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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시인 Sep 06. 2017

Prologue. 여행, 그러 ‘나’

#3. 일에 관하여

2016년, 12월 손이 시려 꽁꽁거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강인한 어조로 팀장을 나무란다. 자기는 전혀 알지 못했단다
. 그렇게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다. 이로써 9년간 3번째 진급에서 누락했고, 팀장에게는 4번째 보내는 퇴사 통보였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늦었을 뿐... 


'만약 이번에 차장을 달아준다면, 그래 눈감고 다녀보자. 안 달아준다면, 그냥 나가버리고 말지.' 

간사하게 존재하던 나의 마음에게도 단호한 결정을 고했다.


그렇게 투쟁을 하고 난 뒤, 조국을 구하는 잔다르크의 비장함으로 팀장에게, 

'이 모든 탓은 너의 무능력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한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물론 속으로만. 


그리고 9개월 후, 나는 드디어 백수가 되었다. 


나는 예능 PD가 되고 싶었다. 사실, 스포츠를 너무 사랑해서, 스포츠 PD의 꿈을 잠시 꾸기도 했지만, 이미 나침반의 방향은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함께 기획하는 예능 프로그램 제작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튀고 싶어 안달 난 나의 성격상, 나 때문에 남이 즐거워하는 그 쾌감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꿈은 누구나 쉽게 꿔야만 하지만, 도달하는 과정마저 쉽다면 나와 같은 낭패를 보기 쉽다. 

취업할 때, 나는 단 한 번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방송사 면접에서는 면접 위원들에게 야한 농담과 함께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흘리는 것만으로 합격해 버렸고, 광고회사 면접에서는 내가 무슨 광고에 관심이 있는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합격 종소리가 울려 버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것은 나의 신통한 능력이 아니었음을, 단지 나를 둘러싼 주변의 고마운 기운이 나를 행운으로 인도했을 뿐이라는 것을


억울하게도 나는 정말 몰랐다. 그 후, 나는 매우 거만해졌고, 쉽게 차지한 결과물은 내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거만함은 내 가슴속 용기와 간절함, 그리고 도전을 지워버리더니, 마침내 나의 나침반마저 삭제시켰다. 그 결과,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괴로웠고, 한 달에 한 번 돈을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외로웠다. 나의 초점은 희미해져 갔고, 주식과 미팅, 농구, 연애가 혼합된 링겔만으로 삶을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초점을 잃어버린 나침반을 복구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9년의 회사 생활 동안 나는 단지 월급 루팡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Oh My God!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은 내게서 달아나질 않는다. 월급 루팡에게 회사는 지속적으로 잊지 못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도대체 나란 인간에게 왜 이런 축복을 주는 것일까? 그것이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그렇게 많은 의문을 남긴 채, 퇴사를 하고 집에서 빈둥대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잃어버린 나만의 나침반을 다시 찾게 되었다. 


Oh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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