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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30. 2021

룸쉐어의 기록

대학 졸업을 하고도 계속 해외에 나가고 싶었던 나는 해외 인턴 사업으로 6개월간 중국 상하이에서 생활했다. 한 달 80만 원 정도의 급여와 비자, 왕복 항공권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살 곳은 스스로 구해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간 유스호스텔에 머무르며 부동산을 들락거렸다. 약간의 부푼 기대와 빨리 집을 구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으로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아파트같이 생겨서는 내부에 들어가면 개미 소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 같은 집, 낡아서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던 으스스한 나무 바닥 집, 예쁘고 깔끔하지만 월세가 비쌌던 집을 지나쳤다.



‘집 구하는 거 쉽지 않네’ 막막함에 잠이 안 오던 밤, 다시 클릭해 본 사이트에 눈에 들어오는 한곳이 있었다. 다음날 퇴근 후 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반은 체념한 상태라 그랬을까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금세 다른 사람이 가져갈 거라는 중개인의 말에 서둘러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주택이었다. 함께 쓰는 공간은 일주일에 두 번 아주머니가 청소를 해주었고 4개의 방에 각각 중국인 한 명, 미국인 한 명, 한국인 두 명이 생활했다. 집을 구했다는 안심도 잠시 익숙지 않은 향이 스멀스멀 풍겨왔다. 크레용 냄새 비슷한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였다.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열려있는 문을 통해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왼쪽으로는 화장실과 주방이, 정면으로는 미국인의 방, 오른쪽으로는 한국인 언니의 방, 그 옆에는 내 방, 그리고 중국인의 방이 있었다. 범인은 미국인의 방이었다.



신경이 쓰였지만 말을 할 것도 아니었다. 그도 나에게서 김치와 마늘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르니깐.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식사에 사용하던 핑크색의 키티 접시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누군가의 아몬드가 물과 함께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주위로 껍질의 영향인지 물때가 가득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군가가 “그”라는 예감이 들었고, 틀리지 않았다. 조용히 키티 접시를 포기했다.



인턴 지원 당시 중국 말고도 여러 국가가 있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언어 실력 향상의 목적과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욕망도 있었기에 서양권에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채택 가능성을 따지면 중국이 높았으므로 차선을 택했다. 대도시에서 서양권 친구들과 많이 교류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런식으로 관계 맺기에 지쳐갈 줄은 몰랐다.



이게 끝이었다면 계속해서 교류를 위한 노력을 했을까. 안타깝게도 피로감을 한층 더 쌓게 한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레게 머리였던 그는 화장실에서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꼬불꼬불 잘린 머리카락이 잔뜩 쌓여있었다. 하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나였다. 치워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지만 넘어갈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내 앞에서 세면대에 물을 뿌렸다. 큰 손으로 쓱쓱 닦아내면서. 지적이 불쾌했는지, 아니면 그저 나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로 우리는 지나가다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편견이 쌓이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애초에 마음먹었던 서양 친구 사귀기 목표도 차츰 사라져 갔다. 어쩌면 타지살이의 외로움이 겹쳤나 보다. 새로운 사람, 특히나 외국인과의 교류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인턴을 했던 곳에도 하나둘 한국인 친구들이 생기니 애써서 외국어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게 번거롭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편한 감정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고치기보다는 대충 무시하고 살았다. 물론 선택적이었다. 지나고보니 더 노력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3초간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그때의 나에겐 그 집을 구한 것으로도 다행이고 애쓴 결과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립해서 완전한 1인 가구가 된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생활이 지친다면, 곁을 내주고 함께 생활하고 싶은 누군가가 생긴다면 1인 가구도 졸업하겠지.


지금은 이 시간을 힘껏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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