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그리운 날들
어린 시절, 나의 '영화관 메이트'는 엄마였다.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관에 자주 간 건지, 아니면 영화관을 자주 가다 보니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옛날의 이야기다.
우리가 자주 갔던 영화관은 명동성당 근처의 '중앙시네마'였다. 10여 년 전에 폐업을 하고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진 영화관이지만, 여전히 내게는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이다. 누구나 다 아는 <해리포터 시리즈>부터, 명작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한 지브리 영화들, 그리고 <아틀란티스>와 같은 다소 생소한 애니메이션까지, 엄마와 나는 수많은 영화를 그곳에서 관람했다.
영화를 고르는 사람은 늘 엄마였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영화는 언제나 나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눈앞의 거대한 스크린에 집중하느라 옆자리에 앉은 엄마의 표정은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 한 번이라도 고개를 돌려서 엄마를 봤더라면, 글쎄... 지루한 표정이 얼굴 가득 떠올라 있는 걸 목격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영화관에 일찍 가서 약속처럼 매번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영화관 곳곳에서 포스터를 모조리 가져오는 것이었고 엄마는 그동안 앉을자리를 찾아 놓는 것이었다. 그리곤 영화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나는 때때론 엄마랑 같이 포스터를 들여다보았고, 어떨 땐 팝콘을 먹으면서 포스터를 읽는 엄마를 구경했다. 그건 엄마만의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바쁜 워킹맘이었기에 홀로 짬을 내서 영화관에 올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았고, 자신보다 늘 다른 것들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비슷하게 생긴 외국 배우들의 이름과 필모그래피, 심지어는 할리우드의 연애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엄마에게는 분명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겠지만, 엄마가 고르는 영화는 늘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였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먼저 알아줬다면 좋았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차곡차곡 엄마와 보던 어린이 영화들이 쌓여 가던 무렵, 엄마가 조심스레 내게 혼자 영화를 봐도 괜찮겠냐고 보았다! 왜 같이 보지 않느냐고 물으니, 엄마는 나만 괜찮다면 엄마가 정말 보고 싶었던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 제안을 아무런 불평도 걱정도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홀로 상영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이 쓰이는지 불편해했다. 우리가 각각 보기로 한 영화는 거의 동시에 시작했지만, 끝나는 시간은 내가 20~30분 정도 더 빨랐다. 엄마는 지금 앉아있는 이곳에 앉아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10살이면 그렇게 어린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 20~30분이 그렇게 미안하고 불안했나 보다.
그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았다. 어차피 일찍 나가봐야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고 있던 것이다. 이름 한 자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어른이 된듯한 묘한 기분과 뿌듯함이 어렴풋이 마음에 남아있다.
상영관에 나와 매표소 근처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기다리기로 한 장소가 아니었네.) 영화관에 오면 늘 엄마와 영화 포스터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사람 구경을 했다.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해 보였다. 바깥에 있는 매표소부터 안쪽까지 넘치던 그 활기가 여전히 기억난다. 영화관은 그런 공간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설렘과,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저마다의 감상으로 떠드는 목소리가 있는 곳.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지루함 없이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종종 같이 영화관에 가서 다른 영화를 봤다. 그 암묵적인 룰은 11살이 끝날 무렵, 명동과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더 이상 중앙시네마를 찾지 않게 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명동을 지날 때면 중앙시네마가 있던 터를 지나가 본다. 이제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고, 또 영화관은 북적거리기보다는 차분한 영화관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가끔은 그날들이 너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