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학시절에 사진반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이후 30여 년 동안 카메라를 만지지도 않았다. 그 사진반에서 남편을 만나 24살에 결혼했고, 난 취미라는 것을 가진 적이 없이 살았다. 졸업 30주년 행사 후, 우연히 대학 동창회에 나갔다가 동기회의 합창반과 사진반에 나가게 되었다.
어느덧 몇 년이 흘렀지만 내 사진 실력은 그냥 그렇다. 예전에 들은풍월이 있어서인지 자꾸 카메라를 가지고 놀아서인지 카메라 기능과 기술을 쉽게 익혔고, 사진반 친구들과 전시도 하고 해외까지 출사 여행을 다닐 정도니 제대로 취미활동을 하는 듯 보이긴 할 거다.
<즐거운 사진반 활동>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던 내가 사진반이니 합창반이니 하며 저녁에 외출하거나 주말에 집에 없는 일이 생기니 남편도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름 적응했다. 그런데 딸이 더 이해를 못해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아이를 봐주시는 도우미가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아서 나를 찾을 때가 있는데 언제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만사 제치고 도와주던 엄마가 밖에 있으니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너무 바쁘다는 딸의 말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사진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 장비를 바꾸었다. 목돈이 들어 부담이 된다는 것 외에 무겁다는 문제가 있다. 조금이라도 가볍다는 이유로 Sony 미러리스를 선택했지만 풀프레임 바디에 고기능의 망원렌즈까지 장만하니 상당히 무겁다.
간간히 찾아오는 족저근막염과 목과 어깨 결림 때문에 출사를 나가서 많이 걷고 오면 발이나 어깨, 등이 아프다. 해외 출사에 다녀오면 종일 카메라 배낭을 메고 며칠을 다녔기에 등이 너무 아프지만 아픈 척도 못한다. 하지 말라고 할까 봐 아파도 조용히 할 일을 한다.
2년 전부터 홍콩에 살고 있는 딸에게 갈 때면 음식이며 다른 살림살이로 가방이 무겁다. 거기에 카메라 가방을 메고 기내 가방까지 끌고 가면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진다. 마중 나온 딸은 “아유 엄마 카메라 가방까지 들고 오니 너무 무겁겠다.” 한다. 내게 카메라 가방은 그냥 기본 짐이고 저희 딸 책들과 먹거리 때문에 무거운 건데......
사실 홍콩에서 손녀를 찍어 주는 것 외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다. 가족과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면 자꾸 기다리게 만들 수 있고 산만해져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제한다. 손녀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딸은 전화중국어 또는 전화 영어를 하고 그 후에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 후에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데 빛이 좋은 시간은 다 지나갔다. 사진은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 찍어야 광선이 좋아서 멋지게 찍을 수가 있다.
홍콩은 야간 촬영도 아주 좋은 곳인데 사실 외국에서 밤에 혼자 사진을 찍는 것은 좀 용기가 안 난다. 좋은 출사지인 홍콩에 많이 가지만 엄마로, 할머니로 가기 때문에 다른 것을 우선시하다 보면 좋은 사진을 찍기는 어렵다.
홍콩에서 딸은 자신의 공부에 대한 고민을, 나는 사진을 어떻게 공부할까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왜 사진을 잘 찍으려고 해? 엄마는 뭐든 너무 잘하려고 해. 그냥 즐겨. 다른 아줌마들처럼 그냥 놀아~~~ 무엇보다 엄마한테 너무 무리야. 무겁잖아. 아구아구 힘들어하면서 왜 잘하려고 해. 사진은 엄마한테 너무 버거운 취미인 것 같아”
언제나 다정하고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 딸이라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난 몹시 서운했다. 난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꿈과 미래가 없는 건가? 물론 사진이 내 꿈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난 노력할 필요도 없고 무언가 잘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밥하고 빨래나 하면서 조용히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사진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어 너무 좋다. 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 중 일부가 사진이 되어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돌아와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좋은 사진을 발견하는 일은 희열이다. 무엇보다 같은 취미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 사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겁고, 좋은 곳에 가서 걷고,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니다 보면 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고 즐겁다. 30~40대 때 아이들을 키우느라 항상 아이들이 우선이었는데, 해가 지는 시간에(아이들을 챙길 시간이다.) 또는 밤에 카메라를 들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사진을 찍다니 50대라는 나이가 참 좋다.
누군가 인생에서 어느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가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못하겠다. 아니 어느 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인생의 순간 순간 행복했고 또 힘들기도 했다. 돌아가고 싶을 만큼 아쉽거나 후회스럽지도 않다. 그냥 지금 50대가 좋다. 내가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즐겁고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다. 하지만 부모님이 노쇠한 모습을 보며 돌보기 힘들고 조금씩 아픈 곳이 생긴다. 이번 여름에는 무릎이 자꾸 붓고 아파서 고생했다. 요가를 할 때 잘못 한 모양이다. 가족들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서 그런 거 아니냐 한다. 나는 펄쩍 뛴다. 사진 찍으러 가서 장비를 들고 다니는 시간보다 무거운 살림살이 드는 횟수나 장본 물건 나르기가 더 무릎에 나쁘다고.....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이고 사진 찍기 좋은 나이이다. 내가 언제까지 사진을 찍을지는 모르겠다. 한 친구는 10년 후 사진이 어떤 경지에 오를 것인지 얘기한다. 나는 10년 후에도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나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고민도 할 것이고 여러 시도도 하겠지만 어떤 목표나 목적이 없이 사진을 찍을 거다. 셔터를 누르며 '아, 이거 멋져!'라는 느낌이 오거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슬쩍 미소 짓는 것, 또는 내 느낌이 사진을 통해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면 그걸로 족하다. 취미는 취미일 뿐, 그것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면 그때부터 즐겁지 않고 피곤하다.
대학시절 사진반 친구 한 명은 인정받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의 첫 개인전 때 나는 퍽 감격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니 넌 참 행복하겠다. 그렇지?"라는 질문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니 항상 행복해? "라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취미를 질리지 않게, 하나 남은 사탕을 아껴 아껴 녹여 먹듯이 조금씩 즐기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