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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내일을 위한 시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의 내일을 위한 시간(2014)


현실 인간


인간은 이렇지만도, 저렇지만도 않다. 물질만 추구하고 이기심이 넘치는 이런 인간만 있지도, 이웃을 사랑하고 정이 넘치는 저런 인간만 있지도 않다. 인간은 그 양극단을 때에 따라 오가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생명체다. 보너스를 택한 이들뿐만 아니라 산드라의 편에 선 이들 또한 '보너스를 택한 사람이 몇 명인지'를 궁금해하고 뜸을 들이며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너스를 택한 이들 중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산드라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이도 있다. 물론 극단에 위치한 이도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이들이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의 과정에서 저마다 유사한 듯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적이지 않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을 보여준다. 산드라에게 극단적인,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 뚜렷한 캐릭터는 필요하지 않다. 우울함에 젖어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녀에게, 세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치우쳐있다 믿는 그녀에게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간과의 만남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직접 마주한다는 것


상처받기 무섭다고 뒤로 물러나 있기만 하면 두려움과 우울함은 커진다. 그렇다고 세상이 내게 따뜻하고 긍정적일 것이라 기대한다면 상실과 상처가 커진다. 산드라는 현실 인간을 만난다. 이들은 그녀가 그렸던 상황에 부합하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거나, 따뜻하거나 차가운 그런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인다.


주말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현실 인간을 만나면서 산드라의 감정은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감정의 부유 상태가 그녀에게 객관적인 시선과 용기를 불어넣었을지도 모르겠다. 견디기 힘든 감정이든, 가슴 벅찬 감정이든 직접 마주하고 겪게 하는 것. 현실 인간이 보여주는 진짜 현실은 산드라를 그녀의 상상 속 세계로부터 끄집어낸다.


산드라는 행복하다는 말로 영화의 끝을 맺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음에도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해졌다. 곧게 내린 뿌리보다 유연하게 뻗어 내린 잔뿌리가 더 강하다. 그녀를 한 길로 몰아세우는 대신 여러 길을 맛보게 한 것, 그것이 바로 그녀가 만난 현실이 부여한 힘이다. 크든 작든 직접 보고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럼 이전엔 보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



발견하길 기대하다


산드라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산드라의 우울증이라는 설정과 그녀에게 주어진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 그녀를 자꾸만 밖으로 내모는 남편의 태도,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는 그녀의 기대를 꺾어버린 상황. 모든 것이 그녀를 철저히 독립된 존재로 고립시킨다. 그녀를 압박함으로써 조급하게 만든다. 산드라는 이 과정에서 자꾸만 포기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 이런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겁쟁이가 되기 쉽다.


극이 진행될수록 산드라의 말에 힘이 담긴다. 소극적이던 모습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는, 그녀로선 대범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태도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서서히 움직인다. 이렇게 그녀가 세상을 향한 시선을 틀게 되는 계기, 그것은 포기하다 마주한 가능성에 있다. 인간애라는 이름의 이 가능성은 따뜻하고 힘찬 엔딩을 만들어낸단. 결국,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다시 일하게 되고 급여를 받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따스함을, 자신을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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