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스튜디오 니콜슨 이야기.
요즘은 크게 가시적이지 않아도 깊은 것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보는(Seeing) 능력이 퇴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후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것들에도 힘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의미를 찾는 것, 부여하는 것은 얼마 가지 않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경험은 창조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벌이는 모든 것들이 '기획'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러한 '조각' 즉, 일상의 파편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모여 층을 만들기도 하고, 조직화되기도 한다. 가시적이지 않아도 깊은 것들. 힘 있는 것들을 닮아가고 싶다.
스튜디오 니콜슨(Studio Nicholson)은 앞에서 말한 닮고 싶은 '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브랜드다. 어떻게 보면 꽤나 심플하고 밋밋한 옷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나, 선과 곡선, 그리고 의복을 이루는 구조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실루엣, 그러니까 옷을 구성하는 것 중에 하나로 '빈 공간'을 의도한 듯 나타나는 것들이 묵묵하게 자리 잡아 전체의 형태를 완성해낸다. 즉, 구조적인 옷을 만들어낸다.
구조적인 것으로부터
스튜디오 니콜슨의 디자이너이자 디렉터인 Nick Wakeman(닉 웨이크 먼)은 런던 출신 패션 디자이너로, 20여 년간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다. 구조적인 옷(modular)을 다루는 브랜드인 스튜디오 니콜슨은 그녀의 정체성을 완전히 표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스튜디오 니콜슨 브랜드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활용된 것이 Modular Wardrobe, 즉 구조화된 옷의 구성이다. 남성복에서 자주 보이는 디테일, 소재 등을 적극 활용하여 성의 구분이 모호한 옷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녀가 만드는 브랜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재봉사였던 어머니와 사업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재능들, 그리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직접 옷을 만들어줬다는 일화로부터, 그리고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돌아다니며 얻었던 경험으로부터, 남성복을 만들고 최상의 소재들을 다뤘던 경험으로부터. 일전에 말했던 '경험의 연속성'이 그녀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고스란히, 옷에 녹아들어 있다.
일본을 거쳐, 영국까지
20년간 디젤, 마크앤 스펜서 그리고 수많은 영국 브랜드를 거쳐 2010년 만들어진 그녀의 레이블은 요 근래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실루엣 중심의 일본 브랜드를 닮아있기도 하다. 유독 그녀의 브랜드에서 일본의 감성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15년간 일본을 여행하며 얻었던 영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활용해 일본의 건축, 인테리어에 담긴 미감을 관찰하며 얻은 것들을 구조화시켰다.
모든 경험은 '디자인'의 베이스가 되었고, 구조화된 컬렉션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베이스가 되는 재료는 '일본'이었다. 패브릭은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가져왔고, 생산은 유럽 전역과 일본을 거쳤다. 그럼 그녀의 일부였던 '영국'은 그녀의 브랜드 어디에 자리 잡았을까? 바로 색과 이미지 브랜딩에 스며들었다. 어둡지만 아이러니한 감성을 지닌 옷. 그리고 영국식의 시니컬한 '유머'를 볼 수 있는 옷. 그게 바로 스튜디오 니콜슨을 만드는 문화적인 근간이었다.
성의 반전 (Gender Changing)
스튜디오 니콜슨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 반전된 옷의 느낌이다. 멘즈 웨어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남자 옷 또한 즐겨 입었고, 옷을 바라보는 이해도가 달랐다. 자켓과 셔츠를 즐겨 입었고, 심지어는 여성 청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남자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인데, 그녀가 만들어내는 옷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자가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옷들을 실루엣과 패턴을 녹여서 우아하고 심미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런지 남성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여유로운 실루엣의 여성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A자 핏으로 크게 떨어지는 Jarvis Raincoat나, 밀리터리 색이 짙게 묻어 나오는 옷들 또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게 해석해낸다.
특유의 차가움과 유머가 공존하는 '스튜디오 니콜슨'은 분명히 손쉽게 다가가기 쉬운 옷은 아니다. 처음 브랜드의 존재를 알고 직접 편집샵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입어보았지만, '실루엣' 베이스의 옷은 어딘가 소화하기에 힘든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년 스튜디오 니콜슨이 나오는 매체들을 보고, 언제든 한 번 제대로 입어보고 싶다고 느낀다.
브랜드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일 텐데. 아마도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을 담은 브랜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화로부터, 닉 웨이크먼이 보는 시야로 그리고 그녀를 이루는 '정체성'이 깃든 아주 멋진 옷을 놓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울 것이기에 이번 시즌에도 역시나 그녀의 옷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