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레드힐 코리아
법인 설립만 일곱 번째다. 첫 창업은 96년 12월, 여의도에서 시작했다. 기자생활 8년 만에 처음 회사를 만들었다. 이제와 생각해도 창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무지해서, 용감했기에 감행했던 모험이었다.
홍보회사를 하면서 이벤트 회사를 만들기 위해 다른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고 미국 LA에서 설립한 경험도 있다. 어떤 창업은 내 경력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참담하게 마무리되기도 했고 또 어떤 창업은 정성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2020년 12월, 다시 회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싱가포르 회사와 손을 잡고 시작한 외국투자 합작법인. 창업에 관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은 8월 어느 날인가 화상회의로부터 시작됐다. 싱가포르 레드힐 커뮤니케이션즈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이콥과 줌으로 만나 더듬거리는 영어로 내 소개를 했다. 당시 레드힐이 한국 지사 설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뜻을 모아 회사를 만들게 될지는 몰랐다. 몇 년간 창업 생태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 분야에서 '홍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 더러 개인적으로 코칭을 해주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전략만큼이나 실행이 중요한 분야인지라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웠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십 년만 젊었다면... (=내가 좀 더 과감한 실행력이 있었더라면...)' 스타트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회사를 만들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 간의 창업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혼자의 생각으로, 힘으로 되지 않는 게 회사를 만들어 꾸려나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발 능력을 갖춘 천재라면 될 법도 하겠지만, 특히 서비스 회사는 결코 혼자 힘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줌 회의에서 Jacob의 얘기는 흥미로웠다. 그는 초기부터 VC, 투자자들과 함께 일했고 그러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들을 위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는 일을 많이 했다고. 스타트업들이 커나가면서 레드힐 커뮤니케이션즈도 함께 성장했고 글로벌로 발 빠르게 네트워크를 확장해서 이제는 동남아에서는 도시 단위로 지사와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고 미국, 유럽까지 지사망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힐은 PR 분야 권위 있는 리서치 기관이 '홈즈 리포트(Holmes Report)' 선정, 2019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PR 에이전시로 뽑혔다.
처음 창업했던 드림커뮤니케이션즈가 떠올랐다. IT 기자 경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당시는 '벤처기업'으로 불렀다)의 홍보를 돕고자 했었다. 드림의 전성기 때는 아마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한국시장에서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를 설립하고 투자를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던 방한 기자회견이 아니었나 싶다. 2000년 말이었다. 손정의 회장 방한 관련 홍보를 맡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 홍보를 맡았고 스타트업들과 일할 기회가 더욱 많아졌었다.
이제 다시, 내가 스타트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회사를 만든다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해왔고,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파트너가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코로나-19의 장벽도, 화상회의라는 제한도 뛰어넘고 그 손을 잡았다.
세 번 정도 화상회의가 더 이어졌고 그 몇 배의 이메일이 오고 간 이후 레드힐 코리아의 설립을 확정했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실제로 만나지 않는 사람과의 JV라니! 정말로 신기하고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제일 큰 걱정이었던 '함께 할 사람들'도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프레인에서 손발을 맞춰 본 경험있는, 홍보로만 보면 나보다 경력이 많은 전문가인 후배와 뜻을 모을 수 있었다. 뭔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여지는 느낌이었다.
레드힐은, 체계가 잘 갖춰진 조직이었다. 컨설턴트들이 고객들을 위해 창의적인 커뮤니케이션 제안을 할 수 있도록 IT, 디자인 등 '지원 부서'의 역할을 잘 세팅해 놓았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수시로 줌 미팅을 통해 회의를 한다. 싱가포르 팀은 물론, 미국 워싱턴, 베를린, 아부다비 등 세계 곳곳의 팀들과 만났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부터 VC, 스타트업들과 함께 일을 해서인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의 '주업'이 아닌 글로벌 진출시 현지 시장에서의 진출 전략을 짜는데 필요한 시장조사를 포함해 스타트업 특화된 서비스 경험이 많다는 점이었다.
다시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의 서비스 체계를 짜면서 그 많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 곳이 이 분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 환경도 크게 바뀌었고 기업이,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도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혁신의 아이콘, 스타트업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안하고 함께 실행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연말, 머릿속이 요동치고 있다. 내년엔 좀 더 많은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좀 더 많은 도전과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