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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Sep 08. 2020

아홉 살, 어느 날의 목욕탕


일요일 아침, 아이는 학교 가는 날 보다 더 일찍 눈을 떴다. 일요일 아침은 학교 가는 날 보다 아침에 챙길 것이 더 많다. ‘엄마 찾아 삼만리’와 ‘은하철도 999’ 같은 만화도 봐야 하고, 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목욕탕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욕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가서 씻는 것이 온 식구가 빼놓지 않고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가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손끝부터 표가 났다. 흙장난을 일삼느라 손톱 밑에 낀 때는 목욕탕 뜨거운 물에 푹 불려 씻어내지 않으면 빠지지 않았고, 바깥바람에 거칠어진 손등도 목욕탕 물이 아니면 보드라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온 동네 사람들이 찾는 목욕탕은 시간 선택을 요령껏 해야 한다. 자칫 느긋하게 늑장을 부렸다간 엉덩이 붙이고 앉을자리도 없거니와 남는 바가지와 대야도 없어서 낭패 보기 일쑤인데, 그래서 할머니와 아이는 늘 휴일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 치고는 이른 시간인 8시쯤 가는 걸 택했다.


그날도 아이와 할머니는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평소처럼 할머니는 세면도구를 잔뜩 넣은 바구니를 들고, 아이는 갈아입을 속옷을 넣은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서 목욕탕에 갔다.


“몇 사람입니꺼?”

"내 하고, 아 하나라요."

"얼라는 몇 살입니꺼?"

"야, 아홉 살이다 아이가."


일요일 아침 목욕탕은 아이들 나이가 오가느라 바빴다. 아이들의 나이는 엄마 따라 여탕엘 들어가도 될 나이인지 아닌지, 혹은 미취학 아동인지 아닌지에 따라 수입은 물론 고객들의 민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목욕탕 주인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작아 미취학 아동이라고 우겨볼 만도 했지만, 보탬도 뺌도 없이 아이의 나이를 있는 그대로 아홉 살이라고 말했다. 그저 그 나이에 맞게라도 잘 자랐으면 하는 할머니의 바람이 돈 500원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치마 앞섶을 걷어 올려 속바지에 있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목욕비를 치를 때였다.


"아이고 할매가 아 델고 오셨습니꺼. 아 엄마는 안 왔는 갑네예."


대원반점 아줌마였다. 대원반점은 아이의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중국집이었는데, 동네 외식의 중심이자, 아이들에게는 1년 가도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꿈의 짜장면이 있는 식당이었다. 아이의 엄마도 잠시 떨어져 지내기 전 대원반점에서 짜장면을 사 줬었다. 대원반점 아줌마에게 인사를 받은 할머니는 말도 받았다.


"아 어마이는 저~ 시내 식당일 하니라고, 바쁘제.

식당이 어지간히 커야제.

혼자 할라카이, 시간 빼기 쉽지 않구마는.

우리도 곧 그리 안 가겠나."


시내에서 식당일을 배우며 적응해가던 엄마는 매번 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아이의 집까지 오기가 버거웠고, 그래서 한주는 아빠가 가고, 한주는 동생을 데리고 엄마가 찾아오는 생활이 됐다. 대원이 엄마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믄요. 바쁜기 좋은기지예. 호호호호.

니도 엄마 돈 마이 벌어서 좋제?

할매가 어지간히 알아서 잘해주실까 봐서. 맞제~?"


아무리 동네 사람이라고 해도, 시어머니 자리에 있는 사람은 늘 부담스러운 상대다. 어색한 분위기에 군더더기 같은 말들이 오가고, 물색없이 아이와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이 엄마 어쩌고, 돈이 어쩌고를 늘어놓던 대원반점 아줌마는 뒤춤에 서 있던 아이 손을 잡아끌고 더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대원아, 니 할매집 아 알제? 느그 지금 같은 반 아니가?

느그도 친하게 지내래이. 어여 인사해라."


그제야 아이는 아줌마 뒤에 멀찍이 서있던 대원이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아이는 당황했다. 대원이는 아이와 같은 반 친구였고, 모르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남자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흔히 엄마 따라 여탕을 오는 남자아이들이 있었지만, 그게 아는 얼굴일 때는 문제가 달랐다.


홀딱 벗고 알몸으로 마주해야 하는 공간에 같은 반 아는 남자애라니, 여자애 입장에서 난감해도 이토록 난감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원이가 더 난감했을 것이다. 여탕에 들어간 여자아이보다 여탕에 들어간 남자아이가 더 튀는 법이니까. 목욕탕 앞에서 같이 벗고 같은 여탕엘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친하게 지내라니, 아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친하게 지내더라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아홉 살의 벌거벗은 몸은 몸의 주체와 타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타자에겐 가릴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 아직은 공감해야 할 몸이 아닌 하나의 여물지 못한 대상일 뿐이지만 그 몸의 주인 아홉 살에게는 존중받아야 할 인격이었다. 대원이의 마음도 아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꾸 꾸물대고 뭔가를 주춤하는 대원이에게 녀석의 엄마는 "니 머하노? 옷 안 벗나, 얼른 옷 벗고 씻고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 수도관에서 콸콸콸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물에 발을 담그고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목욕탕 안에서 아이는 대원이네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시야에서 멀어지자 비로소 몸을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할머니는 아이의 몸을 먼저 비누칠해 준 뒤 탕에 들어가 앉으라고 했다. 아이는 대원이가 있는 반대편에서 어정쩡하게 몸을 돌리고 앉아 발을 담갔다. 옆에서는 탕의 온도를 조절하느라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물이 그날 사달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 팔짝 뛰어나오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는 물이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계속 있다가 죽게 된다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아이가 딱  그 짝이었던 거다. 그날따라 많이 뜨겁지 않았던 물에 아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발을 담갔고,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는데, 좀 있다 탕에 들어오던 대원이가 “앗! 뜨거!”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다. 그러고는 아이를 향해 말했다.


“야! 니 안 뜨겁나?”


대원이의 외마디 외침 같은 그 말에 어른들은 손을 물에 담가보고는 놀란 눈으로 아이를 보았고, 어떤 어른은 뛰어왔고, 할머니도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이는 어른들의 놀란 반응에 물 밖으로 발을 꺼냈고, 그렇게 드러난 아이의 다리는 정강이 아래가 장화를 신은 듯 빨갰다. 아이는 아픈 줄도 모르고 온통 자신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놀라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할머니는 들고 있던 바가지를 팽개치고는 그 길로 아이를 업고 집으로 왔다. 평소 같았으면 애 다리가 다 데었다며, 주인을 잡아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그건 뒷일이었다. 아이의 빨간 다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온 할머니는 요를 깔고 아이를 누인 뒤, 감자를 갈아왔다. 데인 상처에는 감자를 붙이면 잘 낫는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양 발과 다리에 감자를 붙이고 얇은 천으로 둘둘 말고 누운 아이는 그제야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됐는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엄마가 와 있었다. 다리가 약간 화끈했지만, 사실 보는 것만큼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감자를 다리에 바르고 안방 아랫목에 누워서 엄마와 할머니의 관심을 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대워이 그기 야 다리 살맀다. 가가 안 캤으마, 이 미련한 기 그대로 앉아 있었을 거 아이가.”


할머니는 손녀를 대신 맡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엄마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엄마는 오랜만에 지레 한풀 꺾인 시어머니의 말투에 또 말을 주저했다. 그렇게 아홉 살 일요일의 어느 날은 밤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즈음 아이에게 생긴 새로운 걱정은 아무도 모른 채.


‘내일 학교에서 대원이가 괜찮냐고 물으면 머라카지?

애들이 나 다친 거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목욕탕에 같이 간 거 다 들킬 건데,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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