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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Dec 09. 2020

나는 왜 모던 패밀리를 좋아할까?

프렌즈보다, 하우멧보다 모던 패밀리를 좋아하는 네 가지 이유

그동안 넷플릭스로 끈덕지게 본 시트콤은 세 개다. 프렌즈,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 모던 패밀리. 이중 끝까지 집중하며 다음 시즌을 애타게 기다렸던 시트콤은 모던 패밀리가 유일했다. 남들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재치와 떡밥 회수가 즐비한 하우멧, 주고받는 대화 속 재미가 쏠쏠한 프렌즈를 최고의 시트콤으로 뽑던데, 나는 유독 모던 패밀리에 마음이 간다.



1.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반영

모던 패밀리는 가족 중심의 서사다. 1인 가구, 핵가족화가 늘어나는 추세에 대형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친구처럼 어울리는 풍경은 어색하다. 우리가 으리으리한 저택이나 친근한 한옥에서 한가족이 모여 사는 주말 가족 드라마를 정말 '드라마'로서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던 패밀리에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그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던 패밀리는 가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사소한 에피소드를 주제로 엮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배경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예컨대 백인 게이 커플이 베트남 입양 딸을 명품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그들 앞으로 장애인 레즈비언 커플과 그들의 흑인 자식이 유치원 합격 목걸이를 목에 건다든가.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백인 남편과 젊고 섹시한 콜롬비아 아내라든가. 사회에서 거론하기 어려운 관계의 인물들이 주요 인물로,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캠-미첼 커플과 딸 릴리. 실제로 릴리를 연기한 배우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기막힘과 사회에서 기피하는 주제를 풍자와 해학이 허용되는 시트콤 안으로 불러들이는 영민함! 금기시되던 것을 공론화했을 때의 통쾌함 때문에 더더욱 이 시트콤을 찾아보게 된다.



2. 다양한 입장의 공존

인물이 다양하다 보니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에서 오는 마찰과 조화가 수시로 일어난다. 사소한 일로 다투었다가 화해하는 모습,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난처해하는 주변인들, 그 사이에서 소외되는 또 다른 가족 구성원. 한 가지 에피소드에서 포커싱은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주인공 외의 인물에게도 관심을 두어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고 생각해보게 한다.


또 제각각 다른 나이와 환경, 고민에 처한 인물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위로와 조언이 될 때도 있다. 현재 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철부지 루크가, 고지식하지만 지혜로운 할아버지 제이가, 장난기로 똘똘 뭉쳐 있지만 책임감이 강한 필이, 이방인의 시선인 글로리아가 제시해준다. 20~3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프렌즈나 하우멧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혜안이 모던 패밀리에는 있다. 그런 장면을 발견할 때는 꼭 책장에 꽂아놓고 싶은 유쾌하고 교훈적인 영미문학 한 권을 읽는 느낌이 든다.



3.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시즌10에서 성인 여성인 헤일리는 남자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전 남자 친구와 잠자리를 가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뭐였을까?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해요"다. 그녀는 쓰레기일까? 그녀는 bitch라고 돌팔매를 당해야 할까? 오히려 속마음을 주변인들에게 속이지 않고 자신에게 더 소중한 것을 신중히 선택할 줄 아는 용기가 그녀를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헤일리-딜런 부부와 쌍둥이 자녀들.


쓰레기라거나 bitch 같은 욕설은 사실 자기 자신의 마음보다 사회에서 오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나 싶다. 사회가 그린 도덕 모델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비단 도덕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다. 모던 패밀리는 피해 갈 수 없는 비난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오히려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상식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며 질문한다. 과연 내가 믿어 왔던 게 절대적인 진리일까? 우리가 그를,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있나?



4. 평범해 보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

모던 패밀리의 캐릭터들도 보통의 시트콤 캐릭터들처럼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모던 패밀리의 캐릭터들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유추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 힘은 엉뚱하고 인간적인 캐릭터의 면면에서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시트콤에 등장하는 인물들만으로 친구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한 인터넷 MBTI 심리검사 사이트에는 ENFP-T에 속하는 유명 인물로 모던 패밀리의 필 던피가 등장할 정도니.






모던 패밀리에 대한 비판의 글을 봤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내러티브가 없고, 캐릭터가 진부해지며, 열 개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인물들은 별로 변화하거나 성장하지 않고, 도전에 직면해 어려움을 극복한다거나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등의 명확한 주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원래 주제 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한다. 매일매일의 사건은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분열했다가 결합하고, 오늘의 사소한 모래바람이 내일의 거대한 돌풍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반대로 오늘 심각한 골칫거리였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결국 주제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프레임 아닐까. 모던 패밀리를 한 회 한 회 보다 보면, 늙어가는 던피 부부의 주름에서, 그저 공부에 목숨 거는 범생이었던 알렉스가 외로움과 완벽주의를 극복하며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가는 과정에서, 철없던 장난꾸러기 루크가 변성기를 지나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립심을 키우는 과정에서 나는 '성장'을 느낀다.


요약해 보았지만, 사실 모던 패밀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그중 하나가 주옥같은 대사들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뼈 있는 재치와 재미로 둘러싸인 대사들. 기억에 오래 남기고 싶어 자꾸만 스페이스바를 누르게 만드는 대사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헤일리가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되자, 부모인 필과 클레어가 나누는 대화다.


"아이들이 크면 유럽 투어하며 당신과 멋진 말년을 보낼 생각이었어. 쌍둥이 출산에 대해 알아봤는데 우리 딸이 그랬던 것처럼 일찍 나오는 경향이 있대. 이탈리아에 갈 순 없지만 헤일리를 위해 옆에 있을 거야."


"정신 나간 집이었지만, 이제 그 집에서 아기 두 명이 태어날 거야.

헤일리와 딜런은 부모가 될 거고 걔들도 아기와 재밌는 추억을 만들겠지."


"그러니...

여행 가는 거네.

인생이라는 모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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