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유엑스 디자이너라고 답을 하면 백이면 백 눈을 똥그랗게 뜨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말이죠…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사용자(영어로 유저)라고 부르는데 사용자들이 처한 조건이나 환경(이것을 있어보이는 말로 컨텍스트라고 하죠)에서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게 되는 지각, 반응, 행동 등 총체적인 경험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내는 일이랍니다… 라고 침 튀기도록 설명을 해보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이란 아… 네… 대단하고 좋을 일을 하시네요… 이런 반응을 접할 때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딸래미 무슨 회사 다니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외국인 회사 다녀라고 그냥 다섯 단어로 말해버릴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유아이 또한 만만치 않은 개념을 가진 축약어인데 유저 인터페이스, 즉 객체와 객체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화면이라는 이 어려운 의미를 과연 누가 이해를 하겠냐 싶어 그냥 쉽게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휴대폰에 앱 깔아 쓰시죠? 그거 만드는 일을 해요라고 툭 대답을 던지면 아하… 안면에 화색이 돌며 어떤 앱 만드셨냐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혹 어떤 앱 서비스를 쓰는데 뭐가 잘 안된다며 고객문의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업에 대한 인지도가 갑자기 급상승하여 이제는 유엑스 디자이너, 유아이 디자이너라는 용어가 예전보다는 많이 친숙해졌고, 심지어 전도 유망한 전문직 밥벌이에 종사하고 있는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유엑스와 유아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일반화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현실은 유엑스와 유아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일을 하는 이들을 필드에서도 만나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라떼는 없었던 책들과 온라인에 정보들이 넘쳐나고 대학에 관련 전공까지 있다고 하지만 사전적인 뜻풀이 정보로만 습득했을 뿐 본질적인 의미를 나만의 지식으로 제대로 채득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태초부터 존재해 온 쉽고 일상적인 개념을 마치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세상에 내놓으려다 보니 이리 된 것이겠지. 그래서 오늘은 어린 시절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기는 여러 이솝 우화 중 ‘존중과 배려’라는 주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만히 이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유엑스와 유아이를 아주 심플하게 잘 설명해 놓았다는 사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러하다. 여우와 두루미가 친구가 되기로 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를 한다. 여우네 집에 간 두루미, 밥을 먹으려는데 황당하여 벌어진 부리가 다물어지지 않는다. 넓적한 접시에 스프를 담아 놓고 두루미보고 먹으라고? 두루미 집에 놀러간 여우 또한 밥상을 앞에 두고 난감할 따름이다. 호리병에 담긴 생선을 여우보고 어찌 먹으란 말인가.
자, 이쯤되면 눈치 채셨나요?
유엑스의 관점에서 여우와 두루미를 퍼소나로 설정을 하고, 여우와 두루미의 신체적인 조건과 음식을 먹는 모습을 관찰해 보자. 여우는 넓적한 접시에 담겨진 스프를 혀로 맛있게 햝아 먹는다. 두루미는 어떨까? 길고 좁은 부리로 호리병에 담긴 생선을 콕콕 찍어서 맛있게 먹는다.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땠을까? 스프가 담긴 접시 앞에 앉은 두루미와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앞에 둔 여우는 둘 다 ‘지금 장난하니…’ 아마 이솝 우화에는 차마 담지 못한 육두문자가 오가지 않았을까 싶다. 두 유저의 다른 신체적 조건이라는 맥락을 바탕으로 음식을 먹을 때의 행동과 각각의 식기를 사용할 때의 경험, 이것이 바로 유엑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유아이는? 바로 그릇의 모양이다. 여우와 두루미가 음식을 먹는데 가장 최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릇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바로 유아이 디자인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야기에서 이미 나온 것처럼 여우에게는 접시가 두루미에게는 호리병이 각각의 유저에게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유아이인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하인즈 캐첩이야 말로 유엑스와 유아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라 볼 수 있다. 유엑스와 유아이를 설명할 때 늘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오죠?
어떤 그릇을 만들어야 할까가 유엑스라면 그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가 유아이인 것이다. 이것이 온라인 서비스의 개념으로 설명해 본다면 이러하다. 예를 들어 쇼핑몰의 장바구니를 생각해 보자. 사용자가 매주 똑같은 제품을 담고 결제를 한다는 관찰 결과를 얻었다면 늘상 사는 제품이 항상 장바구니에 담겨 있으면 쇼핑하기 편리할 것 같다는 인사이트가 도출된다. 그럼 제품을 담고 결제를 하고 나서도 그대로 장바구니에 남아 있게 피닝을 하게 할까? 결제를 다 하고 나서 필요한 제품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게 할까? 아니면 매주 정기결제를 하는게 더 편할라나? 지금까지의 고민이 유엑스라면 이러한 것들이 결정되고 나면 각각의 기능을 어떻게 화면으로 그릴지에 해당하는 것이 유아이가 되는 것이다. 유엑스가 어떤 기능을 만들고 어떤 동선으로 그 기능을 사용하게 하는지를 고민하는 작업이라면 유아이는 이것을 실제로 사용하는 화면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고민하는 작업인 것이다.
유엑스와 유아이, 사용자를 위한 최적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같다고 볼 수 있지만 고민의 시작점과 결과물이 다른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고 일을 하셨으면 합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