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시대가 도래할 조짐을 보이니 한 세기를 넘다들며 사는 것이 조만간 일반화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평균 수명이 80세인지라 무병장수하면 모를까 세기를 뛰어넘는 경험을 해 본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조상의 은덕으로 두 세기를 살아오며 두 차례의 산업 혁명을 거치고 스마트한 경험을 창출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짜릿한 인생 경험이란 말인가. 게다가 업의 분야를 바꾼 것도 아닌데 세상이 바뀌니 업을 칭하는 명칭도 여러번 바뀌어 처음엔 나를 기획자라 부르더니 서비스 디자이너라 불렀다가 이젠 유엑스 디자이너라 부르는데 유아디 디자인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포지션으로 살아왔다.
앞으로 또 내가 무엇으로 불려질지는 모르겠으나 불려지는 칭호가 많다는 것은 이 바닥 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영업도 아닌데 제안서도 쓰고 제안 피티도 해야 한다. 유엑스 디자이너이니 조사분석부터 유저 플로우 설계, 정보 설계에 전략 수립까지 해야 한다. 유아디 디자이너도 아닌데 한국에서는 유아이 디자인도 해야 한다. 화면설계 또는 스토리보드라 불리우는 이 작업의 핵심은 깨알같은 디스크립션인데 주부들이 집안일을 잘 하면 당연한 거고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욕 얻어먹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처럼 제대로 디스크립션을 써놓아도 그닥 열심히 보지도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뭔가가 빠져 있으면 바로 공격이 들어오는 아마도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이자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한 광경일 듯 하다. 그리고, 유독 이해 하기 힘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어느 정도 유엑스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으면 프로젝트 매니저를 해야 한다고 강요를 당한다는 것이다. 이름 대면 업계에선 알만한 회사에 오랜 기간 재직하며 이것이 우리 회사의 문제인지 우리 업의 문제인지 우리 나라의 문제인지 세상은 5차 혁명을 향해가고 있는데 우리 업계는 아직도 3차 혁명의 초창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현실이 이러하다보니 대한민국에서 유엑스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다.
나에게 만능이 되기를 강요하는 이 고난의 길을 왜 선택했냐고 그리고, 왜 아직도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 이유는 딱 이 세 단어로 귀결된다. 사람, 도전, 재미. 사람들(팀원들)과 함께 사람들(사용자들)의 경험을 관찰하고 더 나은 또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가는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세상과 기술이 자고 일어나면 변하니 제 아무리 경력이 많이 쌓여도 매번 프로젝트가 새롭고 도전적일 수 밖에 없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이 될 수는 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을 어이하리. 게다가 다중이와 멀티 태스킹을 해야 하는 만큼 일의 난이도와 강도가 높지만 분야를 넘다드는 다양한 지식의 습득과 배움의 재미가 비타민같은 역할을 해주니 유엑스 디자인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결론은 아직까지는 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한다. 물론 여기에 ‘아직까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 분야가 언제까지 나에게 이 세가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유엑스 디자이너와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역할에 주어지는 부당함에 싸워나갈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일을 시작한 후배들을 위해 나같은 놈이 버팀목이 되야 후배들도 함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후배들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온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한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이 업에 뛰어들고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계속 너무 달려만 왔다. 이제는 잠시 다시 숨고르기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나만의 언어로 정리도 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써내려 가게 되는 챕터들이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유엑스 디자이너이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또는 커리어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자, 그럼, 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과연 나는 어떤 타입이 디자이너인지 재미삼아 살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