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치기와 출산 포기'는 같다?!!!

- 칼럼니스트 김형래 355

간혹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때가 있다. 시간이 지체되고 긴장이 풀릴 무렵 느닷없이 끼어드는 사람의 눈총이 관대하지 못한 나의 눈길이 오히려 미안하게 한다. 새치기가 어쩌면 노약자나 눈치 빠른 사람에게 부여된 특권 같기는 한데, 단지 도덕적인 판단의 근거로만 치부되어 관용을 통해서는 용서할 거리도 안되는 단순 우발사건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새치기는 용납되어도 무방한 것인가? 이참에 새치기를 경로우대권 소유자에게 허용하자고 공론화할까? 맞지 않다. 새치기는 옳지 않다. 단지 도덕적인 관점을 넘어서 사회학적으로 특히 경제학적 관점에서 옳지 않다. 


새치기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따라 잘못된 행위이다. 


새치기하게 되면 순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순서가 미뤄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전국노래자랑 공개방송에서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도 키 작은 진행자 송해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을 때 수 많은 관람객은 동시에 다 같이 일어서야 하고, 결국에는 모두 일어서서 공개방송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모든 사람이 공개방송을 잘 보기 위해서 다 같이 일어서서 보게 되면 앉아서 관람하는 것과 똑같은 조건임에도 서서 보는 피로감만 커지게 되는 것이다. 


드물지만 이런 예도 있다. 아마도 많은 분이 경험했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은막에서는 아주 심각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그냥 끊어버리면 조금 용서가 될 텐데 굳이 친절한 답변을 하면, 순간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나... 영. 화. 관. 에서 영. 화 . 보. 고. 있.어. 끝. 나. 면 ...  전. 화. 할. 께.” 거기에 더해서 통화가 끊나지 않는다. “나. 영. 화. 보. 고. 있. 다. 니. 까... 영... 화.... 이.따.가. 전.화.할 께.... 끝. 나. 고...” 


친절한 이웃 한 사람으로 같은 영화를 관람하는 다른 관객의 분노는 용서의 한계를 넘나들게 된다. 


경제학자 케인즈 (J.M. Keynes)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을 통해서 개인이 절약하는 행위는 미래 예상 소득이 증가하여 바람직할지는 몰라도, 이것이 확산하여 사회 전체가 저축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소비가 감소하게 되고 판매가 되지 않아 재고가 늘어나게 되어 연쇄적으로 기업은 생산을 줄여야 하고, 생산이 줄게 되면 직원의 필요가 줄어 실업이 늘게 되고 국민 총생산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불황을 감지한 가계들이 저축을 늘리면서 심리적 위안을 찾을 수 있으나, 국가 전체로 보아서는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취업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자녀도 포기한단다. ‘포기’가 무슨 식당 메뉴처럼 흔하디흔하게 언급되는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건이 되어 보이는데 무슨 신 조류니 시대정신이니 하면서 출산을 선택적 장신구처럼 가볍게 여기는 젊은 부부를 자주 만나본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새치기’를 하는 것과 같은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 부부에게는 양육의 부담 (정신적, 육체적, 시간적 등등)에서 벗어남으로 덤으로 얻는 이익은 많지만, 인류 전체로 보아서는 유효 수요를 줄이는 악덕을 하는 것이다. 


출산을 늘려야 하는 정부가 내놓은 졸속정책을 두고 출산을 하지 않는 빌미로 삼는 것은 단순 경제적 사고 측면에서는 잘못된 생각이다. 더구나 많이 낳았던 시니어는 육아의 어려움을 알기에 주니어에게 자녀 없는 결혼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사회적 통념은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다수를 바라보는 시야의 확대가 필요하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물건을 살 사람이 줄고, 판매가 줄고, 그러면 기업이 고용을 줄여야 하고, 그러면 경제는 더욱더 악화의 일로를 걷게 된다.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는 자녀를 위해 쓰지 않은 자산이 쌓여 상대적으로 위안이 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결론이다. 의도적 출산 포기는 새치기와 마찬가지로 ‘구성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새치기는 다수를 위해 옳지 않다. 그래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적으로는 그렇다.

ⓒ 김형래


작가의 이전글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