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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May 24. 2021

스물아홉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평범에 대한 소회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스물넷엔 결혼할 거야. 스물여섯엔 할 거야. 아니, 스물여덟엔 하겠지... 하다가 서른을 훌쩍 넘겨 하게 될 줄 알았던 결혼을 스물아홉 봄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움켜잡게 되었다. 그렇게나 일찍 결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나인데 웬걸, '결혼'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며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의 프로포즈가 낭만에 가득찬 '나랑 결혼해줄래?'가 아닌 '세리야, 그동안 얼마 모았어?'였던 것만큼(물론 진정한 프로포즈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결혼은 현실의 문제가 되어 화살처럼 나에게 꽂혔다. 며칠, 몇 주를 긴장한 채 싱숭생숭하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4차원보다 더 4차원 같은 아이.



늘 들어 왔던 수식어다. 엄마는 "내 딸이지만 당최 속을 모르겠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고, 친구들은 "하여간 특이해"라는 말을 숨을 쉬는 것만큼 자주 내뱉었다. 별난 생각과 행동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가끔 힘든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주류에 끼지 못하고 오뚝이 인형처럼 중심을 차지한 아이들 곁을 기우뚱기우뚱거리다 혼자 엎어지기도 했지만,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학창시절의 사회화 과정을 잘 견디어 내어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조금 별나도 글 쓰는 재주 하나만큼은 참 괜찮다고,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모양의 생각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고 믿어 왔다. 덜컥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고, 스페인 순례길에 올랐을 때도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You are a person like a poet(넌 시인 같아)"란 말을 들었다. 나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특별한 아이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난 특별한 줄 알았는데,


걸어온 이십대를 돌아보고 나니 나만큼이나 평범한 사람도 없더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평범함과 특별함을 나누어 생각해본다면 나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 중에서도 얼리어답터에 속할 만큼 평범의 최전선에서 살아 왔다.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과 동시에 신문사 인턴에 합격했다. 내가 지원한 곳이 언론사라는 것도 모른  그렇게 바보처럼 합격해,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담보로 책임감을 그러안고 사는 이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얻을  있었다.


인턴 후에는 스타트업에서 2년간 많은 것을 배우고 나와 곧바로 순례길에 올랐고, 순례길을 걷는 도중 지원도 하지 않은 또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우트를 받아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적금 통장에 어엿한 성인임을 증명하는 소액의 자산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동안, 나의 특별함은 어딘가로 증발했다. '쓰는 일'은 브런치에 가끔 끄적이는 정도가 되었고, 쓰는 일 자체를 통해 충만한 기쁨을 느꼈던 나의 순수한 자아는 어느새 먹고사는 일과 가까이할 이와 멀리할 이를 셈하는 계산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서른 살, 막차 타고 워킹홀리데이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마지막 특별함에 대한 꿈은 결혼이라는 화두와 함께 저 먼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스물아홉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 어찌 보면 평범한, 나의 직장 생활이 그랬던 것처럼 남들보다 조금은 이른 결혼이라는 인생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리모트 워크를 하며 독일에서 한달살이를 지내고 온 친구가 텀블벅 후원을 통해 책을 냈다. <크고 작은 하루>라는 이름의 이 책을 다 읽고 감상평을 남기려고 했는데, 열 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됐다. 친구에 비한다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인생의 궤적이 좀 서러워서. 나의 특별함이 이대로 끝나는 걸까 좀 서글퍼져서.


그러나 마냥 속상하지만은 않은 건, '싱숭생숭함'이라는 표현 속에 형체가 흐릿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조금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나는 평범하게 결혼을 하게 되겠지만, 그렇게 가정을 이루어 나가면서 나만의 특별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박한 소망을 조금은 품고 있기에.


요즘 유행하는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어쩌다 보니 결혼이 내 인생에 들이닥쳤다. 이제 혼자서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떠돌며 특별함을 뿌리고 다닐 일은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꿈꾸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고, 그런 동시에 여전히 너무나 "4차원적이고 별나고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를 담는 울타리가 좀 변해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고 싶지 않다.
때깔 좋은 과일처럼 더 무르익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는 마음 속의 긴장을 조금 늦추고, 한 사람의 아내로서, 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나의 미래를 그려가 보려고 한다. 결혼이 제약이 아닌 또 다른 비행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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