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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원 답사 8일간의 여정

가든원정대

by 얼음마녀

어느 날 문득 퇴직하고 여행 다닌다는 계획이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하면 경제적으로도 지금보다 여유가 없어질 것이고 신체와 정신이 노화로 인해 감이 떨어져 활발하게 싸돌아다니는데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비행기 이코노미좌석에서 장시간 시달리는 것도 문제다. 퇴직하기 전에 매년 조금씩 유럽 등 먼 곳으로 다니고 퇴직 후는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 위주로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그게 이미 조금씩 실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팀을 만들어 벤치마킹 신청서를 내고 승인이 되면 1인당 300만 원을 지원해 준다는 공고에 솔깃했다. 일련의 심사과정을 통해 결국 선정이 되었지만 관내 여행사를 선정해서 여정을 짜야했다. 우리 목적지가 시내에도 있지만 외곽에 있는 것도 있어서 가이드와 차량이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시내는 우리끼리, 외곽은 가이드와 차량을 이용하니 반반여행이 되었다. 멤버들은 아는 사람도 있지만 업무적으로 한 번도 엮인 적이 없는 초면인 멤버도 있다. 그게 직급별, 연수경험별 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일정은 정원박물관이었는데 정원원정대가 아닌 정원점령군 태세다. 그날 목표한 일정을 끝낸 후에는 자유시간이라 맘껏 우리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었다. 비 오는 첫날은 템즈강변 건너편의 정원박물관인데 유료공간을 못 봤던 게 못내 아쉽다. 건너편 국회의사당을 보고 자신 있게 워스트민스터라고 멤버들에게 큰소리쳤던 게 금방 탄로 났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오후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갰다. 네 번째 방문이던 내셔널갤러리 입구도 너무 생소했고 트라팔가광장도 더 이상 감흥이 없었다. ' 정문이 여기야' 하면서 출구를 가리켰는데 7년 전 런던 방문 후 모든 걸 망각한 듯싶다. 코벤트가든도 왠지 손님이 줄어든 쇠락해 가는 아웃렛 같은 느낌이었다. 난처한 세계사를 읽으며 큰 감흥을 갖었던 영국박물관의 앗시리아 제국의 그 사자사냥 벽화도 람세스도 그리스 신전도 이집트 미라도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영국을 네 번째 방문하다 보니 감흥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 영국박물관은 8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나 혼자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로제타석의 위치가 바뀔 수 있나. 아니면 내 기억의 오류인가. 로제타석의 위치가 바뀐 듯했다.


두 번째 날은 큐가든이었는데 왕립식물원이라 기대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원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했는데 평일이라 아침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버스를 잘못 타서 두 번 타고 간 영국의 큐가든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글라스하우스 뒤 거대한 오크나무길이었다. 가운데는 명상음악과 오크나무 영상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그 앞의 작은 벤치에 방문자들은 앉아서 그 고요하고 길고 넓은 공간에서 오크나무와 마치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런던을 가게 된다면 큐가든은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여유 있는 주말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거대한 정원을 거니는 것도 엄청난 힐링이 될듯했다. 아쉬운 건 오랑주리 카페에서 애프터눈티를 마셔보지 못했다. 답사를 위해 땀 뻘뻘거리고 돌아다니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차분하게 그곳에서 오후의 차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유롭게 정원을 즐긴 그들이 현명한듯 하다.

오후에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과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나에게는 그곳이 여러 번이지만 멤버들에게는 처음이었다. 우리 팀이 준비해 간 플래카드는 입구에서 데모하는 줄 알고 검색대에 보관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드디어 첼시플라워쇼 입장이다. 입장권만 무려 26만 원이고 해마다 첼시병원 부지에서 열리는 플라워쇼는 각종 정원과 원예를 전시해 둔 축제이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가지고 갔는데 axs라는 어플로 표를 받는 건데 1인당 4장 이상은 안 돼서 멤버 3명이 나눠서 예약을 했었다. 우리나라 축제 생각하면 거의 먹거리가 주를 이루지만 이곳엔 간단한 커피와 빵류를 파는 곳이 한두 개 있을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인파는 전시된 정원의 형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오후엔 이층 버스를 타고 테이트 모던을 지나 바로 앞 더 샤드를 바라보며 스카이가든 전망대를 갔다. 예약하기 어려웠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예약을 했기에 간단한 소지품 검사 후 입장할 수 있었다. 끝나고 영국에서 유명하다는 피스타치오 쿠키를 찾기 위해 방황하다 더 샤드 1층 M&S를 찾아서 그곳 매대에서 피스타치오 쿠키를 다 쓸어와 버렸다.




다섯 번째 날은 햄프턴 코트 궁전을 가는 날이다. 드디어 가이드가 우리 호텔로 왔다. 헨리 8세가 지은 900년 된 궁으로 바로크양식의 정원을 비롯해 100년 이상된 포도나무 등 군데군데 정원이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용하던 부엌과 침실 회의실등을 둘러보았는데 실제 목 없는 앤불린 귀신이 돌아다닌 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의 음습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원 전체는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실제 만원 정도에 그곳 가까운 마차 투어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세계최초의 가장 오래된 테니스코트장도 있었고 넑은 잔디광장에는 가족단위 축제도 열리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어마어마하거나 요란하거나 그런 축제는 아니었다. 오후엔 2시간을 소형버스를 이용해 위슬리 가든을 방문했다. 그곳 역시 큐가든만큼이나 다양한 정원공간이 있었고 식물을 배양하고 연구하는 연구소를 비롯해 왕립원예협회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여섯 번째 날은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 정원을 보고. 한국에서 인터넷보고 계획을 짜는 것이 현재 와보니 시간상으로 많은 갭이 있었다.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도 그 근처 로컬사람들이나 갈 곳이지 개인 여행자나 패키지 여행객들이 방문하기 어려운 아주 먼 곳이다. 런던 시내에서 3시간 거리다. 외양관을 리모델링해서 유명한 식당과 미술관이 있다는 점이 특색으로 이 정도 규모는 한국에서도 찾아보면 있을 듯싶다. 왠지 외국 것이면 왠지 더 홍보가 잘 된 건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것 같다. 우리의 것도 좀 더 전문적으로 홍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후엔 시간이 남아 가이드 재량으로 윈저성으로 향했다. 영국을 여러 번 갔어도 윈저성은 안 가봤는데 내부관람까지 해서 시간을 번듯했다.





일곱 번째 날은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퍼즐우드로 향했다. 그곳을 보고 해리포터의 죽음의 성물을 다시 보니 그곳이 맞는 곳 같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을 가면서 솔즈베리 평원을 지나며 멀리서 스톤헨지까지 볼 수 있었다. 이곳 역시 현지인이나 갈법한 곳이지 패키지 여행객이나 개인 외국인 여행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자연 그대로의 밀림 같은 곳이었다. 그곳을 보고 오후에 시간이 남아 다음날의 여정지인 바이버리와 버튼온 더 워터 지역을 오후에 가버리기로 했다. 바이버리와 코츠월드는 중세시대의 오래된 시골집으로 마치 우리나라 용인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버튼온 더워터에서 출발해 그곳에서 나름 유명하다던 피시 앤 칩스를 포장해서 룸메이트랑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다 식어버린 2시간 후 피시 앤 칩스는 안 먹느니만도 못한 것이었다.




마지막날은 오전에 많은 칼리지들이 모여있는 옥스퍼드로 갔다. 그날은 마지막날이고 오후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오전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런더너처럼 그냥 등산바지에 등산재킷의 모자를 고집했다. 하지만 비가 점차 세지자 방수 등산복도 효력을 상실하려고 했다. 이날은 제대로 된 만찬을 먹어봤으면 했다. 피시밑에 깔려있는 시금치와 소스 위에 암석처럼 동그라니 놓여있는 피시(대구) 위에 레몬 한 덩이는 암석이라는 주제의 그림 같기도 했다. 1인 피시 앤 칩스를 시켰으면 좋았을까 거의 소스까지 다 먹을 정도로 거의 깨끗한 접시가 되었다. 일행들이 기념품가게 들른 사이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자 이번엔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먹어보겠다고 주문했지만 역시나 쓴맛만 가득한 비싼 7천 원 넘은 커피였을 뿐이었다.


남은 시간에 서점에 들렀더니 매대에 1파운드짜리 책을 팔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글씨가 클 것, 내용이 앞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질 것이 기준이었는데 적당한 책을 골랐다. 판매원이 이 책은 블라블라 그런 내용이다. 인류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책이다라고 하면서 결재를 한다. 1파운드 책에도 이런 서비스가 달라붙다니 이곳이 대학가라서 역시 다르군. 나름 비 오는 옥스퍼드 대학가를 마치 옥스퍼드로 유학을 온 학생처럼 자유롭게 혼자 돌아다니자 뒤에서 일행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하가 특이하다는 서점이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서 패스했다.

서점에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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