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쯤 롤링페이퍼를 썼다. 옆에 있던 친구는 나의 글을힐끔 보더니, 초등학생 글씨체라고 칭했었다.
나는 글씨를 못 쓴다. 틀에 벗어나는 걸 싫어하고, 그림도 그려서 직선과 원 그리기를 그렇게 연습했지만, 내 글씨체에는 규칙이 없다. 요소요소가 크고 작고 오른쪽이 올라가고, 왼쪽이 올라가고 다들 자기 맘대로 배치되어 있다. 글을 쓸 때의 내 손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글씨체는 나의 콤플렉스였다.
나이를 먹고, 글 쓰는 연습을 시작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2~3분의 대기 시간이 생기면 글을 썼다. 생각을 정리할 때도 글을 쓰면서 정리했다. 태교도 시를 필사하면서 했다. 나의 일하는 책상에는 항상 만년필과 잉크가 준비되어 있다.
원래는 연필 특유의 사각거림을 좋아했는데, 만년필을 써본 후로 만년필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년필 특유의 펜촉이 종이를 긁는 느낌이 또는 미끄러지듯 써지는 느낌이 좋다. 일정하지 않은 얇고 두꺼워지는 선의 변화도 좋다. 잉크의 오묘한 색과 색 변화조차 완벽하다.
오늘도 한껏 긴장한 손을 주무르며 글을 썼다. 부드러운 잉크를 사용해서 흘러가듯 쓰이는 글자는 항상 매력적이다.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한 줄이 완성되고, 문장이 완성된다. 그리고 다 쓰고 나서 보면 글 쓸 때 본 글자 하나들이 모여서 다른 느낌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