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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in 민윤정 Jul 02. 2020

좌충우돌 사내벤처 발굴 육성기

사내벤처 발굴 육성의 경험 : Next Incubation Studio

얼마 전, 500억 원 밸류에 카닥이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사내벤처 육성을 하겠다며 뛰어다녔던 나의 과거를 떠올려 봤다. 한 장의 비즈니스 플랜이었던 카닥이 500억 원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되었다는데 뿌듯하고 앞으로 더 클지도 모르는 서비스의 초기 모델에 동참했다는 게 뿌듯했다.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2006221353015080106116


2012년.

스타트업의 정의가 작은 초기기업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의 시작이라는 의미라면, 난 규모가 있는 기업일수록, 인트라프러너쉽, 즉 내부 기업가 정신의 육성 발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빠르게 변화하는 ICT기업이 조직이  활기를 잃고 둔해지면서, 리스크 부담은 줄어들지만, 시장에서 도태되고,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랬다.


또 한 방향은, 스스로의 이해였는데.. 난 일개 개발자로 내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에, 2년마다, 새로운 일을 자원을 해서 맡았었더랬다. 플랫폼 개발자 > 데이터 모델러 > 개발 조직 포함한 프러덕트 매니저 > 특정 부분 본부장... 커뮤니티, 기반 플랫폼, 서비스 전략 등등등 다양한 부문에서 일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문득 이때 깨달았던 게 있다. 이 꼴 저 꼴 보고, 점점 마켓에서, 이용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다가, 점점 Generalist 가 되겠구나. 아.. 재미없는데...


내가 일을 할 때, 가치를 느끼는 건,

- 똑똑한 사람들하고 일하는 거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얘기해도, 이들로 부터는 배우는 게 있고, 난 근거를 가지고 반박을 하거나 논리를 가지고 질문하는 건 상당히 재미있고, 즐기는 편이다.

- 내가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참견만 하거나 사후 평가하는 일이 난 참 싫다. 혹자는 의사결정이라고 하지만, 난 실무에 도움이 되는 블로커를 치워주거나, 해야 할 일을 배분해주거나 알려주는, 역할에서 재미를 느낀다.

- 점점 나이가 들면서 크리에티브함과 반짝반짝한 아이디어의 출처가 내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현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아끼는지 돕는 게 더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난 창업가 DNA보다 공장장 DNA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 반짝반짝 야심만만 멤버와 숙련된 베테랑의 조합은 늘 옳다. 많은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서로의 피드백을 나눌 수 있고, 아등바등할 일들을 슬~슬~ 해도 되게 만든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 인트라프러너쉽(Intrapreneurahip) 과 린스타트업(Lean startup) 을 주장하고 사내 벤처 발굴 육성 프로그램을 발제했었더랬다. 조직은, 사실 덩치가 커지면, 아래와 같은 반탄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 그냥 새로운 변화가 싫다. 내가 익숙한 대로 일하는 게 늘 더 편한 법이다. 한국의 문화가 그런 것도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서는 것에 대해서, 늘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는, "난 그냥 새로운 걸 배우고 익숙해 지기 싫어"가 저변에 깔려있다.

- 회사일은 회사일이고, 열심히 한다고 내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Job Security가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성공했을 때 보상이 확실한 조직이 아니면, 이런 모티베이션을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월급쟁이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아.. 이걸 어떻게 극복하지?


사전 준비

발제를 하고, 우선 한 건, 발로 뛰기..


-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끌어모아서 타사 사례 리서치 : 성공/실패/확률/프로그램 보상안. 결론은 정답은 없었다. SDS 사내벤처가 네이버라고 들어서 대박신화였는데, 과연 재무적 효과 외에 전략적으로 SDS에 도움이 되었는가? 아닐 것 같다. 재무적인, 소득을 얻었지만, 그 자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본체 활용에 써먹었을까? 는 퀘스천. 시스코가 인상적이었는데 영역을 찍고, 그 분야는 외부 투자, 사내벤처 총동원해서 만들고 꼭 자산화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 실패 확률 계산 : 평균 10개 투자하면 1~2개가 성공해도 ROI가 나온다는 산술 평균이 나왔다. 또 수익성으로 측정하기 힘든, "핵심인재 유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의 경종 두 가지는 계산에서 빼도 말이다. 큰 타격 없는 비용 집행이라면 당연히 1~2개가 5년 이내 성공이어도 ROI는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단계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공식을 생각해 봤다. 우선 아이디어와 주무자(리더) 채택에 필터를 두면 어떨까? 외부에서 치열하게 밥벌이로 전문 투자를 하시는 분들을 불러서, 심사를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게 서포트를 하려면 어째야 할까? 를 계산. ( 나 개발자 출신에 MBA 한 여자 사람이다.)

- 가용 리소스 계산 : 일단, 해보자 정도로 허락받은 리소스는 비즈니스/제휴 시니어 멤버와, 주니어 기획자 1명. 이 정도와 약간의 예산. 나쁘지 않았다. 일단 발로 뛰고 가능성을 보여주자~고 생각. 사람이 현저히 부족하니, 외부 심사 보드를 만들자. 특히, 우리에게 해되지 않게 비밀유지가 가능한, 업으로 엔젤/벤처투자를 하는 분들을 주로 모셨다. 처음에 나의 섭외 능력에 스스로도 감탄. 이택경 대표님(다음 창업자, 매쉬업 엔젤스 대빵), 박지웅 대표(패스트트랙 아시아 대표. 소프트뱅크 벤처스 심사역 역임), 강석흔 대표(본엔젤스 GP파트너)..당시, 내부 CTO와 CFO를 모셨는데, 이 분들 반응과 상반돼서 참 많이 놀랐더랬다.  아무튼 심사 보드를 만들고, 내가 Secure 한 예산으로 매니징 가능한 팀은 단 3팀이었다.

- 매니징 가능한 팀의 계산 : 내부 자산 중 서포트 가능한 걸 As many as possible 모아 보았다. 인력, API, 정책 툴(예: 개인정보보호 정책, 표준계약서, 표준 약관 등), 내부 가용 API, 브랜드 디자인 머터리얼 등등이었다. 소위 멘토 보드라는 걸 만들었는데 UX 전문가, DevOps 전문가, 내부 API와 자산 중개자 1인씩을 겸직으로 받은 거다. 이 사람들이 풀타임이 아니기 때문에 주당 *시간씩 강의해주고를 계산해도 힘든 게 한 팀이 최소 3명, 최대 7명이면 대략, 3팀만 뽑아도, 15명 정도 팀이 된다. 내가 계산한 시드는 기반을 줄 거여서, 기획(Biz PM) 총괄 PO 1, 기획 1, 백엔드 개발 1, 프런트엔드 1~2 (주로 앱, 당시는 앱 시절), 디자이너 1이었다. 또 팀별 외주 예산을 책정해서, 3개월 단위로 평가해서 드롭할지(드롭 시 인력 재배치), 더 투자할지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사내 비즈니스 플랜 경진대회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내외부로 구성된 심사 보드로, 내부 비즈니스 플랜 경진대회를 열었다. 요즘 이런 방식은 사내 벤처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이나 잘 나가는 유니콘 기업들이 이미 많이 한다고 한다. AWS, 구글, 쿠팡 등은 PO나 Business 사이드에서, VP레벨 경영진 앞에서 핏칭을 해야, 전문가(디자이너, 개발자) 어싸인을 받는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고, 운영모드가 되기 전에 신규 서비스 개발, 신규 프로젝트를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큰 논의도 필요 없다. 전문가들이 일단 아이디어를 보면 각이 나오니까.


아무튼 비즈니스 경진대회를 했다.  비즈니스 플랜은 템플릿을 배포했다. 당시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많이 참조했다고 보면 된다.

- Market

- Problem

- Solution

- 초기 팀


심사표도 만들었다. 난 프로그램 매니저였기 때문에 일부러 심사위원에서 빠졌고, 아래 심사표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략 저런 걸 배점을 만들어서, 서류심사를 1차 했고, 심사 보드 앞에 핏칭 이벤트를 만들었다.

- Address Markt의 매력도 / 크기

- 리더 혹은 팀의 역량

- 당시 다니던 모기업의 전략에 부합되는지 여부(Mobile First를 외치고 킬러앱을 찾던 중)

 

발로 뛰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다. 저 대회를 하기 위해서, 당시 기업의 임원이었던 나는 엄청 스타트업 이벤트나, 심사위원으로 참석을 했었더랬다. TIPS 선발위원으로 불려 갔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사내 홍보는, 1) 3개월 단위 평가하는 NIS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서 MVP를 제작해 볼 수 있다. 2) 성공판정 시 추가 리소스 투입, 분사, 내부 팀/본부화 플랜 제시. 3) 망하거나 실패 판정을 받아도 What We Learned를 제공하면 전원 재배치(원하는 부서로 이동 재배치) 3가지 포인트로 진행되었다.


결론은 대 성공, 100여 개의 비즈니스 플랜이 접수되었고, 이중 12개를 뽑았고, 최종 피칭으로 3개를 뽑았다.

아! 난 불필요한 리소스 투입을 정말 싫어한다. 서류전형은 1 Page Proposal이었다.


아래는 1기 팀원들. 정말 지금은 너무 유명해지셔서 내가 연락하기 힘들어진 분들도 계시고, 각 분야에서 적어도 전문가들이시다!


초상권에 문제가 있다면 컨텍해 주세요..뭐, 해되는 경력은 아니잖아요!



예외 상황

- 시작도 전에 우리 스탭 2명이랑 전사 곳곳에 포스터 붙이고, 본부를 돌아가며 홍보 시간을 가졌다. 일단, 본부장들도 나도 하고 싶다! 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아... 저 YJ가 또 뭔가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구나라는 냉소도 있었다.

- 직원들 반응은 뜨거웠다. 와.. 회사 만들어 주는 거예요? 분사도 돼요? 지분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까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했다. "저희도 1 회차라, 이제 회사와 얘기해서 합리적인 플랜을 만들어야 하지만 저희가 보는 성공은 분사, 내부에서 투자를 충분히 한 사업부 서화라고 본다" 라고 얘기했었더랬다.


선발 과정

- 외부 심사보드의 기용은 적절했다. 약간의 거마비로도 오시길 자처하셨고, 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내부의 판단 기준과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나눌 수 있었다.


- 서류심사는 NIS팀과 사내 멘토 보드가 하루 날을 정해서 했다. 간식과 사내 모처에서 비공개 심사를 했었더랬다. 12개던가 팀을 뽑았고, 해당 팀에 통보가 갔다.

- 해당 팀 리더와 비즈니스 플랜 발표자로 교육과 핏칭 코칭을 했다. 나름 주워듣고 외부 심사 다니면서 취득한 노하우를 총 발휘했다. 발표자료 취합, 리허설 총 2회. 원할 경우 리허설 무한 반복.


와! 8년 전인데 안 촌스럽다. 멘토보드 박진선 디자이너님 작품.


외부 심사위원을 초대해서, 핏칭 이벤트를 열다.

배점표 취합 + 치열한 토론 끝에 아래 3개 프로젝트가 선발되었다.


- 해피맘(육아맘들의 SNS) : 컴퓨터를 켜기 힘든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맘들의 SNS. 커뮤니티 서비스를 개발해본 개발자와 기획자의 의기투합 서비스

- 클링(뮤지션들을 위한 Git) : 음악 작업이란, 녹음된 음원의 믹싱, 샘플 활용이었더랬다. 인디밴드 활동하던 개발자들이 포함된 팀.

- 카닥(차외 장수리부터 중고자 매매까지) : 외장수리의 모든 것. 특히 수입차 시장의 외장 수리의 비합리성, 마켓의 불필요한 비용의 제거 아이디어.

- 팀은 좋은데, 아이템이 아깝게 떨어진 차선책. :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선발 후 입주와 운영 플랜

하아..정말 플래닝이란 건 엄청난 시행착오가 수반되나 보다. 배점을 훌륭히 받은 카닥팀의 핵심 개발자가 막판 변심을 한 거다. (정말 될 줄 몰랐고, 되고 나서 소속 본부장이 나를 밟고 가시오~로 설득해서 이탈). 즉 카닥은 비즈니스 아이템도 좋고 잘될 것 같은데 실행 인력이 없는 거다.

 

여기서 연예기획사가 팀꾸리기를 하는 방식을 차용해 보기로 한다.


아깝게 떨어진 차선책 팀의 리더를 소개한다. 선정된 카닥 아이템을 같이 개발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식의 주선. 지금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중이신 당시 이준노 대표님은, 비즈니스 감각, 플래닝 모두 훌륭했는데 IT서비스 개발력이 없으셨다. 디자인은 외주처를 선정해주고(당시 회사 출신 팀장님이 차린 디자인 스튜디오), 개발자들을 리쿠르팅을 해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참 좋은 개발자들을 금방 잘 뽑는다. 공고는 내고, 코딩 테스트와 밀착 인터뷰면 좋은 인재를 모실 수 있었다.


다른 팀에 비해 카닥팀은 실행 가능한 멤버를 섭외/소개까지 아이돌 그룹 만들 듯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마, 이준노 대표님이 이런 코멘트를 남긴 듯.



약간의 경쟁 그리고 멘토링의 프로그램화

-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는 건 다 팀들 하기 나름이었다. 단, MVP제작 가이드, AWS 기초, 다음 내부 자산 활용 가이드는 첫 주 주입식 교육을 했다. 특히 Agile 하게 목표 세우고 제품 만들고, 아이데이션 - 빌드 - 측정 - 이터레이션 주기는 정말 동작했다! 1~2주 만에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사내에서 dogfooding 단계 삽입, KPI는 팀과 NIS 매니저들 간 합의로 도출이었다.


- 주입식 교육 이외에, 역시 나의 인싸력으로 당시 모기업과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성공적인 스타트업 대표님들, 업계 전문가를 저렴하게  모실 수 있었다. 그렇게 출근시간 빨라지는 걸 싫어하던 엔지니어들, 기획자들이 다들 바쁜 분들이라 조찬모임(아주 일찍 8:30이었던가 그랬다.) 스터디를 해도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든 강의는 참석자들의 평가를 받았었다. 당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외부강사는 비트윈(현재 타다) 대표였던 박재욱 대표님이었다.

돌아보면 잘못했던 것 같다. 적당한 비용을 책정하는 게 이 프로그램이 존속되기에는 나았으리라. 당시 싸게~ 싸게 을 외치던 게 잘못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직책을 떠나고 이런 일이 반복 활용되지 못했으니까.


- 내부 자산의 극강 활용 가이드 : 내부 자산이 좋은 게 많지만, 참 내부에서들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당시 템플릿 에디터, 대량 메시지 전송, 내부 서비스 광고 인벤토리 등등등. 개인정보보호정책, 서비스 이용 표준약관 개발, 인증 프로세스 등등을 다 가져다가 썼다. 사내 총무/회계/경영지원/마케팅 리소스를 풀리 활용한 건 물론이다.


- Show me the data : 빌드하는 방법, KPI를 설정하는 법. 논리적으로 핵심에 접근하는 법을 가르치지, 디테일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걸 반영하는 법을 가리키다. Acquisition, Activation, Retention 당시 최대 과제였다. 예를 들어, 카닥의 경우, 성공하기 위해 유저가 만족하는 비율을 스크래치/외장수리 견적을 올리면 5분 이내 3건 이상의 믿을 만한 수리업소의 견적을 받게 하자가 초기 목표였다. 그게 달성돼야 론칭을 하고, 달성되고 난 후에는, Weekly 견적량, 체결 견적 단가가 핵심 KPI였다.

해피맘은, 육아맘들을 지역 위치 기반으로 모으는 것이었는데, 자체 구축한 블로그 등으로부터 인입량, 실제 사진이나 포스트를 올리는 양을 KPI로 잡았다. 클링은, 초기 타겟 인입 후, 재방문율을 핵심으로 잡았던 것 같다.

첫 3개월. 3개 팀 중에 2개 팀이 1차 평가를 성공 판정을 받았고, 1개 팀이 Drop 판정을 받았다. 프로젝트 완성도와 합의했던 KPI달성률이었다.


- 절박함 심어주기 : 사실 사내벤처들은 지나치게 리스크가 없고 절박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쓰는 모든 비용을 월간 리포트로 발행해줬다. 인건비, 인건비성 경비, 외주 경비, AWS비용, 광고 홍보비 모두 포함이었다. 또 3개월마다 Drop 과정을 보여줬다. 깔끔하게 AWS자산을 철수하고 도메인을 회수했다. 단 약속한 대로 재배치는 내부에 최적의 장소를 Assign 하거나, 안되면, 외부라도 찾아줬다. Never 실직자를 만들지 않는다.


3명 이상만 되면, 예외상황은 발생한다.

. 론칭을 앞두고, 갑자기 iOS 승인이 부결되었던 상황.

. 핵심 백엔드 개발자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2주간 입원해야 했던 상황.

. 팀원들끼리 싸워서 팀이 깨지는 상황.


3개월씩 한 2~3회 보냈던 것 같은데, Weekly체크를 했는데 거의 매주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바깥에서 스타트업을 해보신 분들의 절박함을 내가 아는데.. 그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저 팀들이랑 정말 울고 웃으며, 같이 일했던 것 같다. 나와 2명의 스탭들이 거의 핸즈온 팀이 돼서, 매니저도 되었다가, 이분들 성과 발표 오거나이징도 했다가, 경영진의 변덕이나 예산 변동을 막아주는 역할이기도 했다가였다.


결론

What we learned 세션이 흥행에 성공했던 기억이 난다. 프로덕트 매니저, 개발자, 디자이너들이 와서, 첫 선발팀들의 Journey를 듣고 이들이 배운 것들을 공유했다. 나도 이 과정에서 배웠던 걸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건 있었다. 되겠다 싶을 때 밀어주기가 힘들었다. 아이폰 카테고리 1위를 하고 평점이 5점 만점을 달려도 마케팅 예산을 써야 해? 여기서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

3개월마다 평가가 너무 짧다는 지적도 있었다. *백만, *천만 트래픽이 있던 플랫폼 제공사에서 10만 돌파, DAU *만대가 그다지 임팩트가 적었다. 만을 넘어야 100만이 되고, 100만을 넘어야 1천만이 되는 것에 익숙치 않았다. 해피맘 프로젝트는 참 아쉬웠는데 일부 지역 맘 커뮤니티에서 소문도 나고 중고거래, 육아 물품 커뮤니티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였는데, 도중에 리소스 투입이 중단되면서, 현업에 흡수되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나름 일해보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 평판이나,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최초로 동료평가에서 욕설에 가까운 평가를 들어야 했다. 이노베이션, 좀 다른 방식의 어프로치를 드러내 놓고 하는 게 이렇게 까지 욕먹을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뭐.. 다 이해한다. 다들 익숙치 않은 방식으로 내 조직의 멤버들을 빼간다고? 의 저항감이 있었다.


사실 난 나서는 거 안 좋아한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조직 , 프로그램 매니저여서 PR팀 컨펌 득하면 나섰더랬다. IR 팀도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시장 기대감을 준다며 부추겼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그때 내 동료들이 Motivation 돼서 일하면, 내 거라고 생각하고 일하면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하는지 목격했던 것 같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disruptive 한 기술을 서비스로 B2C, B2B2C로 내어 놓는 데는 레시피와 프로세스가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는데 이제 이런 거 하면 정말 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해봤고, 1/3 이 8년이 지난 지금 살아있고 EXIT까지 했으니까.


사실 써놓고 보니, 부끄러운 게 고기 잡는 걸 세팅하고, 투자한 거지, 실제 고기를 잡은 건 그분들이다. 이준노 대표님, 한현철 이사님, 또 초창기 멤버 모든 분들께... 저도 연예기획사가 된 거 아닌가 싶게 카닥팀을 응원했고 빌드하는데 서포트했던 것 같아요.  역시 당신들께 많이 배웠고요.


더 성공하세요. 제가 했던 일의 레코드에서 진짜 대박 성공으로 남도록!


당시 탈락, 혹은 도중하차했던 해피맘, 클링팀. 그래도 전 최선을 다해서 도왔고, 여러분들의 아이디어와 도전을 사랑해요!


1기에 이어 2기의 시행착오는 다음 기회에...


예전 파일 뒤적이다가 발견한 경험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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