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통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와 공부를 한다. 특히나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학원에 전혀 다니지 않고 전적으로 엄마 아빠와만 공부를 했다.
일단 이때까지 나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친 엄마 아빠의 노력은 분명 대단한 것 같긴 하다. 엄마의 장애를 떠나서 그렇게 하는 엄마 아빠들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주 어릴 때는 숙제도 당연히 엄마 아빠와 함께 하곤 했다. 내가 유치원 때 백감사 작품 만들기 숙제가 나온 적이 있다.
매일매일 우리가 저녁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적었던 감사일기를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 오는 숙제였는데, 당연히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혼자서 숙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같이 그림을 그려 주거나 만들기를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지금 커서 생각해 보면 엄마도 무척 난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 집에 남아 있는 그 백감사 작품 숙제는 나로 하여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그림도 못 그리고 만들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각장애를 가진 우리 엄마가 어떻게 백감사 작품을 만드는 숙제를 함께 했을까?
감사 열매를 주렁주렁 단 나무이든 꽃이든 뭔가 그리며 그 간 매일 쓴 감사 일기들을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했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보니 며칠간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며 고민을 하셨다.
며칠 후, 엄마는 우리가 그 간 손으로 써 온 감사 일기들을 읽어 달라고 하시며 일단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셨다.
그러고는 파워포인트로 여러 물고기 도안 등을 활용하여 백 마리 정도의 물고기를 만드셨고, 각각의 물고기들의 몸에 우리의 감사 일기를 복사하고 붙여 넣어서 진짜 감사 물고기 백 마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이 아이들을 프린트해서 오려야 하는데 오리는 건 시각장애 엄마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가 일하러 갈 때 나를 돌봐 주시는 이모에게 물고기를 오려 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모 가족들이 합심하여 하룻밤 안에 백 마리 물고기들을 오려서 다시 우리 집으로 데려오셨다.
이때부터 한글을 깨친 다섯 살 나 이응이의 활약이 시작되었으니...
그냥 나는 엄마가 마련해 준 커다란 파란색 바다 빛깔 하드보드 위에 신나게 내가 붙이고 싶은 감사 물고기들을 골라 마구마구 붙이면 됐다. 붙이면서 우리가 썼던 감사 일기도 읽어 보고, 엄마랑 작품명을 뭘로 할까 이야기도 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사의 바닷속에 물고기들을 모두 붙인 후, 물속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도 오래오래 보관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엄마가 고심한 끝에 아세테이트지로 감사의 바다를 잘 싸 주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해서 무지개반 이응이의 <감사의 바다>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을 유치원에 가져갔던 날은 더더욱 잊을 수가 없는 기분 좋은 날로 나의 소중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내 작품을 보고는 '와! 이응이는 감사 물고기가 엄청 많다.', '와! 너무 예쁘다.' 이런 말들을 해주었고,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듬뿍 받으니 어깨가 으쓱 으쓱,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 좋았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내 영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학원에서 나오는 프린트물이나 문제지들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고 거기서 다시 문자를 추출하여 소리로 들어가며 나를 가르쳐 준다.
태블릿 학습지 속 독해 파트 정도는 그냥 한 번에 들으면서 금방 가르쳐 주실 수도 있을 정도로 엄마는 영어를 잘 한다.
이럴 때 나는 은근 빈정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데, 나는 힘들게 하는 공부를 엄마는 너무나도 쉽게 하는 것 같아서이다.
어느 날 그런 얘길 했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어른인 내가 노력한 결과만 보고 있으니 엄마의 영어 실력이 거저 얻어진 것 같겠지만, 엄마는 어려서부터 만화 영화 자막을 볼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해서 영어를 반드시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해야만 할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된 거거든. 너는 아직 엄마보다 어리고 훨씬 시간도 많으니까 네가 엄마 나이쯤 되면 엄마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어쨌든 나는 엄마의 영어 실력을 볼 때마다 질투도 좀 나고 감탄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 시험 볼 때면 엄마의 뇌를 그때만 살짝 빌려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솔직히 써 놓고 보니 엄마를 너무 띄워 준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이런 조금 특별하고 조금 다르기도 한 엄마를 보고 있으면 어려운 일, 힘든 일이라도 방법만 찾으려 노력한다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걸 늘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