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들 9호] 양단우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7개월. 디디가 없는 그 시간은 어둠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지금도 어둠 속에 있는 느낌이다. 보드라운 털을 만지던 감각이, 촉촉하고 말랑한 콧잔등을 누르며 장난치던 촉각이, 여지껏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디디가 떠난 후 우리 가족은 상당한 펫로스를 안고 있다. 각자의 모양으로 각자의 펫로스. 바쁨, 잠, 여행, 일상에 잠기는 것 등으로 치장된 펫로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이제 더는 개를 기를 수 없다는 것.
디디의 자리에 다른 친구를 데려오려는 노력도 해봤었다.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 '똥개'를 의미하는 걸로 불리던 한 아이가 디디와 비슷하게 생긴 까닭에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이미 그 아이는 누군가의 반려견이 되어 있었다. 시립동물보호센터에 연락하여 유기견의 입양을 결정했는데 중간에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토록 동경하던 고양이 집사도 꿈꾸었으나 부모님의 트라우마가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을 보고 입양을 취소했다. 심지어 엄마는 길고양이들 울음소리에 아직도 디디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떠올라 마음이 저릿하다고까지 하셨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울었다. 펫시팅을 할 때는 눈 앞에 있는 귀여운 친구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보호자님 댁의 현관문을 닫고 나서는 눈물이 쏟아지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출근 후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이렇게 디디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이후 디디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디디에 대한 글을 썼다.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 어설피 써왔던 글들을 모아 펫시팅 경험을 추가하고 수정해서. 하지만 현실은 너무 비참했다. "이런 글은 안팔려요." 우리의 추억, 사랑스러운 세월들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거절 당하거나(메일이 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정을 요청하던 출판사로부터 계약 직전에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기면서 묻혀지게 되었다. (브런치에 펫로스라는 말만 검색해도 엄청 많이 나오는데!)
그러다 펫로스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펫로스에 관하여 검색하다 펫로스 전문상담소 "살다"에서 6가지 펫로스 유형 테스트지를 검사했는데, 나는 대체적으로 모든 유형에 두루두루 속해 있었다. 한번은 비대면으로 아이들을 추모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허전한 마음이 들어 대면 모임을 신청하게 되었다.
"살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영혼을 가득 채우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작은 초들. 디디의 평안을 기원하는 초들을. 아직 추모식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벽면에는 추모식에 참석했던 이들이 남긴,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아, 나는 차마 편지를 쓰지 못했을텐데 참 대단한 용기구나! 옆으로 천천히 둘러보면서 마침내 한 지점에 시선이 멈췄다. 많은 초들로 둘러싼 그곳에는 바로 디디의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추억한 사진. 디디의 사진 앞에서 참아온 울음이 터져나왔다. 디디야 왜 언니를 떠났어. 원망과 후회와 아쉬움과 여러 가지들. 울음을 겨우 멈췄을쯤, 그제야 추모식이 진행될 수 있었다.
종교에 상관없이, 어떤 것에 매인 바 없이, 그저 디디만을 기억하는 모임. 디디가 떠났지만 사람들에게 디디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는데, 그건 "개 죽은거 때문에 왜 그래?"하고 돌아오는 말이 너무 아플까봐여서였다. 눌러온 펫로스의 아픔은 추모식 속에서 솔직하게 터뜨릴 수 있었고 모두가 디디를 사랑해주고 함께 기억해주었다.
디디는 어떤 아이였는지 여러 질문들 중 2가지를 뽑아 나눔을 가졌다. 제일 먼저 말한 것은 "디디는 꼰대였어요."였는데, 모두들 의외의 대답에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디디는 늙어갈 수록 꼬장꼬장한 개가 되었는데, 어떤 면에서 더욱 그러했는지 경험들을 나누었다. "디디는 그런 아이였군요.", "디디는 위로를 주는 아이였네요." 온통 디디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든 누구 하나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고, 말을 끊거나 충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추모식에 참석한 분들은 모두 다 같이 디디가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무한 산책하고 있을 거라며 평안을 빌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모임을 펫로스 서클이라고 부른다. 펫로스 서클은 아이에 대해 "그깟 개"라고 하지 않고,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위로하며 함께 기억하는 모임이다. 아이에 관해서라면 어떤 말이라도 해도 수용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잃고 갈 곳을 잃은 마음이 비로소 평안을 찾는다. 나는 동네마다 펫로스 서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 분명 아이를 잃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슬픔을 감추고 어떻게 버티며 사는 것일까?
무지개다리 너머의 세계. 그곳에는 디디도 있겠지만, 또다른 아이들이 엄청 많이 뛰놀고 있다. 나는 디디의 죽음으로 또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펫시팅 용품을 챙기며 고민이 깊어져갔다.
글쓴이. 양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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