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중독이 내가 뇌를 빠르게 사용하는 좋은 현상인가?
요즘 나는 시리즈 드라마를 잘 못 본다.
대부분 흥미진진한 첫회 1편의 도입부 만으로도 너무 느리고, 지겨운 것 같고, 답답하고... 해서 어느 정도 보다가 보면, 문득 내가 그다지 의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넘겨, 넘겨, 넘겨, 넘겨, 이렇게 되어 버린다.
예전에는 1시간짜리(한 시간 반짜리도) 드라마를 집중해서 즐기면서 무던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는데, 요즘에는 1회에 1시간짜리 드라마는 한 번에 보지 못하고 끊어서 나눠가며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마지막까지 꼭 보려면은 2배속 아니면, 넘겨 넘겨 넘겨를 반복하면서 전체 시간을 한 30분쯤으로 단축시켜야 간신히 끝까지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어제까지 나는 그동안 미뤄 놓았던 디즈니플러스의 히트작 총 20편의 "무빙"시리즈를 전날에 이어 이틀 만에 모두 봤다. (사실 봤다는 것이 좀 어폐가 있는데 봤다기보다는 어쩌면 훑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전체 스토리는 거의 다 안다. 어떤 큰 사건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지, 이놈이 나쁜 놈이었는지 좋은 놈이었는지 그리고 대망의 결말도 말이다.
전반부 내용에는 풋풋한 고등학생들의 간지러운 이야기나 중반이 되면 나이가 좀 든 어른들의 달달한 멜로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 매 회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그 순간의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에잇!!! 넘겨 넘겨.. 그러면서 빨리 넘어가서 빨리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고 싶어서 안달하며.. 넘겨버리고 말았다(사실 유튜브 숏츠를 통해서 많은 재미난 장면을 보는 게 어쩌면 더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살짝만 길어도 참지 못하고 넘기는 증상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의 행동과 그 변화에 신경을 써야 하는 마케팅 담당자의 입장에서는(심지어는 나도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 보면) 이러한 변화가 엄청나게 큰 마케팅결과에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골반이 멈추지 않는 탓일까" 밈 열풍…AOA '짧은 치마' 10년만 재주행 [줌인] : 네이트 연예
최근에는 이런 소비자의 특성, 사람들의 행태가 걱정스러운 것인지 신문기사나 뉴스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위에 기사를 보면 어떤 사항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냥 단순히 재미있다, 즐겁다는 직관적이고 말초적인 느낌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사람들이 중독적으로 짧은 스토리와 밈등을 소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반복적이고 짧은 B급감성의 영상들이 재미있다의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그마저도 없이 앞뒤 스토리의 맥락도 필요 없다.. 그냥 웃기면 된다.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는 정도까지 아니 어쩌면 재미가 없는 수준임에도 사람들이 그저 순간적인 찰나적인 배설의 대상으로 남들이 소비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주목할 점은 알아차리기 전에 사라지는 밈도 많고, 수명이 몇 주를 넘기기 어려워지면서 밈의 본질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 없음’과 ‘무맥락’이 강력한 해학 코드가 된 것이죠. 웃기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유행을 이끌면서 밈은 이제 더는 풍자나 깊은 공감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76692 "
혹시, 그런 느낌 받아본 적 없는가? 예전에는 유튜브 앞에 그 유튜브를 만든 사람을 소개하는 짧은 징글과 멘트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사실 뭐 그 시간은 길어야 약 2초~3초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그 2초를 견디기가 싫어지고 심지어는 그 2초를 듣기 싫어서 그 사람의 유튜브는 시작하자마자 넘기는 버튼을 누르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2초의 여유를 갖기가 힘들어진 걸까? 내가 원래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졌나? 그걸 왜 참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책을 읽기가 힘든 건가? 잘 모르긴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엔가 중독되고 있고, 감동을 느끼는 그 순간, 공감의 동화가 되는 부분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보통 TV광고는 15초, 유튜브광고는 30초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사실 15초에 어떤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넣어서 소비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 짧은 시간에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공감을 소비자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광고가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과거로부터 이어내려 온 소비자의 요구, 소비자의 욕구 제품의 특징, 기술의 차별점 등을 이야기하는 광고가 아직까지도 소비자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최근의 광고 중에서 히트한 광고들을 살펴보면 어딘가 예전과는 광고의 문법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ttps://www.youtube.com/shorts/hhsrJDbSBs4?feature=share
이 광고는 쿠팡의 로켓배송을 보여주는 FOOH광고인데(FOOH광고가 무엇인지는 찾아보시면 금방 나옵니다 ^^) 이 광고는 기존의 15초가 아닌 7초로 제작되어 소비자에게 노출되었다.
내용은 기승전결이 없다. 그저.. 애드벌룬이 날아가며 택배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다다... 하지만 이 광고가 인기를 끌고 나름 소비자들에게 관심과 기억을 남겼다니.. 과거의 광고문법과는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단순함, 밈, 반복, 재미, 독특함, 재기 발랄함, 이상함 등으로 버무려진 최근의 소비자의 선호와 관심은 그 이전에 우리가 상상하고 가정할 때 소비자의 정의된 이미지(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물론 그 이전에도 이성적이라는 가정은 맞지 않았다).
요즘 숏츠와 숏폼에서 머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책을 볼 수 있는 태블릿과 리더를 사고 리모컨을 사고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는 넘겨 넘겨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야 이거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바뀐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이 TV를 너무 보면 바보 된다고 하신 그 말씀처럼 이제 우리는 유튜브 숏츠나 숏폼 너무 보면 바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정말, 바보 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몇 자 끄적여 본다...
10년 뒤,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 그때는 글을 다 읽지 않고 요약해 주는 로봇이 대신 감상을 느껴줄지도 모르겠다..
내 책꽂이에 있는 좀 두꺼운 소설책이라도 꺼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