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잉 Aug 17. 2021

당신의 작은 선의, 정말 ‘별 것’ 아닌가요

이소영 교수의 <별 것 아닌 선의>를 읽고


이 책을 읽을 때쯤 나는 지쳐 있었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위한 나름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고, 평소에 눈여겨봐 뒀던 다른 회사에서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퇴근 후 나만 기다린 듯한 아이를 하원해 집으로 가는 길에도 아이에게 보란 듯 웃어주기 어려운 날이 이어졌다. 이 삶의 외부를 상상하는 일이 사치처럼 여겨지던, 연이은 무채색의 날들이었다.     


‘별 것 아닌 선의’라는 책은 이런 순간에도 타인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긍정하고, 이런 시선이 제목과 달리 ‘별 것’이 되어 빛을 발하는 순간에 대해 말한다. 회사에서 자잘한 사고를 쳤을 때 이를 수습해준 상사에게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말하고, 퇴근 후의 시간을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하고자 노력했던 시간. 그 ‘별 것 아닌 노력’이 오히려 공명을 일으켜 변화를 불러온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졌지만 고압적인 태도로 당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과 매끄럽게 지내기 어려워하는 자신의 내면을 꺼내 들어 독자들이 그 모습과 자신을 대조하게 만든다. 이런 그의 ‘낮은 자세’는 책에서 스스로 일관되게 밝히듯 ‘속’(俗)보다 ‘성’(聖)의 시선이 닿아 있는 이유처럼 보이기도 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빈민연대와 함께 재개발 반대 운동을 했던 과거를 복기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재개발을 반대하다 업체 측의 보상을 받고 투쟁을 중단한 철거민을 언급하면서, 거대 자본의 무릎 아래 놓인 개개인보다는 자본의 존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경험이 있지만 나는 정 반대의 입장이었는데, 이런 입장은 그저 상황을 바꾸기 위한 나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실망스러운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지역사회에 존재감을 알리지도 못한 한 운동단체의 기사를 접하고는 ‘역시’ 그렇다며 냉소하고, 기득권에 아첨하는 글이어서 자신의 결과물에 낙제점을 주고, 최종 합격이 아니니 또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절망하던 내게 저자는 묻는 듯했다.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 사회를 바꾸는 뜻을 품고 불의에 저항한 경험이 정말 무용한 일인지. 이런 질문을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아 저자가 내게 대신 던져준 것 같았다.     


그러니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에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고 쉽게 냉소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애썼던, 생애에 많지 않던 순간을 높이 사고자 한다.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지는 내가 자신만의 관점에 갇혀 주변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할 때, 그리고 습관처럼 스스로를 냉소하며 작아지려고 할 때, 다시 이 책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 돌부리의 크기와 주변의 상황을 헤아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이는 상처 투성이인 엄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