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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시인 Oct 03. 2017

Chapter.0 여행, 그러 ‘나’의 시작

Day 8. Goodbye, Katmandu, Nepal 170106

“짹짹짹짹”
포카라에서 맞이했던 첫 아침처럼 참새들이 이른 아침을 알려준다.

“깍깍깍깍”
히말라야에서 체력을 방전한 탓인지, 꾸물거리는 나에게 참새들의 친구, 까마귀들마저 합심해서 포카라의 마지막 아침을 즐기라고 강력하게 주문한다.

포카라의 아침은 항상 싱그럽다, Pokara

“아침식사는 뭘로 해줄까요?”

잠에서 깬 나는 <산촌 다람쥐>로 가서 날 예약해 두었던 카트만두행 비행기 티켓 일정을 확인하고 제육 덮밥을 시킨다.


“잘 잤어요? 어머 이제 사람 같네, 수염만 깎으면 되겠다.”
“하하하, 그런데 숙소에 뜨거운 물이 안 나와요. 하하하, 그래도 오랜만에 개운하네요. 여유 있게 오후 비행기로 예약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비행기는 좀 큰 걸로 예약해 주신 거죠? 오전에 포카라에서 즐길만한 액티비티가 있을까요?”


포카라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등산객들의 최초 집결지이기도 하지만, 페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로도 유명하다. 산악 박물관도 있고, 다양한 동굴도 있고, 포카라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산들도 있다. 특히, 아주머니께서는 세계 3대 스팟이라고 자랑하시면서 해발 1600미터 사랑코트 정상에서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을 소개해 주셨지만, 때마침 저쪽 하늘에서 빙글빙글 급격히 떨어지는 패러글라이딩을 보고 있노라니, 급하게 추락하는 순간, 혹시나 고산병이 나를 또다시 위협할까 봐(실제로 그럴 일은 없다) 얼른 고개를 가로젓는다. 꾸역 구역 위를 통과하던 제육과 덮밥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샨티 스투파 가는 길, 쉬는 길에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아스팔트 도로 위 한 컷, Pokara

어젯밤, 크리샤와의 이별 후, 호숫가에서 평화롭게 지난 사진을 바라보던 중, 호수 건너 저 멀리 산 정상에서 유난히 빛나던 둥근 모자를 쓴 하얀 사원이 문득 기억났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산촌 다람쥐> 이사벨 여왕 아주머니에게 둥근 모자를 쓴 사원에 대해 물어본다.

 

“샨티 스투파? 택시 타고 가도 되고, 젊으니까, 자전거 타고 가도 크게 문제없을 거예요. 그곳 정상에서 포카라를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요. 연인이랑 가면 더 좋을 텐데. 3시간이면 왕복 가능하니 갔다 와요, 어서, 어서!”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것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포카라의 날 것, 그대로의 공기를 흠뻑 맞아보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호수 저 먼 곳으로 인도해 줄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선택했다. 재촉하는 이사벨 여왕의 주문에 따라, 재빨리 숙소 근처에서 시세보다 역시나 비싸게 자전거를 빌린 다음, 나의 벗 ‘시행착오’와 함께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린다. 

본격적인 오르막의 시작, 나는 아마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샨티 스투파는 일본 불교의 한 종파로서 원자폭탄 피폭국으로 전쟁의 위험을 알리고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건설했다고 한다. 그들로부터 모진 시련을 견뎌낸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둥근 모자를 쓴 하얀 사원의 내력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정상에 서서 그곳을 힘차게 꽉 밟아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싶었다.


1시간이면 충분하다던 거리가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진다. 그 근원에는 내 작은 엉덩이마저 견딜 수 없는 좁아터진 자전거 안장이 한몫하는 것 같다. 너무 좁은 안장 위에 엉덩이를 포갠 채 비포장 도로를 꿀렁꿀렁 달리다 보니,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나의 전립선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엉덩이를 하늘로 높이 치켜든 채, 노 젓듯이 자전거 핸들을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오르막길의 끝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거치대와 조그만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산촌 다람쥐> 아주머니와 현지인들의 설명과 다르게, 샨티 스투파로 가는 길이 너무나 험준하다. 내리쬐는 뜨거운 뙤약볕과 의아해하는 현지인들의 눈총을 뚫고 지그재그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길 위로 이리저리 핸들을 휘저어가며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가끔씩 나를 앞질러 가는 오토바이 행렬들이 나를 조롱하는 듯 입꼬리를 치켜들며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히말라야 산길에서 품었던 의문이 다시 한번 되살아 난다. 의문이 의문의 꼬리를 물고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길의 인도를 받으며 2시간 정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나니, 마침내 도로의 종착점이 나온다. 자전거를 지정된 거치대에 자물쇠로 단단히 잠근 다음, 미리 준비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도로의 끝이 나타나면 50분가량 등산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5분 정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어라’ 신기하게도 샨티 스투파 입구에 도착한다. 부푼 나의 호기심이 터질 것 같은 전립선의 고통을 잠재운다. 여긴 어디지? 나의 벗‘시행착오’에게 묻는다.

 

‘여기가 샨티 스투파?’

하얀 모자를 쓴 사원 앞에서 한 컷 촬영, 샨티 스투파

모르는 것이 때론 약이 될 수 있다. 무식한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항해를 탐험하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우를 범했고, ‘시행착오’를 태운 무모한 현진버스는 샨티 스투파로 가는 도로를 탐험하다가, 새로운 경로를 발견한다


샨티 스투파의 입구에 도착하니, 지정된 루트로 온 연인들이 탁 트인 시야를 바라보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사원의 정상으로 달려간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발견한 경로는 현지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샨티 스투파까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고 나는 무모하게도 그 길을 자전거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존경의 뜻이었으리라. 어쨌든 보통의 여행자들은 등산을 하며, 우거진 숲 사이로 햇볕을 피해 이곳에 도착한다고 하지만, 무식한 현진버스는 콜롬버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결론적으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 하게 되었다. 

샨티 스투파를 향한 계단 위에서 귀여운 네팔 소녀와 애기, 옷 색상이 참 예쁘다.

하얀 모자를 쓴 사원 앞에서 간단히 목례를 한 다음, 맨발로 사뿐히 계단을 즈려밟고 사원이 제공하는 정상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시야가 시큰거리는 전립선을 다시 한 번 달랜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보람'' 있다. 페와 호수 너머로 펼쳐진 안나푸르나를 포함한 거룩한 설산과 페와 호수 주변에 펼쳐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을 배경 삼아 그 속에서 펼쳐졌던 7일간의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장식하듯 바람을 따라 스쳐 지나간다. 벌써 꿈처럼 아련해진 7일간의  스토리들이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 아래 증발하지 않도록 하얀 모자가 제공하는 그늘 아래에서, 그동안 펼쳐졌던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본다. 그렇게 멍하니 포카라의 경치를 바라보며  그동안의 장면들을 기록하고 거기서 얻게 된 소중한 감정들을 기억한다. 경건하게 기도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선언한다.

샨티 스투파에서 바라본 포카라의 모습, 저 멀리 구름에 가려진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숨어 있다.

어처구니없이 반복되는 실수들로 허비한 지난날들을 반성하고, 지난 실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페달을 즈려 밟을 곳. 이곳에서 나는 항상 함께했던 나의 벗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의 벗에겐  매우 갑작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여태까지 경험한 시행착오를 불어오는 바람에 실어 날린다. 좌충우돌했던 지난날을 대신해 진중하게 다가오는 미래를 마주하겠다는 다짐, 이와 더불어 나의 소중한 벗 ‘시행착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이별을 고한다.


그.러.나. (=But)

나의 벗 ‘시행착오’가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게 경건함 마음을 지닌 채, 자전거를 묶어두었던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쏟아지는 햇빛을 뚫고 올라간 오르막길의 반대편에는 상쾌한 바람이 안내하는 내리막길이 존재한다. 흥건하게 적셨던 포카라 '스웨트'를 시원한 바람에 시행착오와 함께 마저 실어 보내며, 포카라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나의 꾸러미들, 침낭과 가방, 파카를 대여하지 않았으면... 끔찍한 상상을 해봤다.

등산을 하기 위해 가져온 내 꾸러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솔직히 어이가 없는 웃음이 나온다. 무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콜롬버스처럼.


‘현진아 넌 참 무대책으로 이곳에 왔구나. 너는 진정으로 자만했구나.’


임관을 앞둔 호랑이같이 시커먼 대학생들마저도 등산화를 구비하고, 파카를 껴입고 방한 양말을 철저하게 준비하는데, 나는 진정한 무소유를 포카라에서 실천했다.


'내가 가진 것은 정말 별로 없구나. 나이키 러닝화와 나이키 운동복 바지, 양말 몇 켤레, 그것마저도 나중에 모자라, 크리샤가 건네 준 양말로 나머지 시간을 보냈었지. 어쩌나, 이것이 원래 나인 것을. 그래도 무사히 여태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샨티 스투파에서 갑작스럽게 작별을 고한 나의 벗 '시행착오'를 대신해서 이제는 마주하는 인생의 사건들에 대해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할 때라고 스스로에게 주의를 준다.


마중 나오시는 <산촌 다람쥐>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포카라 공항으로 향한다. 포카라 공항은 내가 본 공항 중에, 가장 규모가 작고 체계도 허술하다. 운행하는 비행기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출발 시간이 딜레이가 되는 일이 번번하다. 하지만, 딜레이 되는 시간마저도 이곳에서는 여유롭다. 포카라는 그런 곳이다.

 

다행히도, 예약을 잘 해주신 덕분에 포카라에 올 때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체계가 잡혀 있을 것 같은 비행기가 나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기 때문에, 재빨리, 왼쪽 창가에 앉은 다음, 나를 품어 주었던 히말라야 산들과 마주하며 한 봉우리씩 작별인사를 한다.

보호장비가 없이 명렬히 돌아가는 프로펠러, 카트만두에 도착할 때 쯤인것 같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자마 전쟁이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나를 둘러싼 호위무사들, 그러나 이제는 가 가야 할 발걸음을 알고 나의 벗과도 작별을 했기에, ‘어리게 생긴 네팔인들에게 10불짜리 팁을 ‘버리’는 어리버리한 행동을 할 리 만무하다. 포카라에서 미리 예약한 카트만두 숙소는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셔틀버스 아니, 봉고차 속으로 재빨리 몸을 집어 넣는다. 인상 좋게 생긴 드라이버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헬로!" 유창한 영어실력이 나를 압도한다.  

카트만두의 일상적인 모습들, Katmandu

카트만두의 첫인상은 카오스였다.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무질서한 차들과 울려 퍼지는 심술 가득한 클락션 소리. 희뿌연 매연 속에서 안개처럼 휩싸인 인파, 그 속에서 간헐적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는 도로 위의 소, 말, 양, 염소들.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 축복을 선사하지 않는 것 같다. 포카라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너무 시끄럽고 실망스러운 이곳에서 내일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마침, ‘If you are OK,” 내일 오전 카트만두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유창한 영어 실력 소유자인 드라이버의 제안에 흔쾌히 ‘OK’를 외쳤다. ‘시행착오’ 없이 꼼꼼히 그의 제안을 곱씹어 본 결과, 꽤나 합리적인 제안이었다는 점에 스스로 만족감을 표하는 사이, 숙소에 도착하고 샤워를 한다.

 

“앗, 차가워!”
호텔은 여전히 찬물만이 쏟아져 나온다.


안녕 H, 포카라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카트만두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어. 이곳 카트만두는 사람과 자동차, 오토바이가 무질서한 듯 움직이는데,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질서를 통해 매우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흔한 접촉사고 하나 나지 않는 것 보니, 정말 신비스러운 곳이야. 포카라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언젠가는 꼭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처음 나를 이곳에 소개해준 ‘아는 형님’은 내가 겪은 심적 변화를 미리 알고 있었을까? 크리스마스 날 티켓팅을 한 후에, 그 날 저녁 나는 너를 만나게 되었지. 이 상황이 참 신비스러워서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인연에 의미를 더욱 부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인연의 이유가 어찌 되었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또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포카라에 두고 온 나의 벗 ‘시행착오’ 대신에 나의 사랑하는 벗과 함께 이곳을 경험하고 싶어. 그런 기적같은 일이 펼쳐진다면, 그 땐 내가 크리샤가 되어서 히말라야의 장엄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고요한 풍경을 소개해주고 싶어. 그렇게 되면, 나는 10불짜리 팁을 주지도 않을 것이고, 당황해서 현금 인출을 카드 단기대출로 하지 않을 것이고, 옷도 두툼하게 잘 챙겨 올 거야. 참 그리고 터질 것 같은 전립선을 대신할 스펀지 같은 안장도 당연히 준비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겪었던 이별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야. 인연이 나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 그리고 인연의 시작과 끝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도. 그것은 히말라야에 숨 쉬고 있는 거룩한 신의 영역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인연에 대해 그릇된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관계를 망치지 않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런 의미에서 포카라에서 이별을 고한 나의 벗 ‘시행착오’가 이별의 슬픔을 뒤로 하고, 새로 시작될 인연을 위해 나 대신 너를 위해 귀중한 선물을 준비했단다. 기념이 될 만한 마땅한 선물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축제를 함께 즐겼던 포카라 거리에서 부드러운 회색 캐시미어 니트를 하나 건네받았어. 아마도 네가 싫어할 것 같아. 심술궂은 나의 벗이 고른 선물이기에, 현실적인 패션감각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거든. 비록 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난 7일간 너를 향한 마음만은 받아주길 바래본다. 이제 하루 남았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는 마지막 날이.
Good bye 포카라, Good boy, 시행착오!

샨티 스투파를 내려와 페와 호수 근처에서 갈증 해소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꽤나 분위기 있는 카페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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