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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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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06. 2020

Ending Note

길냥일기 #01

내 이름은 또건이야. 난 심학산에서 나고 자랐지. 비록 짧은 묘생이지만 지난 삼 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어. 그래도 아빠와 함께 했던 동안은 나의 전성기였지. 아빠와 헤어지고 지난 일 년 여...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목 뒤로 설움이 딸꾹질처럼 걸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왔지. 배고프면 어슬렁 거리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볕 좋은 언덕을 만나면 그루밍도 하다가, 졸기도 하다가,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묘생 회의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빠가 있을 땐 좋았어. 그렇다고 내가 아빠랑 절친이었던 것은 아니야. 아빤 과묵하고 말이 없는 분이었지. 어렸을 땐 나를 데리고 사냥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동네 밥자리도 함께 가곤 했지만, 그때도 살갑고 다정하진 않았어. 그냥 묵묵하게 나를 지켜보는 스타일이었지. 그래도 동네 아이들에게 쫓겨서 심학산 우리 집에 헐떡거리고 가서 사정을 얘기하면 다독 거리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그루밍도 하며 위로해주기도 했지. 사실,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고, 마을이며 산속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아빠가 있고, 그거면 됐거든.


어느 날인가부터 아빠가 집에 오지 않았어. 하루, 이틀, 날을 세어가며 아빠를 기다렸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아빠를 볼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나를 두고 영역을 옮겨 간 건 아닌지, 혹시 사람들에게 잡힌 건 아닌지, 걱정을 하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 헤매 보았지만 결국 아빠를 만날 수 없었어. 그러다 문득 어느 날, 달 밝은 밤에 하늘을 보다 느꼈지. 아빠는 고양이 별로 돌아갔구나... 저 멀리 하늘에서 나를 보며 반짝이는 별이 아빠라는 것을 그냥 마음으로 느꼈던 거야.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됐다.


아, 갑자기 센티멘탈 해졌는데... 나는 지금부터 결심한 일을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에 감상적이 되면 안 된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나도 고양이 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왜 그렇게 구차하게 먹이를 찾아 헤매는지, 문득 세상 모든 일이 의미 없다 느껴졌기 때문이야. 그래도 길에서 삼 년이면 살 만큼 살았기에 나 스스로의 결심으로 고양이 별로 돌아간다는 기록쯤 남기고 싶었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적는 ‘유서’ 같은 것 말이야.


아빠는 심학산 남쪽 자락 마을을 좋아하셨어. 옹기종기 주택들이 모여 있는데 사람들도 많지 않고 중간중간 마당에 고양이 밥을 주는 집들도 많아서 큰 어려움 없이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는 곳이지. 그곳에 아빠와 종종 가던, 우리가 ‘아지트’라 불렀던 집도 있었어. 그 집 아줌마는 우리 아빠 친구라고 할 수 있지. 밥도 잘 챙겨주고 가끔은 데크에 앉아서 일하면서 아빠와 수다 떨기가 취미였다고 해. 아저씨는 가끔씩 닭 가슴살을 삶아서 동네 길냥 모두 모여 푸짐하게 먹이기도 하는, 맘씨 좋은 가족이 살고 있지.


아빠와 난 그곳에서 대부분 밥을 해결하곤 했는데,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는 잘 가지 않았어. 뭐랄까 아빠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그 집에 가면 고양이 체면 구길 일이 생길 것 같더라고. 운다든지, 혹은 아빠 생각에 마음이 말랑해진다는지 그런 거 말이야...


무튼.. 일부러 나는 산 북쪽 아파트 단지 쪽으로 밥자리를 찾아다녔어. 요즘은 어느 동네나 길냥이 밥자리가 많이 있어서, 사실 먹고살기는 좋아졌지. 아파트 단지는 아무래도 차도 많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눈치를 보는 일은 더 많아졌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며칠 전이었어... 아파트에는 짓궂은 아이들이 많아. 그 중딩들 있잖아... 호환마마 보다도 더 무섭다는. 고양이 밥에 약을 타는 애들도 있고 잘 못 걸리면 고양이를 농구공 마냥 던지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내가 당한 거야. 밥을 먹고 어슬렁 거리며 산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난 아빠를 닮아 호랑이 흉내 내며 어슬렁 걷는 것을 좋아하지) 중학교 애들 몇 명이 모여 있다가 나를 보더니 잡으러 오는 거야. 잡히지 않으려 뛰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뭔가 둔탁한 것이 머리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어. 무엇인가 던진 것 같았고, 그게 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뛰었지. 헐떡 거리며 집에 와서 겨우 한 숨 돌리려는데 왼쪽 귀 쪽에서 끈적한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어. 맙소사, 피였어.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뛰었던 거야. 손에 묻은 피를 그루밍하다가 문득 내 신세가 처량해서 엉엉 울었다. 겨우 끼니 때우자고 피를 흘려 가며, 내가 뭐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맞아 가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거였어. 그래, 아빠 따라서 고양이 별로 돌아가자, 그렇게 결심하게 되었던 거야.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빠와 함께 했던 아지트에 한 번 와보고 싶었어. 이제 아빠와의 추억을 한 번 곱씹고 내가 왔다는, 아니 아빠 있는 고양이 별로 돌아가야지. 어떻게 죽을 거냐고? 글쎄, 그건 뭐 생각을 해봐야지. 높은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가장 가능한 방법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착지력이 좋아서 중간 가지가 없고 아주아주 높은 나무를 골라야 할 거야. 아니면 농수로 시궁창에 있는 물을 배 터지게 먹으면, 죽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내가 비위가 약해서 냄새나는 시궁창 물을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아지트에는 오늘도 데크 쪽에 가지런히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네. 이 집이 좋은 점은 늘 깨끗한 물을 따로 그릇에 담아 준다는 거야. 밥 주는 집은 많은데 의외로 물을 함께 주는 밥자리가 많지 않아서... 가만, 저 밥자리에서 밥 먹는 쟤는 누구지? 처음 보는 아인데... 이 동네에서 보기 어려운 삼색이 카오스에 커다란 눈이 초록으로 빛나는 저 아이는...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아. 아, 그 와중에 하얀 양말은 왜케 이쁜 거야. 헉. 나, 나를 본다.. 눈을 찡긋 인사도 하네. 심장이 녹을 것 같아. 믿지 않겠지만, 나 묘생 3년 만에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야. 죽기 전에 이상형을 만난 거야...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도 이쁜 그 아이... 난 오늘이 마지막인데... 아무래도 고양이 별로 여행 가는 계획을 잠시만 늦춰야 할 것 같아. 하루, 이틀 이 아이 얼굴 더 보고 간다고 뭐가 문제가 될 건 없잖아. 어디 가니? 잠시만! Ending note는 당분간 never ending이 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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