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May 17. 2024

여자가 죽었다, 나는 깨었다

일상기록

팀 문화체육행사가 있는 날이라서 바깥에서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명동에서 최근 개봉한 스릴러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나로서는 꽤 오랜만의 영화 관람이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 요즘 볼만한 영화가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극장에서 영화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다.


평일 낮이라 극장 자리는 많았다. 영화 표를 예매하고 각자 좌석을 고르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행과 좀 떨어진 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좌석을 확인하던 중 한 직원의 말이 귀에 꽂혔다. "우리랑 떨어진 자리 고르셨어요"


순간 아차 싶었다. 지독히도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내 성향을 뜻하지 않게 들킨 기분이라 민망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와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내가 사람들과 잘 교류하지 않고 주로 혼자 이것저것을 해결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팀 체육행사때는 그래도 뭔가 같이 하는 척은 할걸 그랬나? 나는 직원의 말을 듣고 뒤늦게 좀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고, 그냥 좀 떨어진 자리에서 혼자 편하게 보는 것을 고수하기로 했다.

다른 직원들과 떨어져 잡은 내 자리

영화가 시작됐고 나는 눈을 감았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상영시간이 가장 빨라서 고르긴 했지만 스릴러물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프다 하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눈치가 보여서 참았다. 억지로 상영관에 들어가긴 했지만 영화는 보지 않고 그냥 잘 생각이었다.


실제로 나는 영화 초반 부분을 자느라 보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잠이 깨었고 더 자보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나갈수도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이 눈을 뜨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주연 여자 배우는 내가 그닥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사실 그래서 이 영화가 별로였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건만 어느새 내가 꽤나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괜찮았고,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나처럼 아무 관심 없던 사람도 끌어들이는 힘이 있구나 싶었다.


영화는 마무리도 진부하지 않고 시니컬하게 끝내며 종료되었다. '나쁘지 않네' 나는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화가 괜찮았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그저 그렇다, 내 타입 아니라고 생각했던 주연 여배우가 어쩐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효과(?)마저 있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확실한 여우상'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여우와는 거리가 멀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은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그저 그랬던 '여우상' 배우들

스크린 안에서 열연을 펼쳤던 주연 여배우의 필모를 뒤늦게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나는 '이이도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생각하였다. 그러고보면 나는 얼마나 쉽게, 보이는 것만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재단하며 살아왔던가. 내가 그렇게 취급되는 건 싫어했으면서. 다소 늦게 발견한 이 배우의 미소가 참 어여뻤다. 나이를 먹었으면 증가하는 체중만큼 마음도 넉넉해져야 하는데 나는 갈수록 강퍅해지기만 하니,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견뎌야지 어쩌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