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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Nov 01. 2020

이시국에 '여성'을 주제로 글을 쓰다니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항상 문장을 완성하려다 이내 지우고 마는 주제의 글이 있다. '여성'이다. 복잡한 심정을 글로 정리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글의 주제는 언제나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글을 완성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 글의 마지막엔 언제나 '피해자'인 여성의 서사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고 싶지도 않았고, 또 이런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떠올리게 할 것 같았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젠더 관련 이슈만 봐도 죄다 '여성 타도' 일색의 댓글이 달리는 현상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관심받는 건 좋아하지만 악플은 좋아하지 않는다. '쫄보'라서.


하지만 관련 책과 영화, 리뷰를 보고 나서는 스스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일도 아니고 얼굴 한 번 못 본 여성의 일이라는데, 그 정도엔 같은 여성으로서 한 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 그렇게 한두 편씩 본 책, 영화를 되작여보니 한 시간 정도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글이 돼 있었다. 


첫 번째 '비수가 된 시선'에서는 가부장제, 혹은 그보다 모호한 책임소재의 사회 시선이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미혼의 30대 여성이 결혼 문제로 주변의 선 넘는 관심과 질문을 한 몸에 받는다든지,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개별의 남녀로 연애하다 헤어진 것뿐인데 여성만 '꽃뱀'으로 몰려 이직한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고도 근시인 내가 굳이 회사에서 안경만 쓰고 다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어냈다.


두 번째 챕터인 '비수가 된 관계'는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며느리와 아내, 엄마 등 여러 정체성을 갖게 되는 '엄마'의 고민과 상처, 극복 과정 등을 다룬 서사를 한 데 모았다. 몸은 하나인데 여러 역할을 하는 만큼 이들의 상실은 여러 군데서 오는데, 가장 큰 상실은 자기 자신을 잃는데서 온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들은 자신의 첫사랑을 잃기도 하고, 자식을 잃거나 커리어를 잃으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줌마, 혹은 우리 엄마, 아니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챕터인 '비수가 된 제도'는 이주 여성, 일본 성노예 등 특수한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 탓에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는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김복동>, <미씽> 등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의 상처는 되새기고 기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다른 여성의 삶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살을 붙였지만, 결국 내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을 그들에게 이입한 데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내 얘기를 좀 더 많이 하고 싶다. 좀 더 많은 경험과 결심이 쌓이면, 그땐 쫄보여도 불구하고 운을 떼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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