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갓 헬프 더 걸 (God Help the Girl)
괜찮아요, 청춘?
God Help the Girl
지난 겨울, 한 미술관에서 진행한 크리에이터의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다.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와 '연애의 발견'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 정현정이 주인공이었다. 그녀는'썸'과 연애의 판타지가 주를 이루는 요즘, 구남친과 지지고 볶는 현실적인 연애 드라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별 거 아닌 연애마저 즐기지 못하는 20대가 가여워서라고 했다. 요즘 미국 아이비리그에선 여학생들이 남학생에게 '오늘 내 기숙사에 룸메이트 없는데, 놀러 올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유행을 넘어 사회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았다고 한다. '라면 먹고 갈래?' 라고 추파를 던지는 우리나라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나 거기나 사는 게 힘들어서, 돈도 시간도 없는데 타인과 하나부터 열까지 맞추고 책임져야 하는 연애가 20대에겐 부담스러운 사치인 거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 없다. 한창 풋풋한 연애의 재미에 빠졌어야 할 대학 시절부터 나에겐 어엿하게 독립한 어른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덕분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 꿈을 위한 스펙을 하나 둘 쌓아갔다. 하지만 언젠가 무엇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내 안의 너무도 나약한 존재와 기분 나쁜 조우를 한 셈이다.
영화 ‘갓 헬프 더 걸(God Help the Girl)’의 주인공 이브도 오랜 시간 그녀 안의 나약한 존재 안에 갇혀 있던 소녀다. 영화 ‘갓 헬프 더 걸(God Help the Girl)’은 거식증을 앓고 있던 이브(에밀리 브라우닝)가 정신 병원을 뛰쳐나와 우연히 만난 무명 밴드의 리더 제임스(올리 알렉산더), 캐시(한나 머레이)를 만나 밴드를 결성하는 이야기를 그린 음악 영화이자 청춘 영화다. 무료한 병원에서 유일한 돌파구였던 음악을 그녀는 병원 밖 세상에서 자신을 한없이 믿어주는 친구들과 마음껏 즐긴다. 밴드를 결성해 멤버를 모집하는가 하면 짜릿한 연애의 맛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낼 계획도 세운다. 비록 이따금 찾아오는 병의 흔적은 여전했지만, 나약한 나에게 이별을 고하고 과감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런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상황을 그대로 음악에 담아내는 방식도 흥미롭다. 녹음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장면에서만 영화의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나 ‘프랭크(Frank)’와 달리 ‘갓 헬프 더 걸(God Help the Girl)’은 마치 뮤지컬처럼 대사가 곧 가사가 된다.
자유를 얻고자 했던 이브,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캐시, 완벽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던 제임스. 서로의 상황도, 음악을 하고자 했던 이유도 달랐지만 음악이라는 접점에서 제 3의 성장을 마친 셋은 만남이 그랬듯 그들다운 이별을 준비한다. ‘Eve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이 꿈에만 그쳤을 거야’ 이별의 순간 제임스의 한 마디가 왠지 모를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유야 어찌됐건 연애를, 혹은 취업을 기꺼이 포기하고 청춘이 얻은 건 무엇일까. 하나의 희생으로 다른 하나를 얻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과거의 이브처럼 지금 당신의 청춘에겐 나약함만이 남지 않았느냐고 영화는 묻는다. 세상 밖에 나온 그녀가 제임스에게 일깨워 준 것은 무엇인지, 영화의 이름처럼 그녀를 도운 것이 신이었을지 혹은 그녀 자신이었을지. 나약한 나와 다시 한 번 대면해 물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