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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Feb 02. 2022

[사운드 쿠킹 클래스 1]

첫 번째 수업, 식재료 [소리]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사운드키친]의 마스터 셰프입니다. 사운드키친? 웬 셰프??

[사운드 쿠킹 클래스], 그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우선 간단히 제 소개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 노래패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도 좀 불렀었는데요 영 소질이 없었던 (재능이 있었다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을 수도...) 모양입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공연 음향을 맞게 되었는데, 그게 또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각종 대학교 축제부터 故 김광석, 안치환, 그룹 <동물원>, <산울림>,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콘서트에서 라이브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미국 뉴욕에 있는 Institute of Audio Research라는 학교로 유학도 갔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광고 대행사에 들어가 CF PD로 몇 년간 일하다가 소리가 좋아, 음악이 좋아 녹음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약 20년 넘는 시간 동안 광고 Audio PD, 믹싱 엔지니어로 활동해왔고요 지금은 [사운드키친]이라는 광고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주방장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고르고, 만들고, 성우나 CF 모델의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사운드 디자인을 하고, 믹싱을 해서 잘 버무려 맛있는 사운드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왜 주방장이냐고요? 소리와 요리는 참 닮았습니다. 그리고, 소리만큼 요리도 좋아한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친할머니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한정식 식당을 하셨었는데, 살아계실 적 늘 자랑하시던 말씀 중 하나가 박정희 대통령이 순천에 들르면 늘 할머니 식당에서만 식사를 하셨다고... 초중고 시절 방학 때면 늘 순천에 내려가 여름과 겨울을 보냈는데요, 어린 시절의 저는 (돌 맞을 이야기 같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밥상 위에 김치 열 가지, 찬 스무 가지 정도는 기본으로 깔아놓고 먹는 줄 알았습니다... 자, 이제 던지세요. 중학교 선생님을 지내셨던 (역시 하늘나라에 계신) 외할머니는 또 음식 솜씨가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간식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늘 배가 고픈 손주들이 칭얼대면 한과나 약과를 별거 아닌 것처럼 그냥 뚝딱뚝딱 만들어주셨죠. 그 시절 집에서 식빵을 구워주셨으면 뭐. 어머니 또한 그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으셨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명절만 되면 30-40명의 일가친척들이 집에 몰려왔습니다. 며칠 내내 음식 장만에 지친 어머니를 안 도와드릴 수가 없었고, 그렇게 명절만 되면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요리를 도와드리는 '장손'겸 '큰 딸'로 살아야 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 보다 자라온 환경이 이러니 요리를 하는 건 제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번의 명절마다 갈비찜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올해 명절엔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자 몇 번을 다짐하다가 결국 갈비찜은 하게 됩니다. 그 덕분인지 (어차피 제 개인적인 입맛입니다만) 아직 그 어떤 음식점에서도 제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갈비찜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에, 뭐 암튼, 요리와 소리는 참 비슷한 점이 많답니다. 소리와 요리 이야기는 앞으로도 종종 튀어나올 겁니다.


이 쿠킹 클래스는... 음향을 전공하고 레코딩 엔지니어나 사운드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부터, 취미나 직업으로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하는 분들, 하이파이 오디오에 관심("비싸면 무조건 좋은 거 아냐?")이 많으신 분, 홈 레코딩("아, 마이크는 대체 뭘 사야 하는 거지?")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를 원하시는 뮤지션, 그냥 소리나 음악이 좋다 하는 분들을 염두에 두고 오픈했습니다. 딱 초등학교 과학시간 정도 수준의 기본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이해하실 수 있도록 너무 어려운 기술적인 이야기나 용어는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만 가끔 처음 보는 어려운 개념들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냥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 주셔도 좋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되고 싶으시다면 조금만 더 찬찬히 들여다 보고 이해하기 위해 애써주세요! 정말 더 멋진 엔지니어/뮤지션/유튜버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더 자세히 답을 해드릴게요. 서론이 길어졌네요. 이제 출발! 




요리의 출발은 식재료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양지 부위는 기름이 적당하고 오래 끊여도 식감이 좋아서 국거리에 좋고요, 홍두깨살은 기름이 적고 손으로도 잘 찢어져서 장조림에 어울리죠. 고기, 양파, 당근, 시금치, 목이버섯 등등 한꺼번에 모두 때려 넣고 볶아도 만들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잡채를 만들려면 재료 하나하나를 따로 볶아야 합니다. 익는 속도와 간이 배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식감을 잘 살리고 모든 재료에 밑간이 적당히 밴 잡채를 만들려면 번거롭더라도 각각의 재료를 따로 볶아내야 하죠. [사운드 쿠킹 클래스]의 출발도 우리의 유일한 식재료, [소리]의 성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데서부터 시작해봐야겠죠?


소리는 파동(wave)입니다. 소리를 음파(sound wave)라고도 하죠. 소리의 파동은 '진동(vibration)'에서 시작됩니다. '진동'은 '운동'에서 시작되죠. 그러니 무언가가 움직이면서 진동을 만들어낸다면? 네 소리가 생겨납니다. 혹시 주변에 통기타가 있을까요? 기타가 없다 해도... 연주하는 모습은 그래도 자주 보셨을 테니 상상해봅시다. 아무 줄이나 한번 튕겨볼까요? 튕긴 줄을 자세히 보세요. 줄이... 떨고 있습니다. '진동'하죠. 이 줄의 떨림이 공기 분자에게로 전달되고, 공기 분자들의 움직임이 다시 우리 귀의 고막에까지 전달되어 고막이 떨리기 시작하면? 네!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맥스관처럼 음향시설이 잘 되어있는 영화관에서 마블 시리즈와 같은 액션 영화를 보면 소리가 '진동'이라는 걸 몸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 13층에 사는 제가 쿵쿵거리고 뛰어다니면 그 진동은 소리('층간소음')를 만들어내고 아랫집에서 바로 올라오게 되어 있죠. 안 그럴게요, 죄송합니다.  



소리의 3가지 요소로는 음량(소리의 크기), 음고(높낮이), 음색(timbre)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음량(소리의 크기)에 대해 알아볼까요? 다시 통기타를 꺼내 아무 줄이나 한번 튕겨 봅시다. 살살 살짝, 소리가 작네요. 기타 줄이 움직이는 폭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자 있는 힘껏! 큰 소리가 납니다. 동시에 기타 줄이 훨씬 더 큰 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파동의 아래위 크기를 진폭(amplitude)이라 하는데요, 이 진폭은 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진폭이 크면 큰 소리, 진폭이 작으면 작은 소리. 소리가 '크다', '작다'의 개념은 조금 복잡하기고 하고 동시에 매우 중요하기도 해서 ("TV 소리 좀 줄여! 시험기간이라고!" 딸이 외칩니다. 니 목소리가 더 크거든!!!) 다음 편에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자 다시 기타. (주변에 기타가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유튜브에 기타 튜닝을 검색해보세요.) 기타의 맨 위쪽 제일 두꺼운 1번 줄을 튕겨 볼까요? 줄이 두꺼우니 무겁겠죠? 천천히 떨릴 겁니다. 낮은 소리가 납니다. 튜닝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낮은 '미' 음, E 음정을 내겠죠? 그럼 반대로 제일 아랫 줄을. 줄이 잘게 많이 흔들립니다. 높은 소리가 납니다. 높은 '미' 소리를 낼 겁니다. 이렇게 같은 시간에 진동의 횟수가 적으면 낮은 소리, 높으면 높은 소리를 냅니다. 소리가 1초에 몇 번 진동(cycles per second)하느냐를 주파수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frequency, 프리퀀시! (이 어려운 단어가 낯이 익다고요? 스타벅스에 1년에 몇 번이나 가나... 잘 생각해보세요. 대학생 딸아이는 작년에 그 귀하다는 아이스박스를 두 개나 받아왔습니다.) 주파수(frequency)를 나타내는 단위는 'Hz'('헤르츠'라고 읽습니다. 독일의 과학자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답니다)라고 합니다. 1초에 20번 울리면 20Hz, 1초에 1000번 진동하면 1000Hz, 줄여서 1kHz(킬로 헤르츠, 킬로는 1000 단위를 가리킵니다. 1km가 1000미터죠)라고 표기합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소리의 진동을 간단하게 형상화해놨는데요, 위의 그림처럼 같은 시간 안에 진동의 횟수가 적고 파장(wavelength)이 길면 낮은 소리, 아래 그림처럼 같은 시간 안에 진동의 횟수가 많고 파장이 짧으면 높은 소리! 


[출처 : http://www.sciencenanum.net/]

  

소리의 높낮이를 음악에서는 음정(pitch)이라고 부르죠. 도레미파솔라시도, 처음 도는 낮은음, 마지막 도는 높은음. 통기타의 (위에서부터) 두 번째 줄을 튕기면 440Hz의 A(라) 음정을 내고 피아노의 가장 가운데 C(도)는 261Hz의 주파수를 갖습니다. 낮은 음자리표를 보며 연주하는 바순은 낮은음을 내고, 높은 음자리표 그 위에서만 노는 피콜로는 높은 소리로 노래합니다. 어려운 단어가 자꾸 등장한다고요? 포기하지 마세요! 다른 건 몰라도 주파수, 'Hz(헤르츠)'의 개념은 요리에서 온도("기름의 온도는 180도로 맞추세요~")나 무게("돼지고기 목살 500그램 기준 설탕은 40그램")처럼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라 꼭 이해하고 넘어가 주셔야 합니다. 


[Focal Shape65 : 이미지 출처 - www.focal.com]

왼쪽 스피커 사진을 보시면 소리는 내는 장치( 흔히 '유닛')이라고 부릅니다)가 두 개가 달렸는데요, 위에 은색으로 작은 스피커 유닛을 흔히 '트위터(tweeter)'라고 합니다. 진동판이 작아서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이 진동하게 만들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고음', 높은 소리를 내고요, 아래 있는 큰 스피커 유닛은 보통 '우퍼(woofer)'라고 부르는데 진동판이 커서 낮은 소리를 담당합니다. Tweet은 작은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 woof는 큰 개가 컹 하고 짖는 소리, 의성어입니다. 낮은 음의 소리는 공기를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트위터보다 크기가 커야 낮은 소리를 잘 낸답니다. 두껍고 무거운 기타 줄이 낮은음을 내고 얇고 가벼운 기타 줄이 높은음을 내듯이 스피커도 크고 힘이 좋은 유닛(우퍼)이 낮은 소리, 작고 가벼운 유닛(트위터)이 높은 소리, 고음을 나눠서 냅니다.    


소리의 속성에서 주파수의 개념이 왜 중요한지 몇 가지 이야기들로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영역은 아래로는 20Hz에서 위로는 20kHz까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20kHz까지의 고음을 들을 수 있는 건 10대까지라는 안타까운 사실. 나이가 들수록 가청영역은 줄어들어서 60대가 되면 12kHz 아래로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가는 귀가 먹었다"는 말 그대로죠.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 목소리의 주요 에너지는 100Hz에서 3-4kHz 안에 모여있다는 사실. 유선 전화기로 전달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딱 300Hz에서 3.4kHz까지입니다. 지금은 점점 보기 힘든 골동품이 되어가는 유선 전화기지만 그래도 공중전화 부스에 긴 줄까지 서가며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가면서) 때론 기쁜 소식을, 때론 슬픈 사연을 전할 수 있었답니다.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청력을 가진 동물들도 아주 많답니다. 덤불 속에 숨어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포식자들을 늘 경계해야 하는 초식 동물들에게 뛰어난 청각은 사실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죠. 앞서 사람의 가청영역이 20Hz에서 20kHz라고 했는데요, 우리 집 코코(강아지)는 무려 40-60kHz의 초고음역대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답니다. 우리는 전혀 듣지 못하는 담 너머 도둑의 부스럭 거리는 옷자락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다음부터 코코나 옆집 강아지가 난데없이 짖어 댄다면 시끄럽다 잔소리만 하지 마시고 혹시 택배 기사님이 우리 몰래 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조용히 두고 간 건 아닌지 확인해보시는 걸로.   


앞서 주파수가 낮은 소리는 파장(wavelenth)이 길고, 주파수가 높은 소리는 파장이 짧다고 알려드렸습니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합니다만 보통 1초에 340미터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초속 340미터를 기준으로 100Hz 소리의 파장은 3.4미터입니다. 10kHz 소리의 파장은 3.4cm입니다. 파장이 짧은 10kHz 소리는 벽을 만나면 반사(reflection)됩니다. 하지만 100Hz의 낮은 소리는 파장의 길이가 무려 3.4미터라서 두께 20cm의 벽을 만나도 거뜬히 뚫고 지나갑니다. 그러니 윗집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를 틀어도 카나리아처럼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안 들려도 (100Hz 주변의 에너지가 가득 찬) 킥 드럼(베이스 드럼)의 소리는 그대로 전달됩니다. 쿵! 쿵! 쿵! 쿵! 아놔, 여기가 나이트클럽 화장실도 아니고!! 


소리의 3번째 특성은 음색입니다. 똑같은 음량(소리의 크기), 똑같은 음정의 소리를 내도 쇠줄(steel string)로 된 통기타와 나일론 줄로 된 클래식 기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줍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로 연주한다고 해도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는 '반짝반짝 작은 별' 멜로디와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실로폰 소리는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이루는 복잡한 주파수 구성과 Envelope(이걸 '봉투'라고 번역할 순 없고요, 마땅한 번역이 없어서 음가대로 '사운드 엔빌로프"라고 부릅니다. 조금 어려운 부분이라 나중에 자세하게 다뤄질 예정입니다)의 차이, 그리고 우리가 소리를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감각이 합쳐지면 음색(timbre)이 됩니다. 음색(timbre)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피아노와 기타 소리를,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를, 제 딸아이와 아이유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운드 쿠킹 클래스], 그 첫 번째 시간에는 요리의 주재료인 소리의 3요소를 간단히 알아봤습니다. 다음 두 번째 시간에는 소리의 크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Loudness War. 라디오에서 나오는 내 음악이 조금 더 크게, 제발 내 목소리가 다른 유튜브 채널보다 더 크게!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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