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짊어진 무게
[부고]
김희상(가명) 부친상
김현묵(가명) 씨 별세
한일병원장례식장
...
3달 전 함께 술자리를 했던 선배의 부친상 문자가 도착했다. 한 업계에 10년 동안 있었고 각자 존재는 알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본 건 최근이었다. 결혼을 앞둔 다른 선배의 청첩장을 받는 자리였다. 뒤늦게 도착한 김 선배는 이름만 들었던 내게도 반갑게 인사했다.
"아 이 친구가 그 친구구나. 반가워."
"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10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같은 회사 선배에게 김 선배의 얘기를 자주 들었다. '큰 덩치만큼이나 성격 좋은 남자'라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다. 청첩장을 주는 분이 주인공인 자리여서 김 선배와 자세한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그래 건너 들었던 대로 김 선배는 좋은 분 같았다.
"이쪽 일을 좀 쉬어서 그런지 아는 사람이 많이 없네. 결혼식장 가면 뻘쭘할 거 같으니까 같이 밥 먹어줘야 돼."
"그럼요. 그날 연락드릴게요."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김 선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낯을 가리는 성격인 나 또한 김 선배의 제안이 반가웠다. 결혼식을 갈 때마다 하는 걱정거리도 줄어든 셈이었다.
"지금 어디야? 나 혼자 있는데."
"아! 선배 죄송해요. 축의금만 내고 다른 약속이 생겨서 밥은 못 먹고 가요."
결혼식 당일 축의금만 내고 급한 일이 생겨 식장을 빠져나올 때쯤 김 선배의 전화가 왔다. 정신없이 나오는 바람에 이전에 나눴던 대화를 깜빡했던 것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고 있을 김 선배가 마음에 걸렸다.
김 선배의 부고 문자는 또 다른 선배 덕분에 알게 됐다. 평소에 교류가 없다가 최근에서야 술자리에서 봤던 후배에게 부고 문자까지는 보내기 어려웠을 듯하다. 그동안 김 선배의 아버지와 관련해서 들은 정보가 없었고, 지난 만남에서도 특별하게 들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갑작스러운 문자였다.
"희상이 부친상 장례식장에 같이 갈래?"
"네. 당연하죠."
"그래? 희상이하고 그때 처음 본 거 아니야?"
"맞아요. 그래도 가야죠. 시간 맞춰서 장례식장에서 봬요."
김 선배와 결혼식장에서 식사하지 못했던 약속이 신경 쓰였던 것일까. 아니면 '부친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나와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김 선배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문자를 받고는 곧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지난해 봄 코로나19로 돌아가신 뒤로 지인들에게 받는 부고 문자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족이 떠나는 슬픔은 그저 관념적이었을 뿐이었다. '나도 가족 중에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많이 슬프겠지' 정도의 무게였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나올 법한 그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나니 타인이 겪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됐다. 창밖의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직접 비를 맞는 것은 달랐다. 차가운 빗방울 하나하나가 몸에 박힐 듯한 통증은 바라만 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앞서 받았던 부고 문자를 보며 김 선배의 부친상 장례식장을 찾았다. 함께 온 선배가 내 뒤를 따라오던 중에 조문객을 배웅하던 김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떻게…."
"안녕하세요."
잠시나마 나를 본 김 선배는 놀란 기색이었다. 부고 문자를 보내지 않은 조문객이 왔으니 생각지도 못한 손님의 방문이었다.
"아니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야."
"선배 오셨어요? 아버지가 오늘 오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나와 함께 조문한 선배는 김 선배에게도 선배였다. 김 선배는 위로를 받는 동안에도 침착한 얼굴이었다. 아직 조문객이 밀려들지 않은 첫날 오후 3시였다. 두 분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조문을 온 사람도, 조문객을 받는 사람도 유쾌하지 않았다.
김 선배는 급히 부친의 영정사진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나와 함께 조문 온 선배는 영정사진에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무릎을 굽히고 이마에 포갠 양손을 댄 채 바닥에 얼굴을 파묻을 때 눈알이 화끈거렸다. 단전에서부터 눈까지 찡한 느낌이 파고들었다. 자칫 상주가 아닌 조문객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영정 사진에 절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상주로 보낸 그날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절을 했고, 그때마다 또 얼마나 울었던가…. 찰나의 시간에 잠시 시간이 거꾸로 갔다가 온 듯했다.
"아버지가 7월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식이요법으로 몸이 좀 좋아지고 계셨는데 갑자기…."
"그래? 아버님 얘기는 전혀 듣질 못해서 놀랐네."
"네. 몇 분만 아시고 그동안 따로 말하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정신을 잃고 나신 후에 심정지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병원에서 정확 한 사인은 말 안 해주네요.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김 선배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상황들을 나와 같이 조문객으로 온 선배에게 말해줬다. 이 또한 조문객을 받는 방법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어휴. 그래도 눈물도 안 흘리고 씩씩하네."
"아직 정신도 없고, 장례식 끝나면 모르죠."
김 선배는 대화 중에도 선배의 농담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김 선배는 아직 세상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보였다. 갑자기 시력이 나빠진 것처럼. 그래도 김 선배가 눈물 흘리지 않고 상주 역할을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만 보면 눈물이 났다. 모든 순간들이 낯설었고, 이해가 되질 않았고, 억울하기만 했다. 그래도 김 선배는 '큰 덩치만큼이나 성격 좋은 남자'였다. 최소한 함께 장례식장에 있을 때만큼은 그랬다.
"담배나 한 대 피우시죠."
"그래."
김 선배와 함께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올초에도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병원에 가셨더라도…. 본격적으로 치료받은 실 때는 가족들 모두가 화목했어요. 그전에는 서로 말도 없는 그런 가족이었는데…. 얼마 전에 이직해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도 다 기뻐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아버지가 삶의 의지가 강했는데 너무 아쉽죠."
장례식장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던 김 선배의 눈가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느새 김 선배의 어깨에는 슬픔이 조금씩 쌓여갔다. 장례가 끝나면 슬픔은 피로로, 다시 그리움으로 변할 터였다.
"고마워. 멀리까지 와줘서."
"아녜요. 선배. 장례 잘 치르시고요."
김 선배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혹여나 말을 많이 하면 눈물이 쏟아질까 나는 말을 최대한 아꼈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김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김 선배에게도 지난한 시간들이 꽤 빠르게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