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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Jul 30. 2019

일산열무가 뭐라고

80대 친정엄마에 대해


작년부터 아버지께서 운전을 안 하신다. 85세이시니 위험하시다는 만류에 운전대를 놓으셨다. 온 가족이 안심했지만 엄마만은 무척 섭섭하고 불편해하신다. 아버지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시지만 엄마의 장보기를 위해 운전을 하셨던 거다. 대형마트, 가락시장, 경동시장을 주 1~2회 함께 가시는 것이 엄마의 나들이요 취미생활인 것이었다.


엄마는 요리의 달인이다. 내가 50이 훌쩍 넘도록 김치나 밑반찬을 잘 못하는 것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다. 어느 누구보다 맛난 반찬을 하시는 엄마께 내가 한 반찬은 그야말로 ‘니맛 네 맛도 없는 음식'이라 완전 퇴짜다. 나도 변명거리는 있다. 짭짭한 맛을 선호하는 경상도 엄마와 달리 시댁은 함흥 출신 이신지라 심심하고 시원한 맛을 좋아하신다. 시집살이 7년에 내 음식은 심심한 맛. 그리고 20년 정도 나도 일을 하다 보니 그때그때 휘리릭 하는 음식을 해 먹고 김치나 밑반찬은 엄마께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철마다 딱 그 철에 맞는 먹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 나들이가 너무나 중요한 분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요구에 맞게 운전해서 시장에 가셨는데 이제 그건 내 몫이 되었다. 나도 나름 엄마의 요구에 따르려고 하지만 어쩌다 보면 이런저런 일정으로 날짜를 미루고 내가 가능한 날은 엄마가 안 되는 날도 생기는데, 그러면 철이 지난다고 엄마는 불만이 많으시다.


이런 엄마가 요즘은 시장에 가자해도 안 가시는 때가 있다. 나날이 기력이 없어지시고 소화가 잘 안돼 잘 못 드시니 음식을 잘 안 하신다. 본인만큼 맛을 내는 사람이 없으니 입에 맞는 음식이 없다고 항상 불만이시다. 80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번의 골절로 집에 오래 계시다 보니 우울하신 날이 많고 짜증도 많아지셨다. 철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여기저기 퍼주는 게 낙이 신 분이 음식 하는 일이 버거우신 게다.


몇 달 전 엄마의 냉장고를 정리해 주고는 나는 많이 울었다. 900L 냉장고와 스탠드 형 김치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으시고 이것저것 요리하시던 분이 냉장고에 버릴 음식이 지천이었다. 엄마 못 드신다고 딸 셋이 해다 나른 음식들이 여기저기서 변해가고 있었고 나와 장을 봤던 재료들도 그대로 쌓여 있었다. 기력이 모자라 하기 싫어지시니 냉장고 앞쪽의 것만 드시고 떡과 빵으로 자주 끼니를 때우신 거다.


맛있는 것들 좀 사드시라고 해도 자꾸 아끼신다. 매달 월세넉넉히 나오는데도 맛있는 것 사 먹으러 다니는 것을 게으른 짓이라고 생각하신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드시면 좀 드실 것도 같은데 고기도 비싼 것은 안 사시고 택시도 5,000원이 넘게 나오는 거리는 타면 큰 일 나는 줄 아신다.


“엄마 따라 해.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 세 번 큰 소리로 따라 해 “라고 하면

“뭐라카노?  마 시끄럽다.”라고 일축해 버리신다.


우리 딸 셋이 모이면 엄마 뒷담화를 하며 걱정을 한다. 사위가 고기 사드리는데 아빠가 많이 드신다고 눈치 주시더라, 엄마와 외식 후 가락시장에 꼭 가야 한다고 해서 남편까지 대동해서 갔더니 겨우 감자 한 박스 사더라, 그 일산열무가 뭐라고 그거 한단, 얼갈이 한 단 사러 경동시장 가자해서 광장동에서 논현동 와서 모시고 경동시장 갔다가 집에 갔다, 녹차 돼지고기 사야 한다 해서 양재 하나로 갔다....  이제 재료를 사러 다니실게 아니라 맛있는 집 음식을 사다드실 때가 되었다며 엄마의 까다로운 입맛과 건강을 걱정한다.


지난주에 나는 혼자 경동시장에 갔다. 일산열무를 사러.

시장에 가자면 바로 화장을 시작하시는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안 가신다고 하셨다. 나는 김치를 좀 사 오겠다고 나와서 혼자 경동시장에 갔다. 아직도 엄마 없이는 야채를 잘 못 고르니 그냥 시장에서 제일 비싼 것으로 샀다.  인터넷 레시피를 봐가며 혼자 열무김치를 담궈서 갖다드렸다.


일산열무가 뭐라고 경동시장까지 가냐고 매번 불평했지만 아직은 엄마가 자꾸만 경동시장에 가자고 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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