 아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가 있었다.대학에 입학해도 성에 차지 않을 경우 다시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 또는 고시 등을 준비하면서 엄마들은 또 자식을 관리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조국의 아내도 그중 한 사람이고 자기 자식 입시 준비에 혈안이 되어 도덕심을 상실한 것이다. 부모도, 자식도 입시결과만 좋으면 다 용서되고 능력이 입증된다고 믿었다.
80년대 들어 대졸여성은 급격히 늘어났고 한국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였기에 생활이 안정된 우리 세대는 자식교육에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올인한 것이다. 학력위주 사회, 복잡한 대학입시 전형, 이전보다 늘어난 고학력 엄마들의 지나친 몰입과 열정으로 고학력 고스펙의 젊은이는 양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 386 여성의 자식 교육 임무는 거의 끝이 났다. 그런데도 자식에게서 놓여나지 못하는, 아니 놓아주지 않는 어머니들 때문에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이 문제는 차후에 얘기해 보겠다) 나도 자식 일에서 멀어지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누구 누구의 엄마가 아니고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