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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Nov 09. 2019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지만

여자의 영원한 고민, 옷

   전, 딸이 사는 홍콩에 다녀왔다. 해외 결혼식에 참석하는 딸 대신 마침 단기방학인 손녀와 놀아주기 위해서였다. 거친 시위가 알려져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한 홍콩을 다녀왔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홍콩.

IFC몰에서 멋진 할머니를 보았다. 몸에 딱 붙는 오렌지 색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날씬한 백발의 할머니였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얼굴은 족히 80세가 넘어 보이는데 그 차림새가 어떤 젊은이보다 멋졌다. 정작 60세도 안된 나는 살찐 편은 아니지만 허리가 굵어져 허리가 드러난 옷을 잘 입지 않는다. 간간이 찾아오는 족저근막염에 무릎도 좋지 않아 하이힐을 신지 않은지 몇 년 됐다. 그 멋쟁이 할머니는 패션센스도 좋지만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할머니여서 몹시 부러웠다.


  예전에 친구들이 모두들 나이 들면 엄마처럼 하지 않을 거라 했다.한 친구는엄마체형이 다이아몬드형이라며 가슴보다 더 나온 배를 얘기했다. 반짝이가 들어간 옷, 그렇게 편하다는 못생긴 SAS구두, 어느 엄마나 입는 냉장고 티셔츠나 통자 원피스......  그런 옷은 입지 말자 했었다.


  이제 내가 그 엄마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시대도 바뀌었고, 그래도 강남에서 수십 년 살았는데 촌스럽다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딸이나 동생에게 그런 옷은 버리라거나 차림새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나도 펜슬 스커트가 유행인 건 안다. 내가 젊었을 때 그런 스커트가 유행한 적 있는데, 그걸 입고 걸으면 다리에 스커트가 착착 걸려 불편하다. 바닥에 앉는 식당에라도 가면 좁은 스커트 폭 때문에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려면 에구에구 소리가 절로 나올 거다. 게다가 그 스커트는 다리가 조금만 나오니 꼭 뾰족한 구두를 신어야 어울린다. 무릎을 곧게 펴고 하이힐을 신으면 집에 돌아갈 때쯤엔 속으로 '아이고'를 연발한다. 우리 친구들은 이미 그 스커트는 포기했다. 누군가 패션은 불편함과 추위 더위를 참아야 하는 것이라 했는데 나는 이제 그것들 참으면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 (무지외반증 때문에 수술을 한 친구도 있다.)


  여름에 동생 집에 놀러 갔더니 동생이 엄마가 좋아하시는 인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름마다 인견 원피스를 극찬하던 엄마가 너희도 입으라고 해도 그건 정말 할머니 패션이라고 했건만 나도 입어보니 인견 옷 없이는 여름을 날 수가 없다. 갱년기에 체온조절이 안되어 수시로 열이 확 오르곤 하니 찹찹한 인견이 좋을 수밖에.

내가 입어보고 동생에게 하나 사주었더니 6살이나 어린 동생도 그걸 입곤 좋아라 한다. 아래위 한벌로는 정말 할머니 같아서 차마 입지 못하고, 위는 면티셔츠를 입고 아래는 인견바지를 입은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아직 여자다. 어디라도 가려면 항상 옷이 없다며 옷장을 뒤집는,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여자다. 외출을 할 때면 사람들의 옷차림을 눈여겨보곤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 자주 들락거린다. TV에선 홈쇼핑의 패션 시간을 자주 본다. 딸은 홈쇼핑은 사지 말라고 하지만 유행도 엿보고 코디된 옷들도 유심히 본다.


  그런데 내가 본 모델들은 어찌 그리 날씬들한지 내가 그 옷을 입으면 그런 핏이 아닐때 참 슬프다. 남편은 내가 돈을 너무 아낀다며 비싼 걸로 사라고 한다. 그런데 정장을 사고나면 사진 찍으러 갈 때(나의 취미는 사진촬영이다)입을 옷이 없고, 외투를 사고나면 안에 입을 옷이 없다. 비싼거 하나 사서 어디건 입고 다니는 시절이 지났다.  비싼 옷과 싼 옷의 적절한 조화로 멋쟁이가 되는데 점점 싼 옷만으로 멋쟁이가 되려는 허황된 꿈을 꾼다.

멋쟁이의 조언 중요하다. 도곡동에서도 알아주는 멋쟁이인 동생을 동원한다. 물론 취향이 좀 다르고 동생이 하라는 대로 하고는 너무 화려해서 못 나갈 수도 있지만 귀에 쏙 박히는 조언을 하곤 한다. 스카프는 절대로 늘어뜨리지 말고 목에 칭칭 감으라는 조언을 듣고 난 후, ' 미운 우리 새끼'라는 프로의 어머니들을 보니 하나같이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렸다. '아~~ 길게 늘어뜨린 스카프는 구식이구나. '


유행은 계속 바뀌고 있고 나는 내가 한창 멋 내던 시절의 감각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나도 노력하고 있지만 그 속도에 발맞추기에 역부족이다. 열심히 스키니 스타일로 쫓아오니 이미 통바지 스타일이 트렌드이고 또 그걸 쫓아오니 부츠컷이다. 이제 나도  올해로 부츠컷을 따라잡았는데 이번 겨울에는 아주 통이 넓은 긴~ 바지를 장만해야겠다.


다음 주에 여행 갈 땐 또 무슨 옷을 가져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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