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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견 Jul 21. 2020

인왕산에서 토성 본 이야기

400년 전 갈릴레이처럼

 지난주에 난생 처음으로 인왕산을 올랐다. 사실 나는 등산이라면 질색이다. 오르는 것도 싫지만 내려가는 건 더 싫다. 평평한 땅이 좋아서 네덜란드 교환학생 시절에 삶의 만족도가 최고치로 솟았을 정도다. 그런데 그날은 카메라 세 개에 삼각대까지 메고 인왕산을 뛰어올랐다. C/2020 F3, '니오와이즈'라는 혜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8천 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혜성, 근 10여 년 만에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혜성이 왔다는 걸 듣고 서울에서 그걸 볼 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인왕산을 가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할아버지 쌍안경을 가지고 혜성을 보던 추억이 있기도 했고.

 KF94 마스크를 쓰고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올랐다. 등반 난이도가 쉽대서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서 약간 떨어진 관측포인트까지 왔다. 수성동 계곡에서 달리기 시작한 지 25분 만이었다. 그곳엔 이미 너댓 명 사람들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천문 동호회인 것 같았다. 야경이 잘 나오는 남산 쪽이 아니라 반대편 서대문구 쪽을 보고 있을 이유는 오직 혜성일 테니까. 첩첩산중에서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지만 쑥쓰러워서 말을 걸지는 못하고 나도 조용히 삼각대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해가 제법 내려간 뒤에도 혜성이 있어야 할 곳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분명 맑았고 위성사진에도 아무 구름이 뜨지 않았는데. 카메라 줌을 당겨보니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날은 갰지만 일교차가 커서 그런 모양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절망적인 기다림 끝에 천문동호회원들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정상을 찾던 등반객들도 점점 수가 줄어들었다. 이제 그곳엔 나 혼자 남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내려오려다가 문득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목성이 위로라도 건네듯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왼쪽으로 목성보다는 희미한 토성이 보였다. 그때 문득 토성이나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까지 찍을 수 있을진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안 찍히면 삭제하면 그만이니까. 줌을 최대로 당기고, 셔터를 누르다가 손이 떨릴까 2초 타이머를 맞췄다.

숨은 토성 찾기. 파나소닉 루믹스 DMC-FZ2500. 20배 줌. F/4.5, ISO 125, 1/25초간 노출.

 화면에는 노란 점이 하나 찍혔다. 이미지를 다시 확대해 보고 나서야 내가 생각했던 그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친구한테 "썩은 식혜에 떠있는 밥알 같다"는 말을 들었다.

벅찬 마음으로 친구들한테 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밥알같이 생겼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우주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네놈이 불쌍하다"고 쏘아붙이려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게 고리로밖에 안 보이는 건 내가 토성에 고리가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어서였을 텐데, 그럼 토성에 고리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언제 알았을까?

 구글링을 해 보니, 토성의 고리가 발견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토성이라는 천체의 존재는 고대부터 어느 문화권에서나 인지하고 있었지만, 토성의 모양새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망원경이 나오고 나서야 밝혀졌다. 토성의 모양을 처음 기록한 사람은 1610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갈릴레이가 그린 토성 (출처: NASA)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본 선구자였다. 그는 8배에서 20배까지 확대되는 망원경을 썼다고 전하는데, 공교롭게도 내 카메라는 딱 20배 줌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갈릴레이가 보았을 토성이 딱 저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여느 별들처럼 둥근 모습일 줄 알았던 토성에 무언가 달려 있었다는 건 갈릴레이한테도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에 비하면 덜했겠지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진실'을 부정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을 때의 충격은 우리도 저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그러진 천체, 그리고 두 개의 혹. 갈릴레이는 자기 나름대로 이 모양새를 설명해 보고자 애썼다. 처음에, 갈릴레이는 토성에 두 개의 '달' 또는 '귀'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뒤에 다시 토성을 보았더니 토성에는 '달'도 '귀'도 온데간데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토성의 고리가 매우 얇아서 각도에 따라 안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아쉽게도 그의 상상력은 고리 모양까지 생각해내진 못했다. 이듬해 다시 토성의 '귀'가 나타나자, 갈릴레이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망원경 기술의 한계로 그는 죽을 때까지 토성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토성에 달린 게 고리였다는 게 밝혀진 건 40여 년이 지나서였다. 진자시계를 발명한 걸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팔방미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자기가 만든 50배율짜리 망원경 덕택에 토성의 고리를 더 선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로 접했을 노르스름하고 아름다운 토성의 모습을 선명한 사진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불과 40년 전부터다. 1979년 미국의 탐사선 파이어니어 11호가 토성 근처를 지나가며 사진을 전송했고, 이어서 보이저 1호와 2호가 토성을 탐사하면서 고리의 생생한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신문기사들을 보면 80년대 사람들이 느꼈던 감탄과 경이로움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멍멍하다.

파이어니어 11호가 1979년 8월에 찍은 토성
보이저 2호가 1981년 8월 촬영한 토성과 그 위성들

 지난달 부분일식이 화제가 되고 혜성 접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요즈음 다시 '우주쇼'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운석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대인의 생활에 무슨 영향을 주겠냐만은, 달에 사람을 보낸 지 반 세기가 넘어가는 오늘날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천체들을 보며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토성에 귀를 달았던 갈릴레이의 관찰이 400년을 이어져 마침내 보이저 2호를 토성에 보냈듯, 우주를 향한 우리의 동경이 다음 세대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탐험으로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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