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경찰관이 되겠다는 아이도 있고, 과학자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점점 학년이 올라가서 고학년이 될수록 꿈은 현실화된다.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의사, 판검사, 교사 등을 꿈꾼다. 심지어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꿈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명문대 가는 거요.”
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꿈이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꿈 없이 오로지 성적과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이유는 뭘까?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만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나도 교사가 되기 위해서 교육대학교에 들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꿈꾸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안정적이거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전문직을 꿈꿨다. 아마 지금 아이들과 엄마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회는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안정을 꿈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실수를 실패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말하는 '똑똑한 아이'는 실수를 적게 하는 아이를 일컫는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고, 발표할 때 정답을 말하는 아이, 즉 실수하지 않는 아이를 똑똑한 아이라 부른다. 문제를 풀었는데 아이들이 실수로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때 엄마나 교사는 “실수도 실력이야.”라며 아이들을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실수를 실패로 여기고, 남보다 성적이 안 나오면 그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을 한다.
실수를 했을 때에 아이들은 그 실수를 피하려고 하고 그냥 넘겨버리려 한다. 실수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실수를 하는 아이는 주변에서 놀림감이 되고, 실수를 죄지은 것 마냥 치부하기도 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 아이는 못난 아이처럼 되어버리고, 실수투성이인 아이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수가 나쁜 것이라고 배운다. 이런 게 반복되면 죄책감이 쌓이거나 자존감이 낮아져서 자신을 실패한 인생이라고까지 생각해버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실수하면 안 된다.”, “다시는 실수하지 마라.”와 같이 말하는 것은 “성장하지 말아라.”, “넌 그대로 멈춰있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배움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에게 실수하지 않게끔 대신해주거나, 실수를 덜 하는 쪽으로 미래를 이야기하고, 항상 ‘안정’만 좋은 것이라고 강조한다면 아이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거나 도전을 두려워하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우리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에도 수차례 넘어지면서 배우고, 피아노를 배울 때에도 이런저런 실수를 하면서 배우게 된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되려 실수가 많을수록 배울 것이 많다. 이 점을 아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실수를 기회의 장으로 인식하도록 관점을 바꿔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수에 대한 관점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내버려두라는 말은 아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실수를 했을 때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단지 실수를 피하거나 잊어버리려고만 하면 그 실수가 계속 반복되고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진짜 '똑똑한 아이'는 실수를 하면서 그 속에서 배울 점을 깨닫고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습관을 가진 아이다. 엄마는 이런 아이로 키워야 한다. 입장을 바꿔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엄마들에게
“지하철 타고 혼자 집에 못 오잖아. 오다가 길 잃으면 어떡해. 내가 차로 태워다 줄게.”
“당신한테 딱 맞는 옷을 사놨어. 이 옷 입고 다녀.”
와 같이 한계를 준다면 느낌이 어떻겠는가? 이런 말들을 계속 들으면 없던 반발심도 생길 거다. 나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내 생각과 의견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도중에 실수할까 봐, 실패해서 힘들까 봐 불안하고 걱정이 되면서 아이를 대신해주려 한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자. 오히려 아이들이 실수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경험을 준다고 마음을 먹자. 아장아장 걸으려 하는 갓난아기들에게 실수를 못하게 하면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안 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이런 말이 반복되어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떤 일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겨날 수가 없다. 실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두려워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서 같은 일을 하는 생활에 젖어버린다. 아이들의 꿈도 안정적인 직업 같은 꿈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꿈들이 과연 정말로 원하는 꿈일까? 어른들의 불안한 마음이 전해진 건 아닐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스스로 행동하려고 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생각과 말에 대한 실수는 괜찮지만, 평소에 억압된 분위기나 실수가 허용되지 않았던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잘못하면 큰 실수를 할 수 있다. 비행 행동이나 법을 어기는 행동까지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실수와 시행착오들을 어느 정도 겪어보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엄마의 말을 들을 때 아이와 어느 정도까지의 실수를 허용할 수 있는지 함께 약속해야 한다. 실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억압하지 말고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약속들을 어렸을 때부터 함께 정해보자. 그러면 아이는 납득할 만한 범위 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실수란 인간적이다.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기에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회가 불안해지고 엄마의 두려움 속에서 아이들에게는 실수를 잘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시험을 볼 때나 생활 속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일 때 엄마가 그 실수를 '나쁜 것'이라고 말하거나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어른들도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실수할 수도 있고, 실수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꼭 인식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여러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커다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한다고 생각하자.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용해주는 기회를 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