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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sn Jan 17. 2024

2악장이 좋아질 때

눈길 주지 않았던 것에 마음을 뺏기는 행복

내게 2악장은 낯선 존재다. 클래식을 나름대로 좋아해서 종종 찾아 듣는 편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곡을 듣기보다는 귀에 익은 노래들을 듣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2악장을 편식하게 된다. 좋아하는 곡들은 대부분 1악장이거나 3악장이다. 클래식 애호가가 들으면 애송이라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2악장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는 조각이다. 카페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이 흘러나온다고 했을 때, 1악장과 3악장은 사람들이 금방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2악장은? 2악장은 모른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 이상하고 당연한 소외의 성실한 동참자였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바이엘에서 체르니로 넘어가면서 부교재로 악장의 형식을 갖춘 소나티네를 함께 배웠는데, 2악장을 연습했던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보통 1악장을 배우고 그다음에는 3악장을 배우면, 또 다른 곡으로 넘어가곤 했다. 물론 그런 관행에 딱히 불만도 없었다. 그때는 하나의 곡을 온전하게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곡을 칠 줄 아는 게 멋지다고 느꼈으니까. 게다가 2악장은 대부분 느리고 지루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름의 취향 변화를 겪고 있는데, 그것은 무려 2악장을 '찾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2악장은 그동안 그냥 넘겨버린 것이 미안할 정도로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어쩌다가 클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곡으로 듣는 일이 왕왕 생겼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2악장임을 깨달았다. 지루하다는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2악장은 아주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경쾌함과 웅장함 사이에서 누구보다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각각의 악장을 조각처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전체로 보니 그들의 아름다운 균형이 이렇게나 잘 보인다. 몇 차례 완곡을 듣다 보니 이제는 2악장만 떼어놓고 듣는 일이 더 많아졌다. 세상에 아름다운 2악장이 너무도 많다. 1악장과 3악장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면 2악장은 마음을 무너뜨린다. 듣다 보면 한없이 슬퍼질 때도 있다. 이제는 베토벤 소나타 비창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이제는 2악장이 제일 좋다. 눈길 주지 않았던 것에 마음을 홀랑 뺏기는 일이 생각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그가 내게 가르쳐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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