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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be amaranth Sep 07. 2015

우리 그냥 사랑하게(살아가게) 해주세요

영화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우리 그냥 사랑하게(살아가게) 해주세요

Moonrise Kingdom





지구 반대편에선 땅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져 하루가 멀다 하고 삶을 잃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상황이 얼마나 다를까. 추악한 진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동안 쓸 데 없는 연예인의 가십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어른들에겐 도피처가 필요하다. 마치 영화 '문 라이즈 킹덤' 속 뉴 펜잔스 섬 같은 곳이.





│We just want to be together. What's wrong with that? 


1960년대, 여름의 끝 무렵. 뉴 펜잔스 섬의 소년 소녀가 가출을 감행했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과 남 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이지만, 친구라곤 라디오와 책, 그리고 고양이뿐인 외로움 많은 소녀 '수지'가 사건의 주인공. 가출의 목적은 현실을 떠나 둘만의 사랑이 이루어질 아지트를 찾기 위해서다. 뭣 모르는 철 없는 아이들의 투정 정도가 아니다. 그들에겐 일생 일대의 심각한 사건이고, 가출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 역시 비장하다. 1년 전, 교회에서 연극을 보다가 우연히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반한 샘은 펜팔을 통해 서로의 슬픔과 외로움을 공유하다 천천히, 그리고 비로소 떠남을 결심한 거다. 동화책, LP, 텐트 등 아끼는 물건들을 챙겨 떠나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골 때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벌레로 귀걸이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고, 어른을 따라 어설프게 프렌치 키스를 하더니 ‘내 가슴 만져도 돼. 더 커질 거야’라는 발칙하기 그지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부모님과 자신을 싫어하는 친구들을 떠나 그들만의 원더랜드로 과감히 떠난 샘과 수지의 모습에게서 어른보다 더 굳은 용기와 패기 같은 걸 느낀다. '때려 쳐야지, 다 그만 두고 떠나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줄만 알았지, 현실이라는 장애물 하나를 넘지 못해 주저 앉고 마는 나약한 어른의 모습이 그들을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리라. 





│I love you but you don’t know what you're talking about. 


어른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했던 무모한 일탈도 잠시, 수지의 부모와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의 손에 덜미를 잡혀 노란 텐트 안, 소년 소녀의 달콤했던 하룻밤의 가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샘의 양육마저 포기한 위탁인 덕분에 샘은 소년원에 가야 하는 위기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그들의 눈물겨운(!) 사랑은 포기하는 법이 없다. 샘을 싫어하던 스카우트 대원들까지 그들의 2차 가출 작전에 합세한다. 그들의 두 번째 가출의 성공 여부는 이 글을 통해 영화를 접하게 될 이들을 위해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시종일관 순수한 둘의 사랑을 막는 악랄하고 이기적인 악당에 맞서 싸우고 모험하는 영화의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에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빈티지한 색감(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핑크톤의 영화라면, ‘문라이즈 킹덤’은 전체적으로 옐로우 컬러가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과 오차 없이 떨어지는 대칭, 소품, 폰트 등의 영상미가 더해져 그야말로 영화가 아닌 동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럼에도 동화 같은 이 영화가 마냥 유치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 안팎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모습 덕분에서 온다. 영화 안 아이들의 순수함을 그르치는 못된 악당도 어른이고, 영화 밖에서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부러워하는 나약한 관객도 어른이다. 힘도 의지도 없지만, 악함을 지닌 어른의 이중성은 어찌됐건 어린 아이들의 눈엔 다 똑같아 보일 거다. 저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을 거라는 마음, 그걸 간파한 순간 ‘문 라이즈 킹덤’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동화에서 어른들의 도피처가, 그 도피처는 허영이 아닌 지키고 싶은 현실로 바뀌고 만다.





지난 봄, 밑으로 가라 앉는 배 안에서 ‘우릴 구해줄 거야’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구명조끼를 나눠 입었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따뜻한 육지에서 진실을 가리고 묻고 있었던 이도 어른이고, 차갑게 변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이도 어른이었다. 지금쯤 어른이 되었을 샘과 수지는 노란 텐트 속 하룻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무능력한 어른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 만큼은 어른같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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