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범한 일상처럼 하루를 보낼 테니까
어머니의 표정이 최근 부쩍 어두워지셨다. '아버지와 함께 하시던 간판 일이 버거우신가.' 두 분이서 운영하시던 간판집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일 일이 줄어든 음식점이나 일반 가게들이 간판집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와 일군 간판일을 지난 10개월 동안 나름대로 잘 운영해 오셨다.
나도 하는 일이 바빠져 어머니에게 신경 쓰는 시간이 줄어들게 됐다. 어머니는 일주일 전쯤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다. "아빠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놓은 게 있는데 신용보증재단에서 상환하라는 연락이 자꾸 오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받은 대출을 매달 조금씩 갚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는지, 그동안 어머니가 말하지 않은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신용보증재단에서는 어머니에게 곧바로 대출금을 갚으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 후로 신용보증재단에서 내게도 연락이 왔다. 하필 지난가을에 취득한 간판 업에 필요한 옥외광고사 자격증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아드님 되시죠? 어머님이 지금 연락이 안 돼서 전화드려요. 아버님 이름으로 된 대출금을 바로 갚으셔야 하는 급한 상황이라…." 내가 알고 있는 상황이 맞지 않냐고 확인했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아버님의 사업자 대출을 바로 상황해야 합니다." 빚이 있으면 마음 편히 눈 감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며칠 후 신용보증재단을 방문하셨다. 은행에서 새로운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을 갚는 대신에 가족이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의 근저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대출 문제가 정상적으로 잘 처리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 신용보증재단에 갈 때 저도 갈게요." 어머니는 대출, 신용 등 금융과 관련해 깊이 알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여러 처리할 일이 있어서 미처 대출을 잘 알아보지 못한 내 실수였다.
다음주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신용보증재단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사무실은 여느 때처럼 직원들의 일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컴퓨터 타자를 치는 소리와 대출 건으로 통화를 하는 대화 소리만 공기를 타고 흘러 다녔다. 어디 둘 곳 없던 시선을 벽 쪽으로 보내자 그제야 벽에 붙여놓은 홍보물 아래에 '재기지원센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신용보증 절차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은 '재기' 대상이 된 것이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아버지 명의로 된 사업자 대출을 바로 상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절차가 진행돼야 했다. 어머니가 같은 일을 이어서 하니 새로 대출을 받아 대환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냐는 물음에는 기존 사업을 그대로 하는 것이어서 사업자가 달라도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으로 새로운 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존 대출은 은행이 주택의 근저당권을 잡아 나오는 대출을 받아 상환하고, 은행에서 받은 대출은 앞으로 갚아가는 식으로 해야 했다.
그동안 아버지의 사업자 대출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어머니와 대화 끝에 은행 대출을 실행하기로 했다. 담당 직원은 서류들을 확인했고, 법무사가 아파트에 근저당권 설정을 했다. "대출을 상환하면 근저당권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설명이 뒤따랐다. 사무실은 고요했고, 직원들은 어제처럼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속으로는 몇 번이나 외쳤지만 여전히 사무실은 평온했다.
신용보증재단 직원 두 분이 대출을 실행하는 은행까지 같이 가주겠다며 앞장섰다.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50대 초반쯤 돼 보일까. 남자 팀장은 키가 작지만 공기업에 어울릴 만한 분위기가 풍겼다.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 여자 차장은 남자 팀장의 얘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였다.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처음으로 직장인들이 부러웠다. 겉으로 보기에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는 그들의 사무실이, 일상이 그저 부러웠다. 어머니와 나는 별다른 대화 없이 뒤를 계속 걷기만 했다.
남자 팀장은 은행 창구에 있는 남자 직원과 의견을 조율하는 듯 보였다. "이제 창구에서 직원분이 안내해 주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남자 팀장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며칠 전 다급하게 "대출을 당장 갚아야 합니다"고 긴급하게 전화를 걸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덜어진 건가. 그분도 비로소 평온한 하루를 얻은 걸까. 한 회사의 직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서운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은행 창구 직원이 진행하는 대로 서명을 했다. 문구를 위에 그대로 써야 할 때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내가 읽어주는 대로 겨우 글자를 따라 쓸 수 있었다. 이따금씩 내 나이를 잊는 경우도 있는데 어머니의 나이도 그랬다. 어머니는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그렇게 어머니도 가까스로 가게를 이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출 관련 문서 작성을 2시간 만에 끝냈다. 서류를 다 작성하자 '재기지원센터'라는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재기'라는 단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낄 줄은 몰랐다. 마음 어딘가가 착잡했다.
"엄마 근처에서 점심 먹고 가자." 몇 시간 동안 긴장했을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나마 근심이 걷어낸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한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에도 손님들이 많았다. 허겁지겁 해장국을 비웠을 때 어머니가 남긴 선지가 눈에 들어왔다. '참. 엄마는 선지를 잘 못 먹지.' 아버지가 남긴 대출처럼 이번에도 어머니를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옆에서 대출 설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했던 나도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5천만 원의 대출이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났다. 빚이 있으면서도 천하태평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탓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이제는 아버지와 대화할 수 없으니 알 길은 없다. 그래도 이것 만큼은 알고 있다. 아버지가 한 번도 돈을 허투루 쓴 적은 없다고. 이 대출 또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생활비였다는 것을. 아버지가 이 글을 보진 못할 테지만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중에 만날 때는 그들처럼 평범한 일상처럼 하루를 보내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