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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Dec 09. 2019

나는 정말 어른일까?

50대에도 많은 것이 처음이다.

어릴 적, 학교에는 항상 짓궂은 애들이 있었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놀릴 때면 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지금도 생각나는 현수라는 애. 눈이 동그란 예쁜 애였는데 남자애의 장난에 한순간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장난을 건 남자애는 당황해서 "미안해!"를 연발하며 달랬는데, 갑자기 현수가 고개를 들며 까르르 웃어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9살의 나는 혼란스러웠다. 현수는 그 후로도 여러 번 그런 장난을 쳤지만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못했다. 대학 때조차 남학생들이 내게 걸어오는 장난들을 능수능란하게 받아치지 못하면서 가끔 현수의 까르르 웃음을 떠올렸다.


50대 후반이 되도록 나는 '능수능란'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남이 보기에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능수능란할지도 모른다. 살아온 세월만큼 익숙하게 해내는 일들이 많겠지. 하지만 내가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일이고 할 때마다 많이 고민하면서 하고,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사진 전시를 했다. 대학 동기 사진반 활동을 하고 있는데 1주일간 전시를 했다. 나는 벌써 세 번째 전시를 하는 거라 어디까지 알려야 할지 전시에 와 준 친구에게 어느 정도 대접해야 할지 약간의 고민을 했다. 화요일에는 부모님과 남편, 딸, 동생까지 모두 전시장을 방문했다. 사실 내가 날을 잡고 데리고 갔다.

세 번째가 되니 남편이 시큰둥했고 사실 부모님도 별 관심이 없으셨다.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 내가 요즘 이런 걸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일종의 재롱잔치랄까? 동생과 남편, 딸에게도 내게 관심을 보여달라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좀 마마걸이었던 것 같다.  40대일 때에도 부모님의 그늘 속에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많았다.  엄마한테 많은 것을 의논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아이들 대학 전공을 정할 때 너무 두려웠다.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의 주름보다 내가 과연 제대로 나이 들고 있는지가 더 고민스럽다.



요즘은 내가 살필 사람이 너무 많다. 여전히 딸들을 보살필 일들이 자꾸 생기고 있고, 남편은 나를 엄마처럼 생각한 지 오래다. 무엇이건 의논하는데 일종의 허락 같을 때가 있다. 조금만 아파도 꼭 나를 찾는다. 내게 큰 나무 같던 부모님도 나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도 누군가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싶다.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는 큰 나무지만 나도 내리쬐는 햇살이 뜨겁고 빗물은 차다.



이제 나는 나이도 50대 후반이고 할머니이니 '어른'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다. 어릴 때에는 어른은 뭐든 잘 알고 뭐든 잘하는 줄 알았는데 어른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못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젊을 때와 너무나 많은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다. 난 그냥 '큰 어른' 말고 '친구' 같은 어른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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