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필요했던 이유와 퇴사 후 첫번째로 하게 된 일
회사를 다니면 보통 건강을 내어주고 월급과 경력을 받게 되는데, 이번 퇴사에서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서 손해를 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자가진단 해봤다.
30대 중반의 10년 이상 재직자로서 노동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무너져버린 코어를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나고 엄연히 내 테이스트가 존재했는데, 조직생활 속에 모서리가 너무 많이 다듬어지고 다듬어져서 올망졸망한 보기 좋은 자갈이 되어버렸다. 회사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살도 찌고 코어근육도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신적 코어도 같이 무너졌다.
나는 어쩌면 울퉁불퉁하고 불완전하고 거친 돌이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만두자마자 중2병이 걸려야만 하게 되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짜 내 취향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는지, 뭐가 좋은지조차 스스로도 헷갈려하고 있었다.
그 지표를 찾거나 만들기 위해 세상에서 제시하는 여러 기준들을 탐색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을 0부터 다시 해보려고 했는데, 나 자신의 개성을 많이 잃은 상태에서 그 작업은 시작부터 꽤 어려웠다.
최근 세상에서 제시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여러 지표 중 하나가 퍼스널 컬러 진단인데 어쩌면 그것도 자아의탁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 무엇인지, 어떤 기준에 내가 맞춰야 하는지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기준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코어는 나를 지탱하는 중심이고 기준이다. 그걸 재건하는 게 이번 퇴사에서 주어진 과업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들은 나라는 사람의 정의를 지속적으로 주입시킨다. 당신 이런 취향이지? 당신 이런 사람이지? 당신 이런 과지? 나도 그런 기준에 너무 많이 휩쓸리고 주입당해왔다.
그 기준에 답이란 게 있나. 내가 뭘 원하고, 어떤 걸 할 수 있고, 왜 이런 것들을 원하고 끌려하는지 아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커리어를 쌓거나 일을 한다는 건 어쩌면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그 보상으로 돈이 따라오는 것이고. 전문가로서의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한다는 그 방향만 바라보고 왔으나 아직은 잘 모르겠고, 그걸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레퍼런스나 기준, 트렌드가 아니라 진짜 나의 무드나 테이스트, 강점이 뭔지 스스로와 대화를 이제 막 하기 시작했다.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나를 마케팅한다는 게 모순적이긴 하지만, 순수한 액기스를 이런 탐색 끝엔 찾게되지 않을까. 내 원액과 울퉁불퉁한 다듬어지지 않은 그 1% 유니크함을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