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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Mar 03. 2019

뭄바이 출신 친구와의 아침 식사

삼일절 아침


금요일 아침. 친구와 아침 식사 약속이 있어 NPR 팟캐스트를 들으며 외출 준비를 했다. 목요일자 방송을 듣던 차라 방송 내용의 첫 화두는 하노이 발 소식에 관한 것이었고, 진행자와 리포터 간의 핑퐁식 대화는 협상이 성사되지 않은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나(진보 채널이라 트럼프 측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 눈치), 코언의 폭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조종사 억류 문제 순으로 이어졌다. 만날 친구가 바로 인도 출신. 아무래도 관심이 가서 귀를 기울여 듣는데, 진행자들 간의 대담 중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이거였다.


“그건 인도 측 이야기이고, 파키스탄 쪽 입장은…….”


거기까지 듣고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집을 나섰다. 친구가 알아낸 다운타운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주문한 다음 대화를 이어가자니 때가 때이니만큼 자연스럽게 각자의 고국 관련 소식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크리슈나와의 대화는 때문에 늘 흥미롭다. 크리슈나는 하노이 협상 불발 건에 안타까워하는 나를 위로했고, 나는 허리 잘린 한반도의 상황이 주변국들의 패권 다툼에 이용당하는 현실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개탄할 일인지를 성토하며 방방 떴다. 하지만 내 고국 이야기만 할 수 있겠는가. 인도와 파키스탄 갈등과 관련된 친구의 견해가 궁금하기도 했다.


“참, 파키스탄이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들어보니까 양쪽 입장 차이가 있는 것 같던데.”


크리슈나는 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흔들면서도 자신의 고국 관련 소식을 물어봐주는 것에 대해 반가워했다. 미국 친구들과 만나서 이런 질문 듣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주관이 뚜렷하지만 치우친 방향으로 흥분하지는 않을 만큼의 개념도 장착하고 있는 크리슈나는 이렇게 화두를 열었다.


“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지 뭐. 영토 분쟁, 종교 증오. 어쨌든 나는 인도 사람이니까, 그걸 감안하고 들어.”


친구가 요약해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에 주둔하는 테러리스트들이 국경을 넘어 카슈미르의 인도 영토로 들어와 자살폭탄테러를 벌였고 사십 여명의 인도인 사망자를 냈다. 인도는 파키스탄 정부 측에 테러리스트 검거 수사 협조 요청을 했으나 파키스탄은 정부와 테러가 관련된 바 없다며 인정 안하고 발뺌. 인도의 모디 총리는 비탄에 빠진 인도인들을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차 파키스탄으로 비밀 요원을 보내 테러리스트 주요 캠프 몇을 폭파하도록 지시했고 작전은 성공. 파키스탄 측은 인도가 테러리스트 기지가 아닌 정식 군 기지를 폭파했다고 주장하며 보복으로 인도 공군기 두 대를 격추한 뒤 살아남은 조종사 하나를 체포 감금하고 있다는 것.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다보니 결국 파키스탄이 백기를 들긴 했어. 억류된 조종사를 보내줄 테니 이제 서로 그만 하자고.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조종사가 인도로 송환되는 날이야.”


그러면서 크리슈나가 덧붙이기를, 지속적으로 상대가 찔러댈 때 어느 선까지는 봐주지만 한 방 먹여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카슈미르의 자살폭탄테러가 바로 그 기폭점이 되어준 사건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상황이 올해 있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모디 총리의 지지율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그럼 너도 모디 총리를 지지하는 거냐고 묻자 크리슈나는 환한 얼굴로 긍정하며 분명 그가 재선될 거라고 장담했다. 문득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함께 기차를 탔던 장면이 떠올라 한국 대통령과도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하자, 크리슈나가 반색하며 모디 총리는 한국 뿐 아니라 접촉하는 모든 국가 원수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폴리티컬하네. 아, 물론 좋은 쪽으로.”


내 말에 친구가 긍정하며 말했다.


“그렇지! 외교로서 다른 나라가 인도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도록 만드는데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거든.” 


그런데 크리슈나의 마지막 말이 딱히 객관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와서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외신들의 보도가 꼭 인도 편에 선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이니까. 하지만 그녀에게 그 말을 전할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이 인도와 파키스탄 갈등과 억류된 조종사 송환 보도, 코언의 폭로 건 등은 하노이 소식과 함께 이번 주 미국 언론에서 크게 다뤘던 부분이다. 그리고 같은 날, 지구 건너편에 있는 한국에서는 백년 전에 일어났던 거룩한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곳곳에서 태극기가 넘실거렸다. 


모두 어제, 삼월 일일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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