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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약초콜릿 Jan 20. 2020

6.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에 옮긴다, 를 죽음을 목전에 둔 당사자에게 권장할 만한 것일까?


나는 버킷리스트가 마치 제대로 눈감기 위해선 일련의 계획과 완벽히 짜 맞춘 행사 목차가 있어야만 한다는 권고 같다.

조금 더 지나치게 말하면 죽기 전까지 본인의 역량을 평가하고 삶을 알차게 마감하라는 강요로 여겨진다.


 만약 죽음도 평가해서 우열을 나눈다면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고 싶은가?


 역시 이번에도 우등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음 항목들을 체크해 보길 바란다.


 1) 사후 나의 전 재산을 공익을 위해 쓸 것을 약속한다. 자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을 시 강제집행을 감행해서라도.


 2) 대중에게 교훈을 남기는 선행을 낱낱이 밝힐 전기 발행을 위해 봉사와 기부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3) 좌절과 고난을 이겨내 성공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를 일궜지만 정작 본인은 사치를 모르고 검소하다. 그러해서 여행과 외식은 금물이다.


 4) 예술 발전과 전통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소득의 20퍼센트가량은 쾌척한다.


 5) 정의 사회 구현이 막연한 구호로만 그치지 않도록 사회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해결법 모색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항목들도 살펴보길 바란다.


 1) 심장이 노래하는 것처럼 흥겨운 활동이나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또한 적어도 한 번은 직접 경험했거나 소유해봤다.


 2) 맛있는 음식을 맛보거나 놀라운 풍경을 대할 적에 감동할 줄 안다.


 3) 잠들기 전 일기를 적고 싶은 충동이 이는 하루를 지냈다.


 4) 사랑에 미쳐서 한동안 나 자신을 상대에게 아낌없이 주었고, 후회하지 않았다. 사랑의 종류는 상관없다. 연인, 가족, 일, 취미,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어느 것이든 좋다.


 5) 자기 자신과 제법 친하게 지낸다. 즉, 홀로 있는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외롭다 느끼지 않는다.


 위의 모든 항목에 해당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느 것도 자신을 설명해주는 항목이 없어서 엉터리라며 혀를 차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든가.


그런데 좋을 일도 싫을 일도 아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의무가 아니며 당신을 남보다 더 낫다거나 부족하다고 판정하지 못한다.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고, 동조 심리에 빠진 것뿐이다.

우리가 흔히 심리테스트나 점괘에 동조하는 그 같은 실수 말이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 사람들은 해박한 누군가가 인간의 실체와 작용과정을 잘 알고 있어서 쉽고 정확하게 자신의 숨겨진 속성을 말해줄 것을 기대한다.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를 탐독하고 영화와 드라마를 쫓아다니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타인을 훔쳐보는 짜릿함 이전에 과연 나와 얼마나 다르고 무엇이 비슷한지 궁금해서다.


그래서 내가 표준대로 살아가는지 확인하는 거다. 흡사 아파트 중위 가격처럼 적어도 서열의 중간은 되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살면서 무언가 놓치는 순간은 순간순간 찾아온다.

무언가가 중요하거나 귀중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가족과의 식사, 부모나 자녀와 대화, 부부간 산책 등 당장은 절실하지 않은 동참들 말이다.

현재는 이보다 집중해야 하는 중차대한 이벤트들이 줄지어서 짬이 나지 않는 순간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처럼 가족과의 시간에 투자하라고 조언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무게중심을 가졌기에 기울어진 것이 균형이다. 그러니 골고루 살피면서 쿨하게 살 수가 없다.


 예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시간여행에 대한 소설과 영화가 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어바웃 타임’.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영화로도 각색되어 소설보다 영화로 더 익숙하다.

출처 -미토스북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당연히 시간여행자의 일생과 사건을 다뤘다는 점이다. 또한 주변인들의 혼란과 그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주인공이 노력하면서 극 전개에 재미가 더해진다.


 그런데 나는 이 두 이야기를 지켜보며 슬픔이 깊어졌다.


후회로 남는 지난 일을 바로잡고 싶은 욕망을 너무나 정직하게 다뤘을뿐더러 특별한 시간 조절 능력을 갖고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있다는 사실 때문에서다.

그런데 이내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인생은 되돌아보아야만 성숙해지고 충만해지는 게 아닐까라고.


 살아오면서 어떠한 순간이나 선택이 끔찍하게 후회되고 미련으로 남는다면 당신은 한 뼘 더 성장해서 잘 살아왔다는 하나의 증거를 손에 쥐었다.


적어도 버킷리스를 작성할 때면 피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아는 셈이다. 남들은 해봤다는 부러웠던 일들을 리스트에 올리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고 싶었던 대상을 판별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래도 이런 버킷리스트를 목적으로 삼아보는 건 어떻겠는가?


 ‘나는 버킷리스트가 필요하지 않은 일생을 매일 살았다.’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거창하지 않다. 반면 소박하거나 초라하지도 않다. 또한 희비가 극명하게 나뉘지도 않고 성공과 실패로 평가할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당신과 당신 주변의 관계들로 시간을 채우고 손을 맞잡는 데서 탄생하는 삶의 기쁨들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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