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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시인 Mar 24. 2024

골프가 체질 EP.1

우리가 골프를 사랑하는 마땅한 이유

‘쓰윽’ 

코로나가 황폐하게 휩쓸고 간 자리엔 감염에 대한 불안, 마스크로 가로막힌 불통, 관계에 대한 불신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지는 않았다. 메마른 대지에도 꽃이 피어나듯, 불안, 불통, 불신을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생각지도 않은 문화가 우리 주변에 시나브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유난히 탁 트인 공간에 유별나게 짙은 녹음,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이 어우러진 골프장의 풍경에 대중들의 눈이 쏠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 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닫혀 버린 코로나 세상에서 골프장의 존재는 갇혀버린 세상의 답답함을 털어내는 대중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서너 명씩 짝을 이뤄 골프장이라는 안식처를 출입했고, 이색적인 골프장의 풍경에 넋이 나간 채, 대중은 자신을 피사체 삼아 흥미진진한 SNS 생산물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이내 곧 골프장은 세련된 갤러리로 탈바꿈되었다. 필드는 물론이고, 클럽하우스, 그늘집, 카트 등 장소에 상관없이 너와 내가 함께하는 다양한 소통의 장이 형성되었고, 코로나 시대가 무색할 만큼 골프장은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채색되었다.


‘풍덩’

운 좋게도 필자는 코로나 시대 전에 이미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고, 어떤 스포츠보다 골프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인들을 골프장으로 불러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반자를 만들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모습을 추억하자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돈다. 지난한 ‘똑딱’이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주고, ‘딱딱’한 채를 쥐고 연신 휘둘러 대는 친구에게 ‘잘한다! 잘한다!’ 무한 칭찬을 반복하다가 비로소 골프장에 ‘똑똑' 노크를 하게끔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이 나와 당사자 모두에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들이 변했다. 코로나에 갇혀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서 허우적대던 그들을 드넓은 진짜 숲으로 안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가 아닌, ‘코로나’였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개안할 수 없었던 대중들의 골프 사랑, 그렇게 풍덩 빠져버린 골프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시대와 세대를 흔들어 놓은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던 것일까? 골프는 야구, 축구, 농구와 같은 여타 인기 스포츠와 달리, 보는 것보다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러다 부지불식간 골프라는 늪에 빠지게 되면, 더 잘하고 싶어서 골프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로가 뒤바뀐 본말전도의 운동인 셈이다. 골프 채널을 시청할 때도 목적 없이 재핑하다 얻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번호를 꾹꾹 눌러서 손수 찾아 들어가야만 하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골퍼가 시도하는 일련의 정성스러운 행동 모든 것이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매김한다. 골프는 찬란한 늪이다.   


‘허우적’

세팅된 18번의 홀에서 우리는 드라이버를 들고 아이언을 들고 어프로치를 하고 퍼트를 한다. 그렇게 18번의 쳇바퀴 속에서 평소에 감춰 두었던 너와 나의 희로애락이 낱낱이 드러난다. 페어웨이에 안착하기 위한 집념과 분노, 그린에 적중시키 위해 벌어지는 볼과 나의 필사적 사투, 마침내 홀 컵에 빨려 들어가는 환희에 찬 볼을 보며 우리는 또 다시 늪에 빠진다.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찬란한 늪’ 속으로 말이다. 


‘땡그랑’

골프는 심판이 없는 스포츠다. 동반자의 독사 같은 눈초리가 있긴 하지만, 철저히 나의 양심에 맡기는 스포츠다. 삭막한 도시에서 돈만 좇아가야 하는 현대인에게 확 트인 대지가 주는 영예로움은 세속의 늪에 빠진 골퍼에게 명예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 디봇에 내 공이 살포시 앉았을 때, 에그 프라이가 된 볼을 보았을 때, 오비 선상에 아슬아슬하게 볼이 위치할 때,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동반자와 합의를 도출하고 명예로운 개선을 시도한다. 골퍼들에겐 얼마 전 발생한 윤이나의 오구 플레이가 김연아의 결혼 소식을 압도할 만큼 명예는 소중한 것이다. 현자들이 말하는 명예를 좇다 보면 자연스레 돈이 따라온다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 골프다. 정직해야 한다. 프로에서도 이 말은 통한다. 명예를 얻으면 돈은 따라온다 그것도 a lot. 

‘어랏’ 

사우디에서 LIV 골프가 돈뭉치를 들고 대서양을 건너 PGA를 침공했다. 엄청난 돈다발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명예를 걸고 나와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는 프로골퍼라면 선택지의 기준이 일반인과는 특별히 달라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돈을 좇고 누군가는 명예를 좇는다. 어떤 가치가 우위에 있는지 논할 수는 없다. 골프는 세상 유일한 심판이 없는 솔직한 스포츠고 그것은 철저히 자신의 선택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자신이다. 심판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승패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양심, 나의 올바른 선택에 따라 승패가 바뀌는 유일한 스포츠. 그렇게 명예를 지키고 나를 지키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골프를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이유는 아닐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가을의 시작, 9월이 찾아온다. 무시무시한 코로나를 견딜 수 있게 용기를 준 골프가 폭염마저 이겨내고 어느 새 ‘쓰윽’ 우리 곁으로 파고들 것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우리는 그저 이성이 마비된 채 골프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찬란한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 거리는 나와 골프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린 동반자가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들과 함께 풀내음 가득한 골프장에서 풍경을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말방구를 날리다 보면, ‘어랏’ 우리의 삶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코로나를 저 먼 서쪽 하늘로 날려버릴 수 있지는 않을까? 그 날을 희망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칭얼거려 본다. 


‘흔들리는 샷들 속에서 네 양파향이 느껴진 거야 ♬’ 


어쩌면 체면과 어우러짐, 자연이 조화된 골프가 한국인에게 딱 맞는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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