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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be amaranth Sep 06. 2015

인생의 맛

영화 해피해피 와이너리 (A Drop of the Grapevine)



인생의 맛 

A Drop of the Grapevine






언젠가 '워월화아아수우모오옥금퇼'이라는 문구를 보고 '맞아'라는 말을 절로 내뱉은 적이 있다저 문구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주말당신은 금쪽같은 주말의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는가나의 경우는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 덕분에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의 상태로 보내야 다음주를 보낼 힘을 얻는다십 년 넘게 듣고 있지만 여전히 정이 가지 않는 '개그콘서트'의 엔딩 곡마저 끝나면 가슴 속 어딘가 묵직한 무엇이 점점 더 제 몸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느껴진다내일 있을 회의 고민부터 왜 신은 월요일이라는 어마 무시한 날을 만든 건지 라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아마 '월요병중증 환자임에 틀림없다월요일을 부정하고 싶을 땐 어김없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스탭 알바를 하며 느리게 사는 것도 참 좋겠다하지만 다음달 카드 고지서를 무시할 수 없으니 이마저 생각에 그치고 만다지난 주말엔 어떻게든 떠난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이 영화를 봤다

바로 영화 '해피해피 와이너리'.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여행자의 기분을 느끼기는커녕 더 복잡한 생각에 잠겨버렸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된 홋카이도의 서정적인 풍경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설렘을 가져다 준다.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영화를 통해 하는 간접경험이 최선의 선택이고 꽤 큰 위안을 가져다 주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형 아오가 포도 나무 달랑 한 그루가 있는 밀밭으로 떠나온 이유는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지휘자로 살았던 아오는 어느 날 알 수 없는 난청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밀밭으로 도망쳐와 자살시도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 이내 아버지가 남기고 간 포도나무를 살려 포도농장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동생 로쿠와 함께 피노누아 와인 만드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지만 이마저 녹록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암모나이트를 찾겠다고 갑자기 나타난 한 여자 에리카가 나타나 대뜸 밀밭 옆 황무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오와 에리카, 힐링을 받으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찾으러 떠나온 이곳에서 인생의 또 하나의 갈등이 시작된 거다.  





│ 어쩌면 인생은, 주말의 와인 한 잔 같은 것.


무식해 보일정도로 목을 매서 만드는데도 제대로 된 와인은 만들어지지 않고, 내쫓으려 했던 에리카의 존재가 오히려 점점 익숙해진다. 떠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생각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 순간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스토리에 답답함이 느껴질 무렵, 영화는 평화로운 홋카이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보여주며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관객을 달랜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소품과 무드 또한 한 몫 한다. 에리카의 캠핑카, 테이블 메이트, 빈티지한 패션의 조화가 마치 동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선사한다. 덕분에 '해피해피 와이너리'는 '킨포크 라이프'의 정수를 보여준 영화라는 호평을 얻었다.





아오와 에리카는 포도밭 한 복판에서 에리카가 만든 음식으로 소소한 만찬을 즐기기도 하고 잊고 살았던 음악과 다시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낀다당장 눈 앞에 근사한 와인이 보이진 않지만순간순간 마음에 난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는 것그 순간 그 자신도 느꼈을까일 년간의 수확 기간을 거쳐 까다로운 제조와 숙성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와인 한 잔은 아오의 인생굴곡을 그대로 대변한다음악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에 빗대어 그리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이곳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해피해피 와이너리는 해피해피 브래드의 연작 격 영화로 전편에서는 와인이 아닌 빵을 소재로 삼았다마냥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씁쓸하고 떫은 맛 역시 인생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인생은 주말의 와인 한 잔 같은 것 아닐까. 떠났건 떠남을 영화로 대신했건 어쨌든 지옥 같은 월요일은 다가올 것이고꿀 같은 주말 역시 찾아올 것이다평일 내내 시달렸던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말이라는 달콤한 맛에 잠시 잊었다가 다시 그 스트레스와 대면하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인생도 별 거 없이 흘러가는 과정이라는 것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나면 내 인생의 와인도 완성될 거라는 것지난 주말의 끝자락나는 그 대단하고도 허무한 사실을 깨달으며 아오와 내 인생이 그대로 담긴 와인 한 잔을 마셨다.월요일이 코 앞이었지만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아니그보다 더 낭만적인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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