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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Feb 27. 2022

발상의 전환, 가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일 것 같은 과학과 감성적이고 주관적이며 애매한 예술은 서로 이질적인 영역으로 보이지만 아니라고. 의미있는 과학적 발견은 과학자 개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며 예술 작품 역시 개연성을 촘촘히 쌓아나가야지만 수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논리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보며 약간 용기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외교 역시 나이 지긋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르신만 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나처럼 그냥 정치에 관심 많은 어린 시민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어서.


생각의 배경은 최근 윤석열 후보의 유사시 일본 자위대 진입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발상을 떠올릴 수조차 있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했다.


배경은 당연히 북핵 문제일 것이다. 현재 북핵 문제는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보수 정권이 강하게 나가도, 이번 진보 정권이 어르고 달래도 북핵 문제에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오바마 정부가 방관해도, 트럼프 정부가 적극적 관심을 가져도 안 풀린다. 발상을 전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가 우리나라와 미국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다.


가설의 배경은 이렇다. 2018년 우리나라와 북한 사이에 철도를 연결하려 할 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 반대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미국 '네오콘'을 자주 거론했다. 네오콘은 무엇일까?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들은 국제 질서를 잡기 위한 대안으로 전쟁을 우선하는 미국 내 정치 세력으로 나온다. 진짜라면 네오콘은 미국 군수 업체를 대변하는 사람들로 추측할 수 있다.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는 건 군수 업체에게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이니까. 그런데 군수 업체가 꼭 사업만 하는 건 아니다. 막대한 자본으로 신사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가 군침 흘리듯 북한은 아주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북한에 투자하라는 것으로 전쟁 위기를 막고 네오콘을 회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체제 이후 경제를 중시하는 북한에게도 좋은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북한 투자는 네오콘에게 먹히지 않고, 북한은 적극적으로 미국 자본을 유치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부턴 추측과 상상이 뒤섞여 있다. 흔히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만 여겨진다. 그런데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며 특정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북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이 대변하는 특정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라면 어떨까? 북한에 관심이 많은 어떤 국가가 진짜 문제 해소의 주체인 것이다.


북한에 관심이 많은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 본다. 중국은 북한 공산당을 통해 북한을 통제할 루트가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통제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통해 통제를 도모하려 하진 않았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백악관 로비는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며, 현재 일본 정부의 정치적 자산은 혐한, 북핵 위협이다. 북핵 위협이 사라진다면, 정치적 권위를 세울 게 없어진다. 만약 북한의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한다면, 일본의 자본을 유치시키는 방향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독립운동 정신에 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얼굴을 하고 북한에 자국 자본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모른 척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북한 내부 정치 세력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을 정도로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는 건 아닐까? 알려졌다시피 북한은 90년 대 큰 기근을 겪으면서도 핵 개발에만 몰두해왔다. 아프간의 극단적인 세력이 미국이 내미는 자유와 풍요의 손길을 거부하고 결사항전한 데는 강력한 종교적 신념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며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신념이 강하게 형성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일본도 마찬가지인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잃어버린 30년을 수습하지 못하며 이를 만회할 이념이 필요한데, 혐한 내지 북한 굴종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일본 자본 투자 없이 북한 경제 제재가 완화된다면 일본 내 정치 세력에도 균열이 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날고 기어도 북핵 문제가 계속 쳇바퀴 돌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바이든 정부는 진짜 문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 간끼리 협의하라며 직접적 관심은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북핵 문제는 북한과 일본이 서로 양보하거나, 둘 중 하나가 망해야지만 해결될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후보가 '힘을 통한 평화'를 자주 외치고, 그러면서 유사시 일본 자위대 투입 가능성을 살짝 언급했다. 내 가설을 바탕으로 이 발언을 풀이한다면, 주한미군에 자위대 힘을 더해 북한을 힘으로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힘이 약한 사람을 힘으로 누르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아프간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약 북한이 단순 힘의 논리를 수용하는 곳이었다면 애저녁에 중국에 흡수 통일되거나 북한 주민들이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건 북한 내부에 고난을 견디면서도 지키고 싶은 어떤 신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북한 정권이 뒷받침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정권과 국민은 만약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려 든다면 다같이 죽자고 덤비는 것이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중국도 미국도 우리나라도 북한을 함부로 건들지 못했던 행적에 대입해도 잘 들어 맞는다. 그래서 힘으로 북한을 누르려는 건 곧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전쟁은 당연히 반대할 일이다. 하지만 일본 입장은 다르다.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돈을 풀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북한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이상 경제 침체의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면 검토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일본은 특유의 로비력으로 끊임없이 우리나라 정치권에 극단적인 대북 정책 선택지를 검토하게 할 수 있다. 그 꼬리가 이번 대선 후보 토론에서 삐져나온 것은 아닐지?


유권자로서 우리는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북한을 힘으로 누르려 하고 전쟁 분위기가 고조된다면 그 무대는 다름 아닌 한반도라는 점은 가설을 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명백하다. 윤 후보는 자꾸 '유사시' 선제 타격, '유사시' 일본 자위대 투입이라고 공약을 내세우는데, 유신 계엄령도 '유사시'를 가정해 이뤄졌다. 소통도 잘 안되고 늘 주변의 해명이 필요한 예비 권력자가 이 유사시를 어떻게 자기 입맛대로 재단할 지 알 수 없다. 5년 전이 아니라, 40년 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네오콘의 한 단면이 일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은 단순 상상에 그치길 바란다. 하지만 '유사시'를 상정하며 자꾸 극단적 대북 공약을 내는 후보는 어떻게 봐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유사시 대응책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공약이 아니라, 전쟁 대비 메뉴얼에 만일의 사태를 가정해 비공식적으로 내부적으로만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니까. 여러모로 위기의 시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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