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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Mar 27. 2020

감사의 말에 문학을 담았을 때   

코로나 휴교령 직후 미국의 공립학교는 


우리 동네 학군은 좀 독특해서 상당히 부촌에 해당하는 지역, 중산층 지역, 빈곤층 지역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피라미드형으로 모이게 되어있다. 때문에 지역 내 교육청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 주 휴교령이 내려지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길어질 것을 대비해 온라인 수업 여부를 두고 교육청이 제일 먼저 결정해 실행에 옮긴 것은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먹지 않으면 끼니를 굶게 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제공할 프리런치 서비스, 집에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는 학생들이 누락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었다.


교육청을 중심으로 학군 내 스태프들이 상의해 신속히 결정을 내린 바, 각 학교에 수업용으로 비치된 랩탑이나 태블릿 피씨를 필요한 학생들에게 대여해주기로 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가정의 학생들을 위해서는 교육청 예산을 들여 모뎀 라인을 주문해 제공해주기로 했다. 때문에 지난 주 내내 공립학교 소속 직원들이 주말까지 학교에 나와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기기 대여 안내를 한 모양이다.


주말이 지나고나서 교육감이 학군 내 학부모들에게 그 과정을 보고하는 전체 메일을 보냈는데, 이메일 내용의 마지막이 내 마음에 윤기를 주었기에 기록해두고 싶다. 상투적인 문구로는 고맙다는 표현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 문학가의 문장을 인용한 교육감의 성의가 엿보여서 좀 울컥했다.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겠지만, 저는 이번에 우리 학군 내 구성원들의 헌신과 수완과 극진한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학생이든 동등한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 하에 그분들이 주말 내내 명확한 판단과 조율을 동원해 노력하신 결과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설 <컬러 퍼플>의 저자 앨리스 워커가 말했습니다. “감사는 모든 이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다. 우리는 극도의 고마움, 겸양, 깨달음을 표현하고자 할 때 감사하다고 말한다.” 앨리스 워커의 정신을 이어받아,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원하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을 바친 감사를 전합니다.


교육감 마이클 그래너 드림



여담이지만 큰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교육감의 짧은 연설이 있었다. 당시 나는 본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들과의 정서 차이에서 빚어진 어떤 일로 마음을 다쳐 있었다. 이민 생활이 서럽고, 대체 이 정서 차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미국 사람들을 싸잡아 미워하게 될 것 같은 우울한 마음으로 아이의 졸업식장에 앉아 있었다. 그때 교육감이 연설을 통해 전한 말이 미국 사람들에 삐진 내 마음을 달래줬었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른이 되기 직전의 정신적 혼란기를 맞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연설의 골자는, Nice(멋진)하다는 것과 Kind(선한)하다는 것의 차이점과 이 두 가지 인성의 특성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착하고 선한 게 무엇인지 알지만 멋져보이고 쿨해보이는 걸 지향하기 십상인 시절로 접어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동안 유념해야 할 가치관을 명확하고, 쉽고, 품격있게 호소하는 교육감으로 인해 당시 내 마음에 뭉쳐있던 미움 같은 것이 많이 누그러졌었다. 그날의 연설 마지막 문구를 적어본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선(kindness)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을 격조있게 전달할 줄 아는 이의 언어는 어려운 시기에 자칫 거칠어질 수 있는 마음을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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