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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견 Jan 09. 2020

열아홉 살 이동국의 잊혀진 유니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의 세 번째 킷

 1998년 6월 20일, 프랑스 마르세유.


 후반 32분. 점수판은 3 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데니스 베르캄프가 단 세 번의 터치로 이민성과 김태영을 제치고 골망을 갈랐을 때, 한국의 월드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경기장을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인 고국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네덜란드 선수들은 한국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바로 그 때, 차범근 감독은 몸을 풀던 열아홉 살짜리 선수를 터치라인으로 불러세웠다. 아들에게 옮은 수두 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서정원이 벤치로 들어갔다. 서정원을 대신해 21번을 달고 경기장에 나타난 이 키 크고 앳된 공격수는 한국의 마지막 교체카드였다.


 3분 뒤. 스코어는 벌써 4 대 0으로 벌어져 있었다. 패색이 짙던 한국의 21번 선수가 공을 잡았다. 그는 열 걸음 정도를 드리블하더니 삼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리에서 골대를 향해 힘껏 슛을 날렸다. 아쉽게도 공은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갔다.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경기를 중계하던 송재익 캐스터가 일순간 탄성을 질렀다.


 "가로챘습니다! 정면, 슛! 네, 김동국, 좋습니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강슛을 날리는 이동국 (출처: KFA)


 '라이언 킹' 이동국은 그렇게 세계 무대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이미 탈락이 확정된 한국의 마지막 경기 벨기에전에서 그는 벤치를 지켜야 했다. 그가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를 다시 밟기까지는 1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98년 한국이 더욱 준비를 잘 한 팀이었다면, 그래서 만에 하나 토너먼트에 진출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열아홉 살 유망주 이동국이 입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한국의 세 번째 유니폼이 여기 있다.




아무리 20년 전 유니폼이라지만 너무 흐물거리고 무거운 재질이다. 다른 팀들 유니폼보다 원단이 두 배는 두꺼운 것 같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만약 한국이 죽음의 조를 뚫고 16강, 또는 그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를 대비해 준비된 유니폼이 있었다. 보통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은 홈과 어웨이 두 종류로 나온다. 유니폼 디자인이 줄무늬거나 크로아티아처럼 특이한 문양이 들어간 경우가 아니면 두 종류만 준비해도 상대팀과 색깔이 헷갈리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많이 팔아야 하는 프로축구팀들은 한 시즌에 세 가지, 많게는 네 가지를 출시하기도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경우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세 번째 유니폼은 만들지 않는다. 1998년 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32개 팀 중에서 세 번째 유니폼을 준비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몇 해 전, 당시 브라질 팀이 준비했던 세 번째 유니폼이라며 이베이 경매에 올라온 하얀 셔츠가 있었지만 진품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세 번째 유니폼을 만들게 된 배경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아마도 흑백 TV로 보았을 때 상대팀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얀 셔츠를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홈 유니폼이 빨간 셔츠에 파란 바지, 어웨이 유니폼이 파란 셔츠에 하얀 바지였다. 흑백 TV로 보았을 때 밝게 보일 수 있는 셔츠가 없었다. 비슷한 사례로 2014년 월드컵 때 밝은 색 유니폼이 없었던 스페인 대표팀이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 흑백 TV 문제에 걸려서 하얀색 유니폼을 부랴부랴 급조해서 입었던 바가 있다.


 하지만 정작 1998년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기에서는 한국이 파란 셔츠, 네덜란드가 주황색 셔츠를 입었고 둘 다 하얀 바지를 입어서 흑백으로는 분간이 어려웠다(심지어 둘 다 나이키 유니폼이라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똑같았다!). 시청자를 배려하지 않은 유니폼 배정은 이뿐만이 아니라서, 한국과 멕시코의 첫 경기는 한국이 빨간색, 멕시코가 초록색 셔츠를 입었다. 적록 색맹인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90분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만약 한국이 토너먼트에 올라서 유니폼 색깔이 겹치는 팀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태극전사들을 98년에 볼 수도 있었겠지만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라는 역대급 조편성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의 세 번째 유니폼은 존재 자체가 잊혀진 채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입을지 못 입을지도 모르는데 제작한 것치곤 꽤나 정성들여 만들었다.


 이 유니폼은 색깔이 하얀색이라는 것만 빼면 프랑스 월드컵 때 선수들이 입었던 홈 및 어웨이 유니폼과 세부특징들이 동일하다.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제작된 이 셔츠는 목 뒤에 붙은 사이즈 탭이 판매용과 다르게 프린팅으로 되어 있다. 사이즈는 이동국 선수의 체구에 걸맞는 110사이즈다. 당시 월드컵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이 부착해야 했던 'FIFA WORLD CUP FRANCE 98' 자수도 박혀 있다. 이동국의 이름과 등번호도 부착됐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이름은 떨어져 나갔다. 당시 나온 오리지널 이름 마킹을 구할 수 없어 비슷한 색상의 다른 재질로 복원했다. 선수용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지금 이런 유니폼을 입고 뛰라고 한다면 아무도 좋아할 사람이 없을 무거운 재질이다. 요즘 축구화 한 짝보다도 무거운 309그램짜리 셔츠. 이걸 입고 죽음의 조에서 악전고투한 그 시절 선수들이 더욱 존경스러워진다.


하얀 바탕에 태극기가 테두리도 없이 달렸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예쁘다. 하지만 각도는 틀어졌고 오버로크도 허술하다. 뭘까...


 오랫동안 이 유니폼은 포항 스틸러스 팬이신 어머니의 소장품이었다. 이 옷의 정체에 대해 어머니께 여쭤보았지만 1998년 포항 구단 직원이던 친구를 통해 얻었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다. 프랑스 월드컵 기간에도 이 옷은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 때 코칭스태프들만 입고 있었고, 그 이후에는 이 유니폼이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훈련 때도 선수들은 이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이 하얀 셔츠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마도 이동국 선수 본인밖에 아는 이가 없을 것 같다.


 숱한 시련 속에서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끝내 피어나지 못했지만, 그는 21년 전 프랑스를 누빈 704명의 선수들 중 홀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그라운드에서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힌 이 낡은 셔츠는 이동국의 등장에 환호했고, 그의 부침에 함께 울고 웃었으며, 이제는 그와 함께 나이들어 가는 팬들이 추억하는 그 시절의 소중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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