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크로스오버 세미나를 했다. 시즌도 시즌이고,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을 조금이나마 끌어내 보고자 소소한 선물도 준비하고, 세미나 중간중간 돌발 퀴즈와 선물 증정도 하면서 또 한 걸음 디자이너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경험, eXperience라는 단어 앞에 U도 붙이고, B도 붙이고, C도 붙이고, 이렇게 저렇게 좋은 경험을 주고 경험을 향상 시켜보겠다고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경험’이라는 본질적인 명제에 대해 고찰하기 보다는 경험의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해왔던 것 같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자선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경험 제공을 통해 사업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다 보니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니즈와 원츠로 포장을 해서 사업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즉 제공하고 싶은 것을 제공하려는 부분이 클 수 밖에 없고, 사용자 또한 금전적인 이득이든, 감성적인 이득이든 뭔가 나에게 이로운 경험에 한 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모두가 이해관계자로 얽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긴 한데, 가끔은 이러한 돈의 생태계가 오가는 한복판에서 ‘경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는 것이 과히 유쾌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매월 통장에 채워지는 잔고를 확인하는 ‘경험’이 이 챗바퀴를 계속 돌릴 수 밖에 없게 하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것인가?
사업자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고 또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려 하고, 유저가 그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없는지 점검하고, 불편함이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하고, 궁극적으로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경험 디자이너라 감히 불리우는 내가 해오고 있는 업인데, 과연 나는 이놈의 ‘경험’을 잘 알고 있는 걸까? 매일매일 이론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다 한 잡지의 아티클을 읽고 정리를 해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하여 좀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을 살펴보고 아티클에서 제시하는 두 가지 경험 방향성에 따라 확인해야하는 체크포인트와 중점을 둬야 하는 사항들을 정리해서 세번째 COS에서 공유한 내용을 브런치/블로그에도 올려 공유해 봅니다.
한때 손목을 힙하게 했던, 한때 좋아했던 브랜드인 ‘스와치 swatch’는 브랜드에 대한 경험을 이렇게 정의를 했다.
‘수많은 브랜드가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하고 있지만 스와치가 지난 30년간 진행해 온 아트 프로젝트는 예술이 생활 속으로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에서 손목에 둘린 시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찰나를 만드는 것, 그러니까 시계 자체를 만든다기 보다 그 순간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와치가 예술과의 협업을 멈추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순간의 경험을 만드는 것, 경험이라는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스와치의 경험 철학은 상당히 추상적이지만 어미어마한 의미와 감동을 심어준다. 보통 시계는 악세서리 중의 하나로 ‘나는 소중하니까 좀 질러도 괜찮지..’ 텍스트나 비주얼 컨셉으로 보여주는 타 브랜드와는 상당히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 전략이라 생각된다. 물론 브랜드 경험이 정말 사용자의 경험으로까지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일상에서 경험을 잠깐 해체해 보면 여행, 영화, 음악과 같은 문화적 활동들뿐만 아니라 금융 업무나 상거래 업무 같이 금전이 오가는 활동들, 채팅이나 소셜 활동들, 등산이나 하이킹과 같은 레저 활동 등 개인적인 다채로운 경험이 있을 수 있고,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제공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일이 허다한 디자인 업무 현장에서의 경험이 있을 수 있는데, 결국 경험이라는 것은 특정 환경에서 무언가가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환경에 노출된 주체가 되어 실제로 무언가를 체험해보면서 지각 작용을 통해 감각적인 반응을 하게 되고, 이러한 체험을 통한 반응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억에 저장되는 총체적인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경험을 제공하는 사업자나 경험을 만드는 디자이너나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는 사용자 모두 ‘좋은 경험’이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체험과 반응이 선순환을 하지만, 경험을 제공하고 만들어내는 사업자나 디자이너의 관점에서는 체험으로서의 경험과 반응으로서의 경험은 차이가 있다.
우선, 체험으로서의 경험을 디자인할 때 체크리스트와 중점을 둬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 보자.
첫째, 체험이 제품 소비와 연결성이 높다? 낮다?
소비의 연결성이라 함은 즉각적인 구매를 유도하는지 여부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프라인에서 시식 코너와 온라인에서 체험 시뮬레이션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내 사진을 찍어 올려 립스틱을 직접 발랐을 때의 모습이라던가, 옷을 입었을 때 어떤 룩이 나오는지 시뮬레이션 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먹어보고, 뿌려보고, 착용해 보고, 사용해 보고 하는 과정들을 거친 후에 ‘어, 괜찮은데? 사자!’로 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경험을 주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둘째, 체험이 광고효과와 관계성이 있다? 없다?
그놈의 팝업 스토어, 요즘 너무 많은데 팝업 스토어를 체험이라 생각하시면 오산, 팝업 스토어에 오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구매보다는 핫한 곳에 갔다는 소셜 인증이다.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체험, 즉 이는 즉각적인 구매 유도보다는 인지도를 높이는 광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이 찍고 많이 올려서 세상에 널리 알려 서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을 고민해야 한다.
셋째, 체험이 브랜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글의 서두에 스와치의 경험 철학에 대해 언급한 것과 같이 브랜드 체험이라 함은 브랜드의 철학, 역사, 핵심가치, 비전 등 브랜드의 본진(Essence)를 전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브랜드의 생애주기를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브랜드가 탄생해서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브랜드 체험은 고객에게 서서히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주보아야 이쁜 너 같은 존재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충성도라는 가치로 환원되게 해야 한다. 제품의 직접적인 노출을 통한 즉각적인 구매 또는 인지도 확대를 통해 잠재 고객을 확보하고 구매로 연결시키는 것이 광고라면, 브랜드의 이미지와 철학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과 긍정적 이미지 형성을 위한 활동을 통해 브랜드의 충성도를 가진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브랜딩이라 할 수 있다. 좀 쉽게 ‘사랑’에 비유하자면 광고는 후킹, 한 눈에 반해 확 타올랐다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같은 사랑이라면, 브랜딩은 연탄불처럼 은근하게 타오르지만 오래오래 지속되는 사랑같은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럼, 반응으로서의 경험을 디자인할 때 체크리스트와 중점을 둬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 보자.
첫째, 사용자의 여정 또는 동선은?
이제 슬슬 익숙한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반응으로서의 체험은 사용자 여정 분석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정이 단순한지 복잡한지, 복잡하다면 몇 개의 유형/단계로 나뉘고 유형/단계별 여정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각 단계에서의 happy path는 어떠한지, 페인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 때문인지 등 분석과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로 넥스트를 고민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둘째, 사용자의 접점은?
서비스 내에서의 여정을 중심으로 경험을 분석했다면 좀 더 확장해서 접점 채널과 인입 경로상에서의 문제점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요즘은 인입 채널도 PC, 휴대폰, 태블릿 등 다양하고, 알림, 소셜미디어, 검색 등 인입 경로도 많아졌기 때문에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부터 비호감의 경험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서비스 사용의 전/중/후를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셋째, 브랜드 이미지가 경험에 미치는 영향도는?
반응으로서의 경험에서도 브랜드는 중요하다. 사용자 여정 상에서나 접점 채널과 인입 경로상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뭔가 신통치 않다면 현재의 브랜드 경험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서비스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늘상 뉴스에서 부정적인 이슈로 보도되고, 브랜드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면 이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하는 있는 디자인이 체험과 반응 중 어떤 경험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어디에 초점을 두고 무엇을 목표로 해서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명을 다해야 하지만, 결국 이러한 경험의 종착역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계속 생각나게 만들고, 찾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경험 디자이너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현대 산업 혁명의 한 획을 그은 아이폰, 아이폰이 비지니스의 흥망을 가져오고,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경험의 변화, 즉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것이다.
예술가는 경험을 묘사하고, 학자는 경험을 정의하고, 사람은 하루하루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의 경험이 모여 인생이 되고, 경험은 우리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경험은 계속 생각나고 이야기하게 된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기술은 인간이 하는 경험의 매개체,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과 같은 것이다. 모든 디자인의 근간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삶의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에 필요한 쓰임이 될 수 있는 쓸모있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요!
그리고, 그 경험의 대상은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Brilliant designers study people, not trends.
*Reference
동아 비지니스 리뷰 395호, 잡스가 ‘마케팅 개념’ 싫어한 까닭 ‘고객경험’ 넌 대체 뭐니?, 김병규, 2024년 6월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2/article_no/11316/is_fre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